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한 해가 끝나고 또 다른 해가 떴다. 우리는 두 숫자 사이에서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 방안을 세우고, 서점에서 책을 사고, 인터넷 강의를 구매하는 등 굉장히 많은 것을 준비했다. 비단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대다수가 새해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준비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이런 점을 알고 사람들의 심리를 십분 활용해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일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들은 우리의 심리를 활용해 우리의 지갑을 열도록 유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연말연시를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마케팅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면서 당해 왔던 기업의 마케팅 전략, 다시 말해 넛지 전략은 무엇인가? 오늘은 연말연시라는 이름 속 숨겨진 넛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특정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
우리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인식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1년은 365일, 혹은 366일이다. 1년, 365일, 24시간이란 시간의 흐름은 결국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상대적이다. 다시 말해 연말이나 연시라는 특정한 시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휴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특정 시기를 중요한 것이라고 상대적으로 인식해서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연말과 연시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람들에게 연말이나 연시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 는 의미로 해당 시기를 인식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봤을 때, 6월 1일, 12월 31일, 1월 1일, 2월 26일은 모두 똑같은 24시간이다. 다시 말해 어떤 시간은 25시간이고 어떤 시간은 12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12월 31일과 1월 1일이라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연말과 연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새로운 시작’과 ‘끝’을 선호하는 사람들
사람들이 연말과 연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새로운 시작’ 이나 ‘마무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두 가지 예시를 통해 우리가 ‘시작’과 ‘끝’을 ‘중간(진행 과정)’보다 얼마나 중요시하고 선호하는지 알아보자.
- A: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
- B: 5년 전부터 했던 프로젝트
프로젝트 A와 B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똑같은 프로젝트라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에 더 먼저 반응했는가? 대부분 A 프로젝트에 더 많이 반응했다. A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다. A는 ‘새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C: 언제 끝날지 미정인 프로젝트
- D: 5시간 뒤에 끝나는 프로젝트
끝이 보이는 프로젝트와 ‘끝이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를 철저하게 분리한 경우, 똑같은 프로젝트라도 C보다는 D를 더 선호한다. D를 C보다 더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좋은 프로젝트여서가 아니라 D가 ‘끝’이 가깝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시작에 맞춰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끝이 보이는 것을 좋아하며, 끝이 보였을 때 지금까지 했던 걸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연말연시에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한 해의 소회를 밝히길 선호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의 심리에 맞춰 기업들은 어떻게 소비자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들까? 그 비밀은 우리가 인터넷에서,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수많은 문구에 답이 있다.
‘새로운’에 담긴 넛지
연말연시, 우리는 길을 걸으며 수많은 마케팅 메시지와 마주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메시지는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세요’이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사이를 지나치지만, 이 메시지에는 사실 사람들의 소비를 유도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올해 후회할 일이 많았죠?: 변화의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일에 부딪히기도 한다. 보통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잘 기억한다. 나쁜 일을 더 잘 기억하는 이유는 나쁜 일이 정체되어 있거나 문제를 회피하려고 할 때 뇌가 보내는 특정한 신호 때문이다. 즉,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고,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뇌’가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식인 것이다.
우리는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올해의 나쁜 일들, 다시 말해 뇌의 특정한 신호를 파악하면서 한 해를 돌아본다. 대개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수많은 좋은 일보다 몇몇 좋지 않았던 일들을 반성한다. 이런 과정을 겪게 되면 우리는 ‘이번에는 반드시 올해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다시 말해 신년이라는 새로운 시기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는 욕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먹도록 만드는 마케팅 메시지는 우리의 소비를 자극하는 넛지가 될 수 있다.
새해에는 달라질 거야: 우리는 꼭 새해에 계획을 세운다
또한 ‘새로움’을 자극하는 마케팅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자기발전’에 대한 욕구를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저절로 구매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과거에 대한 나쁜 기억으로 후회감을 유발하면 무엇인가 마무리되는 부분에서 우리에게 있던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새로운 시작 부분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즉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시기는 대부분 무엇인가를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 연말연시에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경향 때문이다. 결국 새로움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계획을 세우게 만들어 이런 과정에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구매하게 하려는 넛지가 될 수 있다. 즉 기업은 결코 당신의 안위가 걱정되어 그런 마케팅 메시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도 하는데’에 숨겨진 넛지
만일 어떤 공간에 갔는데 100명의 사람이 하나같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내가 하려고 했던 행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책을 읽을 것인가?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주관을 지키기보다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 즉 어쩌면 당신은 원하지도 않았지만 책을 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사회적 동조’라고 부르며, 사람들이 사회적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다양한 마케팅 전략과 메시지가 난무하지만, 제일 많이 쓰이는 마케팅 메시지에는 아마 ‘당신, 다른 사람도 하는데 당신은 안 해요?’라는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즉 굳이 연말과 연시에 ‘새해에는 멋진 사람으로 살 거야’ 혹은, ‘잘못하지 않은 상태로 살 거야’라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사실 연말과 연시라고 다이어리를 굳이 구매할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다짐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었음에도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사람이 그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동조는 많은 사람이 똑같이 그 행동을 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현상이나 패턴이 발생할 경우에 나타난다. 그래서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명할 때 반드시 이런 문구를 명시한다.
20만 명이 사용한 A!
장안의 화제가 된 제품 B!
이런 문구를 달아놓는 이유는 단순히 제품이 좋음을 홍보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도 사는데 나도 사야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다. 20만 명이 됐건 5명이 됐건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사람의 숫자나 경험기를 명시해 놓으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사는 제품인데, 나도 내 미래를 위해 저 물건을 구매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동조 의식을 가진다.
이런 경우 사용자 수나 경험기를 명시하지 않은 제품보다 더 많이 팔린다. 입소문 효과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는 사람들의 사회적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소비라는 과정에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꼭 필요한 것을 구매해라
당신이 연말연시에 계획을 세우고 소비하고, 시간이 지나면 소비를 후회하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선 당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구매해야 한다. 소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계획을 세울 때 다양한 변수를 일단 한 번 고려해보라. 무리한 계획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계획을 느슨하게 잡으며, 이에 따라 소비해야 하는 항목도 조절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계획의 과정에서 신중하게 변수를 고려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연말연시를 준비할 때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쓸 필요가 적어지고, 수많은 마케팅 메시지의 유혹에 굴복할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