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준플레이오프는 놀랍게도 두산 베어스의 2패 뒤 역스윕으로 마무리지어졌다.
아마도 넥센 팬들에게는 가슴아픈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포스트시즌에서 그냥 쓸리면 그렇게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선취 2승은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그리고 이겼다면 PO에서는 상대전적 절대 우세의 LG와 싸울 수 있었다. 준PO 초반, 어떤 야구 게시판에서는 넥센의 V1에 관해 일명 ‘삼청태현’의 역사를 포함한 V5라는 호칭이 논쟁이 될 정도로 기대감은 커져 있었다. 그러나 넥센은 정말 거짓말처럼 5차전까지의 혈투 끝에 무너지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정규 시즌 마지막 한화전이 아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돌이켜 보면, 그런 상황이 나오기 전에 여름이 될 것 같다. 여름의 넥센 히어로즈는 나이트와 헤켄이 널뛰기성 피칭을 반복하는 와중 다른 선발 투수감이 없어 계속해서 초반 대량 실점으로 끌려다니는 경기를 하며 승률을 깎아먹고 있었다.
그 문제는 8월 중순이 넘어서나 오재영과 문성현으로 간신히 해결되기에 이른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과연 넥센 히어로즈에게 트레이드로 보낸 장원삼 정도의 선발투수만 있었더라도 단 한 경기에 모든 것이 좌절되어 버린 이 상황이 변하지 않았을까. 물론 야구에 만약은 없고, 그렇게 치면 LG는 주키치, 두산은 이용찬이 생각이 날 것이다. 어디까지나 넥센 히어로즈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트레이드의 귀재 이장석, 하지만 투수는 항상 잃고 있다
이장석 구단주의 넥센 히어로즈는 트레이드로 거의 손해를 본 일이 없지만, 구태여 손해를 본 트레이드가 있다면 대부분 투수 쪽이다. 장원삼<->박성훈+김상수, 이현승<->금민철, 고원준<->이정훈+박정준이 넥센 창단 후 3년간 일어난 대형 투수 트레이드다. 이 중 넥센이 이익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트레이드는 솔직히 하나도 없다.
장원삼 건은 아예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이현승<->금민철은 잘해야 지금은 루즈-루즈일 뿐이다. 고원준? 박정준은 이미 NC로 갔고(박정준+지석훈+이창섭<->송신영+신재영), 송신영의 서비스타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박정준과 여럿을 섞어 보내고 송신영과 덤으로 얻어온 신재영? 그냥 흔한 유망주 하나일 뿐이다. 고원준의 데뷔 초 퍼포먼스를 생각해 본다면, 고원준 트레이드 역시 절대로 장기적으로 볼수록 넥센의 이익이 되기 어렵다.
투수 부문에서 이렇게 지속적인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 데에 반해서, 넥센의 투수 팜은 그 출혈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지는 못하다. 특히 선발투수 부분이 그러한데, 강윤구는 올해도 그저 ‘기대되는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김영민은 2년째 후반기에 망하는 패턴을 반복했고, 김상수나 장시환, 배힘찬 등은 언급을 안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문성현과 오재영의 경우도 풀타임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오재영의 선발행은 좌완 불펜의 고갈을 일으키는 일이다. 단지 선발이 더 급했기에 오재영이 선발로 갔을 뿐. 박성훈은 올해 망했으니, 넥센도 사실상 좌완 불펜은 기복이 극심한 강윤구 외에는 답이 없는 셈이다. 심지어 강윤구는 미필이잖아? 문성현 역시 풀타임 선발로 안착한 적은 없다(그나마 어떤 면에선 11년의 문성현 기록을 생각하면 오재영보다 가능성이 있을지도).
다음 시즌의 넥센 선발진 그림은 결국 나이트에 관한 대체용병+벤헤켄+오재영+문성현+누군가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오재영이 선발로 신인왕을 따낸 건 10년 전 이야기고, 실제로 오재영이 올해 선발로 소화한 이닝은 50이닝도 안 된다. 넥센 히어로즈에게 ‘토종 10승 선발투수’는 올해 없다.
