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창발출판에서 크라우드 펀딩 출간 준비 중인 『우린 이렇게 왔다』 중 「생물학자가 개발자가 된 이유, 김예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시작은 좋았다. 2005년 한국에서 대학을 위해 미국으로 왔다. 미국 시민권이 이미 있어서 신분상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사실상 철이 들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와보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 등 다른 유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갖은 고생 끝에 세포생물학 학위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질병 연구소에 취직했다.
연구소 차체 설비도 좋고 무엇보다 연구 결과를 바로 적용해볼 시설도 있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흔히 말하지만 과학 연구에서는 꿈만 같은 양단간(End-To-End) 개발 환경이기에 대학에서 이론으로만 성립시키고 실제로는 실험 못 했던 수많은 연구를 이제 해볼 수 있다는 부푼 마음을 가지고 연구원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라는 테두리 밖, 돈으로 굴러가기에 언제나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연구소의 현실을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경력이 높아질수록 실제 연구는 뒷전이고 돈이 나오는 프로젝트를 받아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몇몇 대표 연구원은 연구소에서의 자기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다른 팀을 비방하고 다녔다.
회사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팀 중 하나가 단지 예산을 다 쓰기 위해 미리 사고 계획 없이 내버려 둬서 너무나 늙어버린 8번째 기니피그를 내 손으로 안락사시킨 날, 연구소와 그동안 공부했던 많은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연구소를 그만두고 커리어 전환을 결심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마존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로 일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한참을 많이 돌아갔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성실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면 미국에서의 커리어 전환,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직종으로의 전환은 어렵지 않다. 무조건 부딪쳐라. 실패해도 손해 볼 건 없다.
현재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2018년 현재 아마존의 개발 엔지니어 3년 차다. 기계학습이나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같은 특별한 전문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백엔드(Backend) 개발자로서 이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기존의 여러 서비스를 찾아내 묶어서, 혹은 필요에 따라 완전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서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은 기존 평일화된 서비스를 이용자 개개인 성향이나 행동, 위치에 따라 개인화된 결과물을 내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어떤 방식으로 커리어 전환과 취업에 성공했나?
나이 스물여덟, 대학교에 다시 학사 과정으로 입학했다. 다행히 기존 학위가 이공계열이라 컴퓨터 공학 쪽 전공과목만 듣고 나머지 교양 과목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상담사가 각 학기를 전공과목으로만 채우는 게 매우 힘들다고 경고했으나 사실 그때는 경제적인 사정도 있어 최대한 빨리 다시 졸업해서 일을 시작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름학기까지 다 합치면 2년 만에 컴퓨터공학으로 다시 졸업할 수 있었다. 첫 1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온종일 전공 책만 잡고 코딩한 기억밖에 없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컴퓨터공학 전공에서는 ‘캡스톤 프로그램(Capstone Program)’이라고 졸업 전까지 12주간 학교 밖의 기업체에서 인턴을 하거나 학교 안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3학년 여름방학 기간 하는 것이 제일 좋은데, 기업에서 여름 인턴을 하면 끝나는 날 심사를 통해 정직원 오퍼를 미리 받을 수 있다. 받으면 학교로 돌아가 4학년에 원하는 공부를 하고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수많은 곳에 여름 인턴을 지원해서 수많은 고배를 마신 결과 아마존 여름 인턴에 합격하고, 무사히 인턴 기간을 마쳐 마지막 날 정직원 오퍼를 받았다.
취업까지 어떤 준비를 얼마의 기간 동안 했나
6개월간 쉬지 않고 인턴 인터뷰를 준비했다. 개발자 인터뷰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기본적인 Behavior 인터뷰, 전화로 하는 Technical 인터뷰, 그리고 직접 회사에 찾아가서 하는 Onsite 인터뷰가 있다. Behavior 인터뷰의 경우 실제 사회생활도 해 보았고 면접도 많이 보았기에 따로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화 인터뷰의 경우 컴퓨터 스크린을 인터뷰어와 내가 공유하면서 코딩을 하는 것이다.
