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손님이 오시다
예부터 황금 어장으로 불리는 군산에선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집에 오신 손님 문전박대하면 벌 받고 박대로 모시면 복 받는다’고요. 4년 전, 전북 군산시 성상면에 위치한 한 박대 가공 공장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저희 공장을 쓱 둘러보시더니 생선은 잘 말릴수록 맛과 영양가가 높아진다면서 황금박대를 칭찬해주셨어요. 알고 보니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였어요. 전 그분이 그렇게 유명하신 줄 몰랐어요. 알았더라면 기념 촬영이라도 했을 텐데….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하던 박금옥 아리울수산대표는 “덕분에 ‘박대’란 생선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사라져가는 전통의 맛을 붙잡다
맛 칼럼니스트도 반한 박대는 군산의 얕은 바다에서 잡히는 납작한 모양의 생선입니다. 금강과 만경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모래와 갯벌에 살지요. 예부터 차례상과 명절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군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입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과 생태계의 변화로 어획량이 급감해 이러다 군산의 명물 박대가 식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8년 전 시숙이 편찮으셨을 때 어릴 적 잡숫던 박대묵을 찾으셨어요. 박대묵은 박대 껍질을 말려 고아서 만드는데 요즘 보기 힘들어요. 결국 구하지 못해 직접 만들어드렸죠. 그때 남편이 ‘누군가는 향토 음식을 지켜내야 하지 않겠느냐’ 하더군요.
그 누군가가 바로 아내 박 대표가 됐습니다. 2012년 그는 국내 최초로 박대가공공장 ‘아리울수산’을 설립했습니다.
직원의 60%가 취약계층… 70대 어르신도, 신용불량자도 다녀요
아리울수산은 일자리형 사회적 기업이자 여성 기업입니다. 물의 순우리말인 ‘아리’란 뜻에 울타리 즉 터전을 뜻하는 ‘울’을 합쳐 아리울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며 많은 취약계층에게 재기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어요.
이 나이에 누가 취직을 시켜준답디까? 자식들 신세 안 지고 손주들에게 베풀고, 나 쓸 것 쓰고도 통장에 돈이 남으니 감사한 일이죠.
67살 박수연 할머니는 6년째 아리울수산 공장에서 일합니다. 이 공장에는 박 할머니뿐 아니라 60대와 70대 어르신 9명이 정 직원으로 일합니다. 50대는 젊은 축에 속해요. 올해 입사한 50살 이두현 씨는 공장을 운영하다 사업에 실패해 지난해 폐업했습니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번번이 나이 제한에 걸렸습니다. 그 사이 신용불량자가 됐지요.
이 씨는 아리울 수산에서 일하면서 차근차근 빚을 갚아가고 있습니다.
아리울 수산의 직원 수는 18명으로 이 가운데 60%가 넘는 12명이 취약계층입니다.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 다문화가정, 고령자들입니다.
아리울수산의 직장문화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이 있으면 덤벼들어 함께 하고 제 식구처럼 감싸주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박 대표는 스스로를 이 공장의 ‘가장’이라고 소개합니다.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굶기지 않고 계속 성장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일까요, 2012년 첫해 3억 8,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아리울수산의 사랑海 황금박대는 지난해 연 매출 20억 원을 올리는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인 식품 ‘박대’
박대는 꾸덕꾸덕 말려야 제맛이 나고 영양도 풍부해집니다. 사랑海 황금박대는 3년을 묵혀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간하고 어떤 인공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최첨단 냉풍 건조실에서 반건조과정을 거친 뒤 영하 40도에서 급랭시켜 한 마리씩 진공 포장돼 나옵니다.
비리지 않고 가시 발리기가 쉬워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 딱 좋은 생선입니다. 열량과 지방, 탄수화물이 적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제격입니다.
여기에 단백질과 칼슘, 그리고 시력에 좋다는 회분 성분이 풍부해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입니다. 특히 반건조 과정을 거치며 단백질, 미네랄, 무기질을 비롯한 영양분이 더 강화됩니다.
“봉사 30년 터득한 지혜… 수만 배로 은혜 입고 삽니다”
박 대표는 박대 공장을 운영하기 전부터 왕성한 봉사활동으로 군산에서 유명합니다. 원불교 신자로서 30년째 군산시 지부의 원봉공회 회장을 맡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지요. 7년 전 부터는 시내 무료 급식소의 소장을 맡았습니다.
군산경로식당에 마련된 무료 급식소에는 매일 350명~400명이 점심을 먹습니다. 현재 시에서 145명의 식사 지원이 이뤄지고, 모자라는 부분은 여러 후원단체와 아리울수산의 이익금으로 충당합니다. 박 대표는 7년 째 매년 1,500만 원을 운영비로 전달했지요. 봉사가 일상이 된 그는 사업을 하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제가 30년 동안 작은 봉사활동을 했지만, 사업을 하면서 베푼 것보다 천 배 만 배로 은혜를 입고 삽니다.
창업 때부터 박 대표를 곁에서 도와준 윤병근 이사는 아리울 수산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요약하더군요.
사업을 하다 보면 어려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그런데 희한해요. 벽에 부딪혀 갈 곳을 헤맬 때마다 신기하게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귀인이 나타나요. 아마도 평소에 쌓아 둔 덕이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문: 이로운넷 / 글: 백선기 / 사진: 아리울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