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케어, 합의 안 돼? 그럼 정부 문 닫아!
지난 2013년 10월1일부터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own)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다음 회계년도가 시작되는 날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정부는 예산 집행을 못 하게 된다(한국의 경우 작년 예산안 기준으로 집행을 할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셧다운이 없다. 아, 물론 그 셧다운 말고.) 즉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줄 돈이 없는 것.
따라서 공무원들 중 반드시 필요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일시 해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무급휴가(실직) 상황에 놓인다. 이런 과격한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미 의회 상/하원에서 이른바 ‘오바마케어’와 관련한 예산안에 대하여 합의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 역시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케어는 의료보험의 범위를 더욱 넓혀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미국 인구 3억명 가운데 의료보험을 받지 못하는 인구가 4천 7백만 정도이며, 이 사람들이 아파서 병원 가면 의료비가 장난이 아니게 든다, 영화 <식코> 같은 거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래서 오마바케어가 시행되면 3천만명 이상이 추가로 신규 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 등 소수민족이며 1천만명에 달하는 비시민권자, 영주권자들도 역시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공화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가난? 그거 흑인만 걸리는 병 아닌가요
그런데 이 제도로 보험혜택을 본다는 그 3천만명의 빈곤인구 절대다수가 흑인과 히스패닉계일 거라는 건 사실일까, 아니면 인종주의적 선입견일까. 게르트 기거렌처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숫자놀음이 주는 착각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데, 인종별 빈곤율을 내면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실제 수치로 보았을 때 미국 내 빈곤인구의 절대다수는 이른바 ‘백인 쓰레기’란 속어로 불리는 백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과 흑인, 히스패닉 인종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이란 도식으로만 바라본다면 이 문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식은 아닌 셈이다.
미국이 셧다운 사태로 치달았던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조지 부시 주니어가 집권한 동안엔 셧다운이 발생하지 않았었다. 이번 사태 이전의 마지막 셧다운은 17년 전인 1995년 민주당 빌 클린턴 집권시절의 일이었다. 어쨌든 연방정부가 셧다운에 들어가면 정부는 정치권이 잠정 예산안에 합의할 때까지 200만명의 연방 공무원 가운데 필수 인력을 제외한 80만~120만명의 직원을 당장 일시해고 해야 한다고 하니 미 연방정부의 노동유연성도 참 대단하다. 셧다운 기간동안엔 긴급한 핵심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공공 프로그램도 따라서 함께 중단된다.
그런데도 어째서 미국 공화당은 의보개혁안에 반대하고 있고, 이런 야당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어째서 이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국민건강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 사람들 입장에는 공화당이 예산안 통과까지 담보로 걸어가며 이 제도에 감히 반대하는 걸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의 경우 보수적인 시민들조차 미국의 악명높은 의료체계를 예로 들어가며 국민건강의료보험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배짱 튕길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를 비롯해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가 심각할 정도로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은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전체 인구의 17%인 5000만명 정도가 무보험 상태에 노출돼 있다. 미국 중산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실직 자체라기보다 실직에 따른 건강보험 상실이라고 한다. 민간 건강보험은 비싸고 건강보험 없이 질병에 걸릴 경우 파산하거나 노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을 사귈 때 건강보험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아이의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부부가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기 위해 이혼하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맹장염 수술에 약 2000만원, 자연분만에 400만원, 감기 진찰 한 번에 10만원이 든다. 만약 당신에게 보험이 없다면 말이다. 미국에서 한 해 파산을 신청하는 가계의 절반은 파산 원인이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민간의료보험료는 너무 고가이기 때문에 인구의 17%에 해당하는 5400만명(대한민국 인구수 만큼)이 의료보험 조차 없이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경기 악화와 보험료 상승으로 인해 직장에서 보조하는 의료보험의 비중 또한 줄어드는 추세여서 의료보험 문제는 악화일로에 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폴 크루그먼 같은 미국의 진보세력들은 미국 사회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최우선 정책으로 ‘의료개혁’을 꼽는 것이다. 일단 현재에 처한 가장 큰 불안 요소 하나를 제거해야만 미국의 불평등을 개선한다는 어려운 임무에 역량을 투입할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당 제도의 당사자가 될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 케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 같지만 실제 현실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지난 2010년 <NBC>와 <월스트리트 저널> 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36%만 개혁안을 지지했고, 갤럽의 조사에선 개혁안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은 단지 28%에 그쳤다. 사실, 개혁안의 내용을 보면 미국인들이 그의 개혁안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바마케어는 모든 시민들에게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으로 1965년 노인 건강보험(메디케어)를 도입한 이래 가장 중요한 복지정책이다. 미국 직장인들은 직장을 통해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65세 이상의 건강보험료를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 메디케어, 생계곤란층을 위한 메디케이드도 있다. 문제는 건강보험을 지원하지 않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정부 지원에서 빠지는 소득이 낮은 계층(우리 식으로 말하면 차상위계층)이다.
