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여친에 굶주린 분께서 결혼 관련 뉴스만 나오면 번역하고픈 본능을 참지 못해 The atlantic의 기사를 번역했습니다.
기술과 자동화가 중산층들의 일자리를 파괴하면서 빈부 격차를 더 넓혔다. 세계화는 제조업 같이 괜찮은 수준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직장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술과 세계화에 대한 것들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잊어버리자. 우리네 삶과 밀접한 영역에서 중산층들이 느끼는 고통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바로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미국의 한 가정을 상상해보자. 부부가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으며, 최소한 18세 이하 자녀가 한 명은 있을 터이다. 그 가정은 작년에 미국의 중산층 평균 소득인 8만1000달러(중위수 기준)를 벌었다.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벌이를 한 셈이다. 게다가 조금씩이나마 소득은 장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인플레이션 조정 후에도 그렇다.
그렇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이런 모든 돈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자. 남편에서 나온 게 아니다. 아내에게서 나왔다!
과거엔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돈을 벌기 위해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맡아 했다. 그러다 갑자기 20세기 후반 무렵부터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고, 1950년경에는 32%의 여성 노동 참여율이 최근 10년 들어서는 거의 60%까지 증가했다. 여성들이 교육 격차를 줄임으로써 결혼과 관련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일상들이 변했다. 이전엔 워커홀릭들은 집안 일을 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배우자를 찾곤 했었다. 오늘날 그들은 또 다른 워커홀릭을 찾을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결혼한 워커홀릭 부부들은 둘 다 일을 하길 원한다. 실제로 종종 그런 이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기혼 여성은 1950년대 이후로 주당 평균근무시간이 세 배나 증가했지만, 이로 인해 그 외의 모든 인구통계학적인 요인들과 충돌을 빚고 있다.
그래도 좋은 소식들이 있긴 하다. 오늘날 여성들은 학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계 수단도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헌데 좋지 못한 소식은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소득 증가가 바로 아내들이 일을 한다는 데서 기인한 바가 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오늘날 미국의 가구 소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맞벌이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가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자. 2012년 인구 통계 자료에 의하면,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일반적인 가정은 1980년 이후 인플레이션 조정 후 소득이 1%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렇지만 맞벌이 부부 가정은 29%나 증가했다.
홀부모(Single-Parent) 함정
취업 주부가 지난 50년 동안 일반적인 미국 가정의 영웅인 셈이다. 문제는 “일반적인”이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싱글맘이나 싱글대디는 전체 가정에서 26%를 차지하고 있는데, 1950년대에 비해 두 배 늘어난 수준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나오는 그래프는 그 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싱글 대디나 싱글 맘 가정들의 중위수 소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체 되어 있거나 심지어 줄어들었다. 아내의 노동참여 유무를 떠나 한쌍의 부부가 있는 가정에 비해 훨씬 소득이 뒤쳐져 있다.
싱글 맘과 싱글 대디는 빈곤해질 가능성이 크다. 단지 그들 옆에 배우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만 아니라 애당초 보유한 돈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가지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결혼이 상류층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업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의 감소는 오로지 빈곤계층에서만 일어났다. 최빈곤층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에서 결혼율은 급격히 감소했다.
홀부모 위기는 소수층에 집중되어 있다. 패필리 팩트에 의하면, 백인들 사이에선 홀부모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소수 계층들 사이에선 보편적이다. 히스패닉계 아이들의 50% 이상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으며, 흑인계 아이들의 76%가 그러했다.
사회 소수층 사이에서 홀어버이 붐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사회학자 윌리엄 줄리어스는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과 범죄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조지 애커로프와 자넷 옐런은 브루킹스 연구소에 발표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낙태와 피임 법안이 한 아이의 출생을 여성의 육체적인 선택으로, 그리고 아이의 부양을 남성의 사회적인 선택으로 만들었다“
원인들은 여러모로 미스터리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빈곤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서 결혼율의 감소는 부모의 추가적인 소득, 일과 삶의 균형,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들을 망쳐놨다. 결혼 격차와 소득 격차가 서로 간에 자가증식을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결혼 격차
결혼 불평등 위기는 상위계층에선 숭고한 사이클을 창조해냈다. 반면 저소득 계층에서는 악랄한 사이클을 만들어 냈다. 교육을 받은 미국인들과 그렇지 못한 미국인들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밀어 넣어버린 것이다.
찰스 머레이는 아틀랜틱과 공동집필한 저서 “Coming Apart: The State of White America”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1940년과 2003년 사이에 대졸자는 대졸자끼리, 고교 중퇴자는 고교 중퇴자끼리 결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학 졸업자들은 현재 대학을 졸업한 부모를 두었을 가능성이 크고 대졸자 부부는 자녀도 대학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정의 자녀일수록 대학졸업의 혜택을 누리며 부부가 함께 일하는 가정을 꾸릴 가능성도 크다”
이것이 소득 불평등 이면에 있는 결혼 위기이다. 복잡한 것이 아니다. 어떤 회귀분석도 요구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수학 공식이다.
“하나보다 둘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