다른 4강 진출팀을 보면, 윤성환/장원삼+차우찬+배영수(삼성), 우규민/류제국(LG), 노경은(두산) 등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다. 거기에 조금 기대치를 낮춰서 9승까지 포함하면 신정락(LG), 유희관(두산) 까지도 포함이 가능할 텐데, 여기에 매칭이 되는 넥센의 토종 선발투수는 현재까진 없고 딱히 기대주라고 할 만한 사람이라고 언급되는 것이 풀타임 선발이 가능한지도 의문인 금민철, 모든 것이 미지수인 조상우 등이라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분명 변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변수라고 생각하고 영입한 것이 바로 김병현이었으니까. 물론 김병현은 시원하게 망했다. 사실 현대-넥센의 2000년대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상위 라운더 투수자원을 보면 대부분 피지컬/스피드가 중심이 된다. 장시환(장효훈), 강윤구, 조상우 등 소위 말하는 와일드 씽 타입의 선수들이다.
넥센, 팜에서부터 투수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렇다고 넥센 히어로즈가 이런 와일드 씽을 조련해 정상급의 투수로 키워본 경험이 충분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거진 다 망했고(망하고 있고 – 솔직히 장시환이나 배힘찬 정도는 이제 망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런 타입이 아닌, 당장 실전에서 쓰기에 적합했던 윤지웅은 LG로 갔다.
가뜩이나 넥센의 2군은 위치 자체도 강진이라는 극도로 열악한 위치일 뿐더러, 넥센 히어로즈는 구단 수난 와중에 투수육성에 관련된 전문가들과 인적 노하우를 많이 잃어버렸다. ‘1군 투수코치’ 최상덕이 하는 일이라고는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 외엔 없어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고, 염경엽 감독이 투수육성에 관련된 문제까지 관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팀 내 최고 강속구 유망주 조상우인데, 작년 피지컬과 강속구로 인한 발전 가능성을 보고 지명한 조상우지만 조상우에 관한 넥센의 행동은 대체로 지리멸렬했던 편이다. 작년에 영입한 고졸 유망주가 1군에서 실전 등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2군 등판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1군에서 보고 배운’다는 명목으로 1군에 동행하다 막상 조상우가 프로급 투수의 수비 기본기를 착각하면서 1군 등판에서 야수선택 미스를 일으킨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1군에서 변화구를 가르친다느니, 변화구 제구가 어쨌다느니 하는 염경엽 감독의 코멘트를 우습게 만든 일이었는데, 사실 이건 염경엽 감독 개인이 머쓱한 일 정도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육성과 더불어 2군 자체가 가진 단점을 우스꽝스럽게 노출한 일이기도 했다.
육성에 관한 노하우와 시스템이 소실되다 보니, 팀 내 최고 유망주에 대해서도 방향성이 제대로 설정이 안 되고 중구난방을 한 셈이다. 심지어 염경엽 감독은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1군과 2군간의 유기적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는데도 그러하다. 아니, 오히려 유기적인 소통의 결과물이 팀 내 최고 유망주가 2군에서 썩을 수는 없다는 방향이라면 더 커다란 문제겠지.
토종 선발투수가 갈수록 희귀해지고 있긴 한데, 그건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준수한 토종 선발투수의 보유 여부가 순위 싸움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1, 2위 팀의 용병 슬롯은 사실상 하나가 비어 있다. 윤성환-장원삼-차우찬-배영수가 모두 10승을 넘게 한 삼성은 말할 것도 없고, LG 역시 우규민과 류제국이 10승을 넘었으며 신정락은 5선발로 9승을 따냈다.
그들에게 만약 벤헤켄 수준의 용병으로 슬롯을 완전히 채워 넣을 기회가 있었다면, 넥센 히어로즈는 아예 선두 싸움을 시즌 내내 해볼 엄두조차 못 냈을지도 모른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10승을 해줄 수 있는 토종 선발 투수 둘이 있다는 것은 용병 슬롯을 감안하면 중위권 이하의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강점이고 넥센 히어로즈는 그것을 보유하진 못했다.