결국, 복지는 세금이다
미국 의보개혁 수정안의 주요 내용은 앞으로 10년간 약 9400억달러를 투입해 무보험자 약 3200만명에게 보험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보험인 메디케이드의 대상이 되는 빈곤층의 범위를 확대하고 중산층에겐 보조금을 지급하여 의료보험 수혜 대상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또다른 중요한 조처로서 개인이 풀을 이루어 의료보험거래소에서 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보험회사들을 규제하는 조처들도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나머지 3억명의 미국인들이 조금씩 돈을 걷어 병원비를 대신 내주자는 말로도 들린다.
결국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들 이름을 따서 재단을 만들고, 박애와 자선을 기부를 통해 실천하는 부유층들의 반대는 당연하다. 왜? 기부와 세금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부를 많이 하면 천사가 되지만, 세금을 많이 내면 그냥 부자일 뿐이다. 그리고 기부는 부호가 대상과 목적,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세금은 그렇지 않다. 박애자본주의의 진면목이 그것이다. 또한 더많은 세금을 감당해야만 하는 고소득층의 반대도 당연하다. 혜택과 불안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야만 하는 중산층들은 보험료가 더 오를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국의 사보험체계에서는(물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심각한 병력이 있는 사람들의 보험 가입이 매우 어렵다. 이런 사람들에게 보험 가입을 쉽게 하도록 해주면 보험회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했던 이들도 막상 보험을 청구하면 여러 이유를 들어 보험료 지급이 거절당하는 빈도도 매우 높다. 특히 미국의 민간보험회사들은 보험료 중 상당부분을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고, 의료기록을 감시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공적 보험은 이런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심각한 병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보험 혜택을 주지 않도록 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들도 같은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기존 가입자들의 보험료는 또다시 인상되어야 한다. 또 메디케이드 가입자가 늘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3500만명의 기존 메디케이드 수혜자들은 불평할 수 있다. 정부는 비용절감을 위해 메디케이드 수가를 줄이려 하고, 일부 의사들은 돈 안 되는 메디케이드 환자를 안 받으려 한다. 또 직원 50명 이상 기업체는 이제 직원들의 의료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직원 채용을 꺼리거나 감원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높는다. 이 수법은 정말 오래된 방식이다.
어차피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기존의 무상 공공의료 보장제도인 메디케어에서 의약품 구입 비용이 제외된다. 새롭게 혜택을 받게 되는 3200만 명 중 1600만 명은 절대빈곤 계층으로 기존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무상 공공의료)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오바마 개혁안과 무관하다.
결국 오바마케어의 혜택을 받는 계층은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차상위 계층 1600만 명뿐이다. 이들이 개혁안의 최대 수혜자이고, 이들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나머지 1600만 무보험자들은 결국 개인 부담으로 보험에 가입해야만 한다.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해마다 695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전체 미국 국민들의 5%(1600만명)만으로 이들만이 개혁안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오바마 개혁안 지지율이 36%나 된다는 것이 도리어 신기한 일이다. 공화당이 배짱 튕기며 반대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는 거다. 더군다나 미국은 오랫동안 연방정부가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전쟁과 외교를 제외하고)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만큼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지 않았던가?
복지는 정치인의 무덤
어째서 진보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고, 보수는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진보가 어찌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세금만 더 내고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느낄지도 모르는 중산층에게 눈에 띄는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이고, 보수가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중산층에게 복지는 피 같은 내 돈으로 세금 내서 생색도 안 나게 남 돕는 일이란 걸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다.
사실, 복지는 정치인의 무덤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 공약을 선점하긴 했지만,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본인만 몰랐다.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고 프랭클린 아저씨가 말하기도 했다지만, 죽음은 예수님도 피하고 싶어할 만큼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란 점에서 세금은 죽음과 동격이다. 복지개혁의 성과는 당장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수가 약간씩 손실을 봄으로써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혜택 받는 사람은 적고, 당장 손실을 보는 것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오바마는 어째서 이렇게 힘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일까? 얼마전 늦은밤에 모 역사학자와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당신의 절친이자 한때 복지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이제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모 정치인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애증을 잘 아는 터라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정치를 한다는 사람은 자신이 국민들을 위해 성취하고 싶은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남의 참모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려는 야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정치적 커리어를 유지해나갈 수가 있는데 그 분은 권력의지가 약했거나 처음부터 제대로 된 비전도 없이 급작스럽게 정치를 한 것 같다”고.
오바마는 시카고 빈민가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로서 봉사활동을 해왔고, 의료보험이 없어 파산하고, 집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에겐 이것이 그의 꿈이자 비전이었을 거다. 나는 정치인에겐 그런 신념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대선에 나서고 나서야 부랴부랴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며 정책을 만들고, 선거에 나설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 실현될 수도 없는 거짓 공약을 내놓고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경우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미국은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현재 여러 분석들에 따르면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은 현재의 셧다운 여파로 인해 내년 선거에서 다수당의 자리를 내주어야만 할 것이란 추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의료보험이나 여러 가지를 놓고 지난 민주화 10년간 우리가 미국보다는 좀 낫지라고 자부심을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한국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정책은 사실 이미 100년 전 루스벨트 대통령 때 처음 나온 것이었다. 만약 오바마 정부가 부족하고 아쉽긴 하겠지만 이 개혁 정책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오바마 정부 최대의 업적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대통령 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도, 크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평생 염원하고, 꿈꾸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과 설득력,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야 한다. 설령 패배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