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 않고 이를 지렛대 삼아 일본과의 적극적 외교를 천명하면서 대일 외교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협상 파기, 재협상 요구가 피해자를 위한 길일까?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초강대국도 아니고 북한처럼 국제적 비난을 무시한 채 막가파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상대가 있는 중대 외교 현안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리면 뒷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나?
일본이 재협상에 응할 가능성도 없고 국제적으로 압력을 넣어 일본의 태도 변화를 강제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만 재협상을 주장해보았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 정부가 협상 파기, 재협상 요구를 하는 건 피해자들에게 일종의 희망고문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정부 간 재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그 대신 기념시설 건립 및 학문적 연구, 시민사회 및 학계 차원에서의 국제적 연대를 지원하여 역사의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
2. 보수 정권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합의한 대북한 합의를 파기한 것과 차별화
지난 보수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북한과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파기했다. 다 종북몰이를 위한 국내 정치적 목적에서 기획한 것이다. 반일 민족주의는 보수보단 진보 쪽에서 많이 동원하곤 한다. 협상을 파기하면 반일 민족주의를 국내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물론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잘 된 것이고,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원주의 사회인 한국은 정권이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이렇게 정권 따라 국가 간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 반복되면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3. 일본이 우습게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과 중국을 대할 때와 달리 일본을 막대해선 우리한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에겐 경우에 따라 고개를 숙이기도 하면서 일본에겐 지난 정부가 합의한 것을 파기하면서까지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앞뒤가 맞는 행동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1 동맹(미국) 3 우호(중국, 일본, 러시아)가 한국이 나아가야 할 국가 전략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그렇게 볼 때 하루빨리 대일본 외교를 정상화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원문: 장신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