심지어 순위가 떨어지는 두산조차도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토종 선발 투수라는 옵션이 시즌 운영에 갖는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뻔하다. 시즌 중후반까지 롯데가 넥센의 목을 조일 수 있었던 것도 결국에는 유먼-옥스프링 콤비의 맹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야구 강팀과 컨텐더, 선발투수가 결정한다
작전도 좋고, 대타로 작두를 타는 것도 좋고, 불펜 투수교체로 아슬아슬한 리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야구는 스타팅 라인업과 선발 투수가 반을 만들어놓고 시작하는 게임이다. LG의 도약은 ‘봉중근을 마무리로 보내고 봉중근과 같은 선발투수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 설명해 낼 수 있었다. 삼성의 3연패는 ‘탈보트와 고든이 카리대와 아네우리가 되더라도 상관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넥센 히어로즈는 과연 어디쯤에 위치해 있나? 올 시즌 영웅들의 도약에서 과연 선발 투수의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었는지? 오재영과 문성현은 망해가던 팀을 간신히 건져낸 거지, 팀을 비상시켰던 건 아니다.
넥센 히어로즈는 올해 2차 1순위 지명에서 광주진흥고 하영민을 선택했다. 하영민은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우수한 볼삼비율에 나타나는 커맨드가 강점인 고졸 유망주다. 이장석은 구단의 존립을 위해서 장원삼, 이현승, 고원준 등을 팔아야 했고, 1차적으로 ‘와일드 씽’을 조련해 그 출혈을 회복한다는 계산은 현재까지는 무위로 돌아가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넥센 히어로즈 자체가 투수 육성 역량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점만큼은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염경엽 감독의 시즌 전 전훈 인터뷰를 살펴보면, 투수 부분은 거의 현실화되지 않았다.
투수는 원래 키워내기 어려운 포지션이고, 2군의 너무 좋지 않은 지리적 조건과 인프라,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열악한 코칭 스태프들의 상황, 태생적으로 높은 잠재력을 보고 지명한 와일드 씽 타입이 갖는 난제가 겹쳤다. 마지막 돌파구였던 BK가 망해버리고 윤지웅이 이탈함에 따라 넥센 히어로즈의 선발진은 내년에도 아마 많은 사고를 치게 될 텐데, 하영민의 지명은 어떤 면에선, 넥센 히어로즈가 더 이상 구위를 중심으로 투수를 지명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른바 ‘완성형 선발 유망주’를 절실히 요구받고 있는 것이 넥센 히어로즈의 도약이 이루어진 2013년의 그늘이었고, 대체로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타선이야 내년부터 용병 슬롯이 3인으로 늘어나기라도 하면 돈으로 간단하게 해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투수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장석 구단주가 트레이드로 3년 정도 압도적인 이익을 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계속 갈 것이란 생각은 무리다. 넥센과 소위 말하는 ‘포텐셜이 있는’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현상은 앞으로는 줄어들 것이고, 지속적으로 이장석 구단주에 의해 사기 아닌 사기를 쳐서 다른 팀 출신 선수들로 리빌드를 해나가는 그림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2013 넥센 히어로즈, 어떤 한 해로 남을 것인가?
스몰 마켓이고 또 애초에 ‘물주’가 없는 넥센 히어로즈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결국 완성된 양질의 유망주가 끊임없이 나오고 1군에 안착하는 그림인데, 그와는 정반대로 넥센 히어로즈의, 특히 가장 육성이 어려우면서 팀 내 전력 중요도에서 최상급을 차지하는 선발 투수에 관련된 부분이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준PO에서의 역스윕’으로 끝이 난 2013년이 오히려 가을야구를 추억하는 해가 될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장석 구단주가 도약의 해로 정한 것이 작년이고, 이장석 구단주는 원래 2013년에 우승을 하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맞았는데, 올해의 넥센은 2012년에 비하면 오히려 선발투수 전력에 있어서는 약화되었다. 단지 더욱 강력해진 화력과 더욱 강력해진 불펜, 적절한 돌려막기가 있었고, 넥센 히어로즈가 지속적인 4강 컨텐더급으로 자리잡는다면, 그 세부적인 내용은 타자 쪽에서 나오기는 힘들다.김민성은 미필이고, 이성열은 어느 정도 한계가 명확한 데다 이택근은 기량이 정점에서 점차 내려올 테니까.
영웅의 진격을 유지할 수 있는 타이어는 더이상 야수에선 찾을 수 없을 것이고, 1차적으로는 선발 투수에서 찾아야 한다. 준PO에서 한 경기라도 토종 선발투수가 넥센에게 리드를 제공하며 7이닝을 버텨주었다면 어땠겠는가? 과연 약점을 보완하기로 결심한 넥센 히어로즈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