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근혜의 글씨를 철거하는 것은 당연하다(참고 기사: “폐위된 왕족 박근혜의 글씨, 즉각 철거하라”). 사실 글씨뿐만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 역시도 완전히 빼앗아 청와대나 대통령기록관 같은 곳에 분명히 있을, 쭉 이어지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 속에서도 박근혜의 사진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2.
박근혜는 ‘폐위된 왕족’이 아니라 ‘탄핵된 대통령’이다. 쫓겨났다는 점에서는 두 케이스는 유사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사실 두 쫓겨남은 질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전자는 왕조교체나 정권교체 같은 ‘권력 주체의 교체’ 정도가 그 배경이 되지만, 후자는 보통 ‘범법-범죄행위로 인한 대리권자의 자격 박탈’이 배경이다. 즉 전자는 어떤 이유에선가 자기 회사가 망한 것이고, 후자는 회사에서 직원이 비리를 저지르다 들켜서 정당하게 해고당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정당성에 있어서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더 열등하다. 박근혜의 사례는 바로 그 후자에 속한다.
그런 만큼 박근혜에 대해서는 아주 또박또박 힘주어서 분명하게 “탄.핵.된.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가 정말로 왕족스럽게 살았었던 것과 스스로를 왕족 비스무레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반민주주의적 독재정권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연히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주 조금의 정당성도 갖고 있지 않다.
3.
한국사회에서는 무심결에 혹은 관용적으로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는 언설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에 대해서 좀 문제의식을 갖고 그 사용을 의식적으로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큰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론적으로는 ‘시민주권의 대리권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자기 일이 바빠 이것저것 다 꼼꼼하게 따져보고 모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기 힘든 시민들이 신뢰가 가는 괜찮은 사람을 골라서 자기 일 좀 대신 맡아달라고 특정 기간 동안 자기 주권을 양도한, 일종의 ‘권한 대행’이 대통령이다.
진짜 민주주의는 이 교과서적인 이론을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는 실제의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