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맥주는 싸움을 말릴 수 있다. 만약 맥주가 한 통이라면 전쟁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진 그해. 벨기에의 플랑드르 평원에서는 90m를 사이에 두고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했다. 몇 개월이면 끝날 것이라 여겨진 전쟁은 수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다. 계속되는 참호전. 사람들은 그곳을 죽음의 땅(No man land)이라고 불렀다.
화약 냄새와 피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도 하얀 눈이 내렸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신호였다.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를 어둡고, 습진 참호에서 보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장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삼키는 적막만이 흘렀다. 그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독일군 진영에서 캐롤을 부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적이 가득한 곳에 캐롤이라니. 하지만 참호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노랫소리는 가까이 영국군의 참호에도 들렸다. 그들은 말했다. “앙코르!” 총성을 주고받던 이들은 캐롤을 함께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영국군 참호로 독일 병사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참호에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던 영국 병사들은 급히 총구를 겨눴다. 독일 병사는 양손에 총… 이 아닌 맥주를 한 통 끌고 온 것이다. 독일 병사는 말했다.
“쏘지 마라! 참호 밖에 나오면 맥주를 주겠다.”
여전히 그가 제정신으로 맥주를 들고 적진에 갔는지는 분분하다. 보급된 맥주를 마시다가 취해서 영국군의 진영에 갔다는 설도 있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국 병사들 몇 명이 참호 밖으로 맥주를 받기 위해 나갔다는 것이다. 맥주 앞에 만난 양쪽 병사들은 악수를 했다.
“해피 크리스마스.”
내친김에 맥주가 한 통 더 양군의 진영 사이에 놓였다. 서로의 참호 가운데에 두고 나눠마시기 위함이었다. 과연 독일 맥주는 영국 병사들도 굴복시킬 맛이었냐고?
안타깝게도 아니다. 함께 잔을 나눈 병사의 회고에 따르면 그것은 ‘끔찍한 맛’이 났다고 한다. 독일 맥주가 아닌 근처 양조장에서 수송한 맥주였고. 몇 달 동안 참호 속에서 상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한 맥주를 마시는 장소가 전장이고, 그 날이 크리스마스라면 와인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다.
결국 양측의 지휘관이 긴급하게 만나게 되었다. 영국의 스톡웰 대위는 독일의 폰 시너 대위를 만나러 갔다. 폰 시너 대위는 그에게 맥주를 권했다. 독일에서 수송한 진짜 독일 맥주였다.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며 잔을 나누는 순간. 맥주 두 통을 중심으로 양쪽 군대는 휴전을 맞는다.
영국 병사와 독일 병사는 서로 맥주를 나누며 캐롤을 불렀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 죽고 죽이던 상대가 보급품인 담배를 나눠주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또한 이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전사자들을 위해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맥주와 함께 축구도 진행했다. 3:2로 독일의 승리였다. 하지만 독일의 마지막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맥주 통은 금세 비워졌다. 서로의 진영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지휘관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 휴전을 연장하기로 약속했다. 병사들은 훗날을 기리며 그 날의 경험에 대해 편지를 남겼다. 가까이 1월 1일에는 또 휴전이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맥주를 마실 것이란 기대를 가진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전쟁 속에서 죽어갔다. 3년 10개월 동안 900만 명이 전사하였고, 2,00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약속은 전쟁이 끝나고 90년 뒤에 이루어졌다. 2008년 12월 독일과 영국 대표단이 죽음의 땅이라 불렸던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휴전을 기념해 다시 축구시합을 벌였다. 2:1 이번에도 독일의 승리였다. 독일 측에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맥주를 가져왔다. 그들의 고향 작센 지역에서 생산한 라데 베르거 필스너였다.
크리스마스의 맥주는 꽁꽁 얼어붙은 전장을 녹였다. 총성은 없지만 유난히 쌀쌀하고 삭막한 우리의 크리스마스도 한 모금의 맥주와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해피 크리스마스.
원문: 마시즘
- 참고문헌 : 그때, 맥주가 있었다(미카 리싸넨 , 유하 타흐바나이넨)
- 이미지 :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데일리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