Onsite 인터뷰의 경우 화이트보드에서 직접 코딩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짬이 날 때마다 예시 문제가 나온 책을 풀고 해커랭크(HackerRank) 같이 코딩 문제를 온라인으로 풀 수 있는 툴을 찾아서 연습하고, 친구들이나 멘토 및 주위 개발자들을 찾아가서 모의 인터뷰를 해보았다. 모르는 분야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아는 분야에 한해서는 누가 어떤 문제를 물어도 최적의 답을 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취업까지 제일 힘들었던 준비과정은?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교에 간 것에 대한 주위의 시선, 일을 더 하지 않기에 오는 경제적 압박 같은 것 사실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기에 참고 지냈다. 취업까지 가장 큰 고비는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본격적인 전공과목을 듣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동시에 인턴 인터뷰 준비도 해야 하는데 전공과목으로 시간표를 도배해 시간상 도저히 여유가 없었다. 학교 과제, 프로젝트, 시험 같은 것만으로도 아주 바쁜데 그사이에 인터뷰 준비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주말, 늦은 밤, 학교 마칠 때마다 짬을 내서 모의 인터뷰하고, 쉬지 않고 코딩 문제도 풀어가면서 준비했다. 학교 과제, 프로젝트, 시험 같은 건 마침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있어서 분업했다. 이런 식으로 해도 오랫동안 하루에 4시간 이상 잘 수 없었다.
두 번째 고비는 실제 인턴십을 하면서 있었다. 인턴십은 돈을 받으면서 느긋하게 새로운 일, 혹은 실무를 배우는 시기라고 오해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정직원을 향한 12주짜리 인터뷰 코스다. 담당 매니저가 첫날 말해준 정직원 합격의 기준은 우스울 정도로 명쾌했다. 12주 동안 주어진 프로젝트를 끝내고 deploy하면 합격, 아니면 탈락.
내 경우 인턴 팀 배정의 운이 나빠서 학교에서 집중해서 공부한 분야와 전혀 다른 네트워킹 관련 부서에 배정됐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언어(Ruby)를 써야 했기에 인턴 시작하자마자 알아서 독학해야 했다. 게다가 배치된 부서는 아마존 내부에서도 높은 강도의 업무로 악명 높은 곳이라서 나를 도와줘야 할 멘토는 거의 자리에 없었다. 다행히 요즘은 인터넷 강의도 많고 좋은 서적도 많아서 독학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12주 중 첫 3주는 정말 많은 시간을 단지 나의 실력과 지식을 시작점까지 올려놓는 데 보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직하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흔히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테크 기업을 ‘미국 일류 대기업’이라고 부르며 ‘엘리트’만 있는 곳이라고 겁부터 먹고 보는 사람이 많다. 반은 사실이고 나머지 반은 거짓이다. 물론 탈지구급 지능이나 실력을 갖춘, 흔히 외계인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도 존재한다. 동시에 ‘쟤는 도대체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지?’ 생각할 정도의 사람도 많다.
자기 실력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예 처음부터 지원을 포기한 사람에게는 실력 평가는 면접관이 하는 일이지 스스로가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취업 비자가 나오지 않을 거 같아서 지원 안 하는 사람에게는 아마존만 해도 수많은 개발자가 비자를 받아 일하며, 팀원들이나 매니저는 그런 부분에 아무 관심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취업 비자가 필요할 경우 단지 인사팀의 일이 조금 더 많아질 뿐이다.
절대로 겁먹거나 안 될 것이라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부딪쳐 보길 권장한다. 특정한 기업에 떨어져도 손해 보는 건 하나도 없다. 개발자의 공급보다 개발자의 수요가 훨씬 높은 현재 인력 시장에서 다른 곳에 지원하면 그만이다.
원문: Jin Young Kim의 브런치 / 필자: 김예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