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치앙마이 코딩 캠프가 시작되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함을 깨고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순식간에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00대학교 학생으로, 혹은 00회사에서 00을 맡고 있는, 세계여행 00일째, 이런 문구로 시작하는 자기소개가 순간 더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서 한 5분간 블라블라 뭔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본인 인생이 어떻게 시작해서 진행되고 있는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부아아아 왕창 쏟아내고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아, 바보 인증했다 흑… 그렇게 혼자 좌절감에 빠져 쪽팔려 하다가 내가 왜 이러나 성찰을 해보았다.
그것은 내가 ‘디지털 노마드’ 라는 단어에 굉장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주 빠르게 자기소개를 하면, 현재 노마딩 4년 차이고 치앙마이에 체류하며 ‘노마드 코더’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 30대 여성이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그런데 왠지 이 자기소개는 나를 소개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왜지? 아, 그렇다. ‘디지털 노마드’ 혹은 ‘노마드’라는 단어가 뭔가 자꾸 거슬리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나서 해쉬태그 #nomadlife 를 사용했더니 니콜라스가 놀린다.
“야! 너 해쉬태그 디지털노마드 사용하냐? 푸하하하.”
젠장, 그러면 어쩌라고? 나를 설명하는 가장 빠른 단어인 건 사실이란 말이다! 그러나 왜? 왜 그 단어를 쓰면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그건 ‘디지털 노마드’ 혹은 ‘노마드’라는 단어가 너무 상품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검색해보면 수두룩하게 쏟아진다. “How to become digital nomad?”라는 문구 아래 수많은 웹사이트, 커뮤니티, 블로그가 튀어나온다. 노마드들이 많은 치앙마이의 경우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은 워너비’ 들을 대상으로 이상한 피라미드형 프로그램들이 유행한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에서 여러 이슈들이 불거지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ㅉㅉㅉ”를 날리며 버로우를 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래 사실들을 사람들은 간과하곤 한다.
- 디지털 노마드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삶의 방식은 아니다.
- 그런데 마치 이게 ‘모든 사람들을 위한 파라다이스’마냥 포장이 되어서 겁나 팔린다.
- 현실은 ‘컴퓨터를 잘 다루는 백수’ 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 그래서 ‘컨셉’과 ‘현실’의 괴리가 굉장히 크다.
- 이건 삶의 방식 중 하나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 그러나 이 모든 걸 무시하고 “디지털 노마드 아주 좋아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나요~?” 이런 글들만 넘쳐나니,
- 아놔 저 단어에서 멀어지고 싶소, 이렇게 되는 거임.
어쩌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자면…
본인은 여행도 귀찮아했다. (글: 「난 세계여행이 피곤해」) 그저 어딘가 정착해서 농사를 짓고 싶었는데, 막상 농장에서 일하다 보니 ‘그것은 그저 로망이었군…’이라는 현실 자각을 하게 된 케이스다. (글: 「가고 싶은 곳이 없다」) 마음에 드는 국가를 찾으면 정착해서 살아야지, 라는 꿈과 희망을 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글: 「나의 집은 어디인가」) 내가 좋아서 노마딩을 하는 게 아니라, 어디 정착을 못 해서 돌아다니는 케이스인 것이다.
4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까 몸도 여기저기 고장 나서 이제는 따뜻하고 사람들 좋은 데서 오래 살고 싶은 게 마음으로 산다. 계속 돌아다니면서 살면 몸 상한다. 그뿐인가? 겁나 외롭다! (글: 「노마드 삶과 건강유지」) 물론 이러한 삶의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게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다.
위의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을 낚는데, 저렇게 해변가 앞에서 컴퓨터 하면 고장 난다. 컨셉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 컨셉은 무슨 인생 로또처럼 잡아 놓는다. 이런 문구와 함께.
디지털 노마드가 꿈이에요~
글쎄, 남들 다 노는 관광지에서 혼자 카페에 앉아 8시간 일하는 게 현실일 수 있다. 이것은 삶의 방식 중 하나이고 옵션 중 하나다. 그런데 무슨 “의사가 되고 싶어요!”마냥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엄격한 자기관리 없이는 세계여행도 그 무엇도 아닌 어영부영 코스프레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여러 삶의 방식 중 하나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 삶의 방식은 실제로 어떠할까?
기름기 쫙 빼고 담백하게 이야기하자면 프리랜서, 기업가, 혹은 원격근무자의 삶이다. 다만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일하니까 좀 더 경험치 레벨이 올라가는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이 있을까?
일단 가장 중요한 ‘밥벌이’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업가 마인드’ 혹은 코딩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기술’을 장착하셔야겠다. 밥벌이 해결을 못하면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자칫하면 ‘궁상 세계 여행자’처럼 변신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cost of living이 저렴한 동남아에는 장기 체류하는 디지털 노마드 혹은 ‘백수/히피’가 많다. 나는 백수 혹은 히피로 사는 것이 나름의 선망 직업이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개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사부작사부작 바쁘게 지낸다. 난 바쁘게 지내야 맞나 보다.
이렇게 밥벌이와 씀씀이의 밸런스가 어느 정도 맞춰지면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내가 현재 살고 돌아다니는 곳들에 대한 시야가 좀 더 넓어진다.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살기 때문에, 정보도 지식도 이해도도 높아지는 게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면, 로힝야족 관련 뉴스를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미얀마에 사는 친구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카레니족 친구를 생각하고, 버마족 친구를 생각하면서 이전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뉴스도 이제는 더욱더 눈여겨볼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진다.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살아갈 자유!
이 책 이름이 정말 정확하다. 그리고 이를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일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노마드 라는 단어를 어색해하고 불편해한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 시선을 너무 의식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냥 다음부터는 편하게 소개하련다.
저는 디지털 노마드로, location-independent하게, 원하는 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치앙마이에 현재 거주하고 있습니다. 끝!
원문: Lynn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