심리학 대학원 입시 과정에서는 대개 학업(연구)계획서라는 것을 본다. 그리고 여느 기업에서의 취업 과정과 다르지 않게 면접이라는 것도 본다. 학업(연구)계획서와 면접. 어떻게 보면 심리학 대학원 입시 대비의 핵심 요소들이라 할 만 한데(전공지필고사, 영어번역시험 등을 제외한다면 서류 스펙 이외에 입시 준비자가 실질적으로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은 이 두 가지밖에 없다), 학업(연구)계획서와 면접 준비 시 결코 빠지면 안 되는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졸업 후 진로 계획은?
말 그대로 심리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세상에 나온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 일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의 삶을 가꾸길 원하는지 묻는 것이다.
사실 이 진로 계획에 대한 부분은 지원동기, 학업계획, 연구계획, 경력사항 등 학업(연구)계획서나 면접의 여타 부분들이 모두 포함된, 궁극적으로 ‘나’와 ‘대학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최후의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화룡점정이 되어야 할 이 부분에 대해, 실제 심리학 대학원 입시 지원자들은 어떤 답을 내어놓고 있을까?
장기간 심리학 대학원 입시 전략가로 활동하면서 내가 느낀 소감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엉성함’이다. 뭔가 깊이가 없으며 천편일률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내게 심리학 대학원 입시 상담을 요청해오는 분들의 대부분이 임상심리/상담심리 전공 지원자이므로 해당 전공을 예시로 들어 설명하자면, ‘졸업 후 진로 계획’을 묻는 내 질문에 대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 ‘상담가/임상가가 되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
-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기여하고 싶다.’
- ‘학교폭력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없게 하고 싶다.’
좋은 포부다. 지원자들의 그 결의를 부정하거나 폄하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적으로 꼭 개선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지원자들이라면, 그래서 심리학 대학원에 갈 구체적인 결심까지 해낸 이들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멋진 상담가가 되어 과거부터 간직해왔던 그 꿈을 한 걸음씩 실현해 나가게 될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따라서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이 갖춘 결의의 순수함이 아니다. 단지 모든 과업에는 절차가 있고, 때가 있고, 무수한 현실적 고려사항들이 있는 법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치밀하지 않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심리학 대학원에 가는 문제는 장난이 아닌, 현실이다.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희망, 환상, 꿈과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만약 심리학 대학원이라는 것이 큰 리스크, 큰 부담 없이 단지 한 번쯤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기왕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것, 한 번 도전해보는 것이 뭐 나쁘랴.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않은가. 취업의 길이든, 다른 전공의 길이든, 그 무엇이든. 그러나 문제는 심리학 대학원에 가 생활하는 것, 아니 그전에 심리학 대학원 입시에 본격적으로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투자’가 발생한다는 점일 것이다.
심리학 대학원. 시간과 비용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괴물이다. 심리학 대학원은 더군다나 의무교육도 아니다. 누구나 의무적으로 들어가고, ‘사고’만 안친다면 누구나 비등비등하게 졸업장을 딸 수 있는 그런 기관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실적이면서도 냉정하기 짝이 없는 무한 경쟁의 장이다. 실력 좋고 포부가 담대한 사람들은 많은 연구 실적과 진출 기회들을 잡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수천만 원의 비용 지출, 취업 등 다른 기회비용들을 모조리 포기하고 대학원에 들어와서 감내해야 했던 시간들의 소진, 그리고 정식 졸업도 아닌 ‘수료’라는 애매한 최종 학력뿐이다.
들어간다고 누구나 다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우 힘겹게 심리학 대학원에 합격하고 들어갔음에도, 며칠 만에 자퇴 원서 쓰고 나오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지 모른다. 현실 파악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했고, 신속한 결단을 내렸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학업(연구)계획서 내 ‘졸업 후 포부’ 부분에는 바로 이런 사항들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수천만 원의 비용과 막대한 시간 등을 쏟아부은 끝에 그 ‘투자’를 만회할 만한 ‘성과’나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간신히 학위는 땄다지만, 결국 수입은 낮고 경쟁도 치열한 시장에서 허망하게 떠도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결국 꿈을 좇아, 공부가 좋아, 바라는 이상이 있어 대학원의 길을 택하는 것이야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그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러낼 만큼의 현실적인 기대 이익이 있는지는 꼭 한 번 따져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꼭 심리학 대학원이어야 하는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 꿈, 이상, 미래의 안정성, 수입 등을 얻기 위해 ‘심리학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는 과연 필수 불가결한 것인가? 꼭 그것 아니면 안 되는가? 투자를 통해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이고, 결국 잃을 것은 뭔가? 결국 잃는 것이 더 많다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충실히 마주해 온 지원자의 포부는 분명 다르다.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며, 그들의 학업(연구)계획서를 보며, 면접 후기를 들어보며 나는 그것을 자주 경험한다.
명심하자. “꼭 심리학 대학원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부터 결국 심리학 대학원 입시를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나온다. 그 애타는 마음은 고스란히 입시를 향한 내 동기부여가 되고, 그것이 결국 나를 더욱더 경쟁력 있는, 비전 있는 지원자가 되도록 만든다. 심리학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비록 잠깐일지라도 한 번쯤 고민해보는 것은 어떤가? 대학원 졸업 이후에 뭘 할 것인지. 꿈, 이상 같은 것 말고 아주 구체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그런 계획들을 한 번 세워보는 것은 어떤가?
한국심리학회, 한국상담심리학회 등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구인/구직 게시판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매일 심리학 대학원 졸업 이후 진출할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정보들이 채워진다. 심리학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이러한 게시판들부터 차근차근 ‘눈팅’해보고 현실적인 감각을 기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많은 지원자들이 이 구인/구직 게시판을 찾아본 경험은 없었다고 말한다. 이제부터라도 졸업 이후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상(象)을 그려보자. 꿈을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현실을 외면하지는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