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미국에 거주할 때 소방관이 집으로 출동한 적이 있습니다. 곰국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그냥 외출했는데, 타는 냄새와 연기 때문에 소방차가 온 것입니다. 집에 돌아왔더니 현관문이 박살이 나 있어서 처음에는 도둑이 들었는지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소방관이 화재 진압을 위해 문을 강제로 개방했답니다.
소방관도 처음에는 아파트 매니저의 비상키로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민이 안에 사람이 있다는 엉뚱한 제보를 해서, 매니저를 기다리지 않고 강제로 문을 뜯고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부서진 현관문 등의 수리 비용으로 500불을 청구했습니다. “화재도 아니고 연기가 났을 뿐이다. 매니저가 있었다면 문이 파손되지 않았다”라고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소방서에도 문의했지만, 소방관은 급박한 상황에서 사람이 있다고 의심되면 강제로 문을 개방하고 신속히 진입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가난한 유학생 입장에서는 거금이었던 500불을 물어냈지만, 소송은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화재는 아니었지만, 상식적으로 소방관들의 주장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 따는 법을 배우는 소방관들
한국의 소방관들은 가끔 열쇠전문가를 초빙해 문을 개방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문을 파손하지 않고 열쇠공처럼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화재 진압이나 구조 요청 등에 의한 출동에서 문을 강제로 개방해도 손해 배상을 하지 않습니다. 긴급한 상황을 고려해 소방관에게 배상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소방관이 문을 강제로 개방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소방관이 문을 파손했으니 배상하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제기됩니다. 간혹 소방관들이 돈을 모아 배상하기도 합니다.
한국 소방관들은 구조 요청에 의한 출동이라도 문을 파손하지 않기 위해 문 따는 법을 배워야 하는 셈입니다.
평균 4천 건이 넘는 문 개방 출동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발간한 ‘재난 및 안전사고 분석.전망’ 보고서를 보면 지난 3년간 ‘잠금장치 개방 관련 출동’은 총 48,255건으로 전체 안전사고 대응활동의 70%에 달합니다.
잠긴 문을 열어 달라는 119 신고는 유형도 다양합니다. “어머니와 연락이 되질 않아요. 어머니 집 출입문 좀 열어주세요”라는 자녀들의 요청은 그나마 낫습니다. 술을 마시고 귀가했는데 아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도어록이 고장 났다고 출동해달라는 신고 전화가 끊임없이 접수됩니다.
열쇠공을 불러 문을 열면 보통 5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비용이 듭니다. 이 비용을 아끼려고 119에 전화를 하고, 소방관이 출동하고 있습니다.
빨리 출동하라고 아우성, 문 강제 개방은 절대 반대
소방관이 ‘문이 잠긴 집안에 어르신이 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갇혀 있다’라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하면 ‘왜 이리 늦게 오느냐, 빨리 구조해달라’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급해서 동력절단기나 문 개방장치로 현관문을 파괴해서 진입한다고 하면 대부분 반대를 합니다. 위급한 상황인데도 현관문 파손은 안 된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결국, 소방관은 옥상이나 위층에 올라가 로프를 설치해 창문 등을 통해 진입합니다. 더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지만, 손해 보기 싫다는 이기심 때문에 목숨을 내걸고 구조 작업을 펼칩니다.
난방, 전열기기 사용 증가로 겨울철은 화재 위험이 높습니다. 당연히 소방관의 출동 횟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화재를 진압해야 할 소방관이 문 개방 출동에 시간과 인력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소방관이 시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열쇠공을 대신하는 잡부는 아닙니다.
원문: The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