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업재해(산재) 사망률이 OECD 회원국 중 1~2위를 다툰 지가 벌써 10년이 넘는다. 지난해에도 산재 사망자 숫자가 1,777명이었으니, 하루에 네 명 이상 생을 달리한 셈이다. 이 정도 되면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질 만도 하지만 올해에도 ‘처음이 아닌’, 그래서 더 안타까운 산재가 연이어 발생했다.
우리 사회에서 산재는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비슷한 형태로, 그것도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이미 많은 학술논문이 나이가 어린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 혹은 이주 노동자일수록 산재에 취약하다는 점을 보고한 바 있다. 소개하는 논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이들이 산재에 더 취약한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 답을 찾고자 했다.
캐나다 ‘일과 건강 연구소’ 모란 레이 박사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안전 과학(Safety Science)》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은 노동자들이 산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자원과 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없을 때 산재에 더 취약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개인 특성이나 업무 특성에 따라 산재 고위험 집단을 구분하는 것은 산재 위험 요인이 마치 특정 집단에 내재하거나 개인의 부주의, 혹은 위험 행동 때문에 산재가 발생한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즉 이러한 관점에 기초한 연구는 안전교육과 노동자 행동 변화만으로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는 성급한 해결책으로 이어져 산재 위험을 높이는 실질적 기전을 간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노동자 개인 특성이 아니라 산재 위험성을 가중시키는 더 근본적인 맥락 요인을 살펴보고자 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산재 경험 여부, 작업 중 산재 위험 요소에 대한 노출 정도, 산재를 예방할 수 있는 자원에 노동자들이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 정도에 대해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연구팀은 산재 위험 요소 노출만이 아니라 산재 위험을 줄일 자원에 대한 접근 정도가 산재 취약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했다. 논문에서 산재에 대한 취약성은 “작업 중 산재 위험 요소에 노출되는 것 + 산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자원의 부족 혹은 자원에 대한 접근이 불충분함”의 결합으로 정의했다.
이때 산재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자원은 세 가지로 구분했다. ① 산재 방지를 위한 정책과 적절한 절차의 존재, ② 작업장 안전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 인지, ③ 본인과 동료의 산재 예방을 위해 행동할 역량이 그것이다. 연구팀이 구축한 산재 취약성의 모형은 다음의 표와 같다.
여기에서 산재 위험을 줄일 자원에 대한 설문 문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문항들은 산재 예방을 위한 적절한 예방책들이 존재하는가 여부를 넘어서 노동자의 관점에서 산재 예방책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실제로 적용 가능한지, 특히 작업장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는지 여부를 묻는다.
이를테면 ‘산재 방지를 위한 적절한 정책과 절차가 존재하는가’와 관련해 작업장 안전 문제에 대해 노동자가 관리팀과 정기적으로 소통을 하는지, 작업장 환경과 안전이 생산성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노동자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업장 안전 수칙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지는지 등을 질문했다.
또한 ‘작업장 안전에 대한 노동자 권리와 책임 인지’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근무환경과 건강, 안전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권리와 책임을 아는지, 고용주의 책임을 분명히 아는지, 만약 안전과 상해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를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는가를 아는지 등을 물었다.
끝으로 ‘산재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과 관련하여, 작업장 안전과 건강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지, 근무 환경 내 위험 요인을 문제 제기하더라도 회사가 나에게 불이익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나의 일을 안전하게 완료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지 등에 대해서 질문했다.
자료 분석 결과 가설로 세웠던 것처럼 업무 중 산재 위험 요소에 대한 노출된 경우, 그리고 이를 예방할 자원에 접근성이 불충분한 경우 모두 실제로 산재 발생과 유의하게 관련되었다. 특히 산재 위험 요소에 노출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산재 예방 자원이 불충분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에게서 산재 경험률이 높았다.
산재 예방을 위한 정책과 적절한 절차가 불충분할 때, 그리고 산재 예방을 위해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일 때, 실제로 산재 발생이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동일한 산재 위험에 노출되더라도 노동자가 이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자원이 없다면 산재에 더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동일한 자료를 분석하여 국제학술지 《미국산업의학회지(American Journal of Industrial Medicine)》에도 발표했다. 나이가 어리고, 비정규직이며, 사업장 규모가 작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산재를 예방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한 접근이 더 제한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즉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조건에 놓인 노동자일수록 산재 예방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이고, 이러한 구조적 요인이 결과적으로 산재에 대한 이들의 취약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단순히 작업장 안전수칙이 존재하는가 여부보다 노동자들이 산재 예방을 위한 자원에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가, 활용할 수 있는가가 산재 예방에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때 자원은 안전수칙뿐 아니라 안전한 근무환경을 위해 노동자가 행동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근무환경이 노동자의 권리로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환경까지 포함한다.
한국 사회의 하도급,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은 산재를 예방할 자원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근로자파견법이 제정되고 2004년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간접고용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간접고용이 급격히 늘었다.
간접고용은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책임으로부터 회사를 자유롭게 한다. 산재가 발생해도 원청 기업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에서 간접고용은 확산되고 위험의 외주화는 고삐 풀린 경주마처럼 질주했다. 고용주의 책임소재가 구조적으로 불분명하니 노동자의 안전문제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최근 잇따른 대형 산재에 대해 정부는 여러 방책을 제시했다. 소개한 논문에 비추어 본다면, 단순히 산재 예방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이 예방책에 노동자들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접근 가능한지, 노동자들이 실제로 이를 활용하고 그들의 안전망으로 쓸 수 있는지 구조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자를 산재에 취약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책을 요구한다.
원문: 시민건강증진연구소 / 필자: 조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