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스쿨’로 만난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불안감을 무언가를 하면서 덜어냈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벌과 실력을 가졌음에도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 같은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문제는 불안감이 반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욱 증가할 뿐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초월적 불안을 겪는 사람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결코 누군가로부터 쫓기지 않는데도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산다. 뭐든지 빨리해야 하고, 정확해야 하며, 두세 번 이상의 같은 실수를 하면 용납할 수가 없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불안하다며 쉬지 않고 무언가를 배운다. 하지만 당장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으며 전략적인 커리어 쌓기보다는 그 불안감을 감소시킬 또 다른 재미를 쫓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온전히 쌓아야 할 전문성은 답보 상태다.
불안하다. 남보다 뒤처지면 특히 더 그렇다. 이상하게도 누군가 망했다는 이야기보다는 누군가 대박이 났고, 좋은 회사에 들어갔고, 괜찮은 삶을 산다는 이야기들이 날 괴롭힌다. 그런 이야기를 보거나 들을 때면 부러운 동시에 질투 또는 ‘어쩌라고’ 식의 마음가짐이 든다. 만감이 교차하는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이야기 속 주인공을 비교한다. 자연스럽게 초라한 마음이 들고, 무언가 하지 않으면 못 참겠다 식의 생각을 한다.
불안감은 결코 다른 이들이 나에게 강요하거나, 실제로 쫓아오는 등의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욕심 또는 욕구에 의해 발현되는 특정한 상태이다. 물론 긍정적으로 부분도 있다. 스스로 경쟁 상태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뛰어난 몰입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경쟁하지 않지만 경쟁상태인 것처럼 스스로를 독려해 잠재력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명확한 목적성에 의한 욕구, 재능, 노력 등의 3박자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한다. 원하는 목표에 달성할 만한 충분한 동기와 노력에 스스로의 충분한 인정이 있고, 다음 단계의 도전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며 채찍질하기 바쁘다. 자칫 자신의 노력에 대한 부정을 넘어 스스로의 존재감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자신감은 충만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보통 이런 모습을 많이 보인다. 만나 본 많은 이들에게서 나타난 공통적인 모습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그걸 마치 절대적인 기준으로 치부한다. 많은 불안과 관련된 책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나다움’을 통해 나와 세상을 바라봐야 하나 쉽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대부분 스스로를 쫓기는 듯한 상태에 놓고 더욱 빠르게 달리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 같다. 과연 꼭 그래야 할까.
어렸을 적부터 타인으로부터 나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비교하면서 성장한 대한민국에서는 애초에 무리가 아닐까 싶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형제자매끼리의 비교로 시작해 학교에 가면 동급생과의 비교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기기도 한다. 심지어 요즘엔 현재 거주지가 어디고 몇 평인가에 따라서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간 저학년 아이들끼리 비교한다.
물론 현재 상황과 결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다 가질 수도 없다. 무엇보다 스스로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 하고,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에 그쳐야 한다. 그 사람이 그러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보이는 결과를 위한 수많은 시도와 도전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만 보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 투성이지만 우리는 과정을 볼 수 없기에 보이는 부분만 가지고 판단한다. 여기서 오류와 편향은 시작된다.
조급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자기객관화
1.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으로 인과관계를 살펴보자
특정 결과에 대한 제대로 된 객관적 분석을 해봐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지표들을 활용해 제대로 된 비교를 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하는 실험이어도 좋다. 각자가 가진 적성과 재능은 미묘해 보이지만 분명히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관점 훈련은 꾸준하게 해야만 효과가 있다. 각자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뀔 수 없다. 꾸준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변화를 꾀할 수 있다.
2. 스스로의 ‘욕구 체계’를 명확히 알아보자
사람들은 삶 속에서 독특한 각자의 욕구를 분출한다. 밥은 아무거나 먹어도, 꼭 괜찮은 디저트를 곁들이는 사람, 옷은 아무 옷이나 입어도 꼭 신발은 맞춤으로 신는 사람, 환경을 생각해서 가급적 1회용품을 안 쓰려는 사람 등.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욕구 체계의 우선순위 정도는 스스로 매겨볼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구분함으로써 욕구 해소의 규칙을 세워야 한다. 욕구 체계를 분석할 경우 단순히 오감 만족 등으로 일반화하면 안 된다. 포기하지 못하는 특정 행동. 생각, 브랜드, 아이템 등 그들이 어떤 감정을 자극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2-1. 좋아하는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을 구별하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이들이 정말 못하는 것 중 하나가 ‘구별’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다 가지려 하고, 그래서 해야 할 일은 늘어나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 늘 쫓긴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에 의해 채워야 할 지식과 추구해야 할 전문성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단순히 배우는 것에 쫓겨 필요하지도 않은 자격증을 따는 데 굳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이유는 없다. 집중할 대상이 여럿 있는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다.
2-2. 결정한 것들과 결정해야 할 것들을 분리하자
결정된 것은 되돌리기 어렵다. 자기객관화를 위해 더 미래지향적인 생각과 판단이 필요하다. 당장 벌어진 일의 원인을 찾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지, 과거의 작은 실수가 불러온 후폭풍에 목매 정작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생각과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전략적 사고와 결정은 미래지향적인 사고로부터 출발하고 다양한 것을 융복합하려는 통합적 사고와도 맥을 같이 하며, 이는 시스템적 사고로 귀결될 수 있다.
3. 상위권의 욕구와 직결되는 일 또는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자
욕구 체계 우선순위 완성은 어느 부분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내가 정말로 잘하고 싶은 분야는 따로 있고, 이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바라는 전문성의 상(像)은 직업적 가치와 연결, 보다 깊이 있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기부여는 남이 아닌 나를 통해서만 오래 갈 수 있다. 그래서 무언가 ‘끌리는 것’에 따라 선택하되, 그 선택이 불러올 후폭풍을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으로 접근, 선택의 폭을 줄이거나, 성공 가능성을 높이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4. 특정 지점이 아닌 ‘구간’을 선택하자
선택으로부터 발생하는 기회비용으로 선택을 의도적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선택은 그런 선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간’ 또는 ‘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결과에 원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원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찾지 못한 원인이 있다고 가정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꼭 좋은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좋은 대학이라 불리는 곳의 마케팅 관련 학과를 나왔다고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고수들은 천차만별이고, 그들이 경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목표보다 명확한 목적, 가능성, 상황 등을 고려한 선택이 필요하다. 물론 어디나 기본은 존재하지만, 언제까지 ‘기본’만 말할 수 있을까.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변하지 않는 노멀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모두가 불안한 시대, 불안감을 이용하자
하루에도 수십 번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 직접적으로 불안을 자극하는 각종 뉴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론 잠시 눈을 빼앗길 수는 있다. 끝없는 열등감으로 가득 찬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고충과 콤플렉스가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도 모두가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들과 나는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또한 불안감을 그대로 두고 스스로가 행복한 것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한다. 가만히 불안감을 온몸으로 느끼고만 있지 않다는 말이다.
불안감을 행복감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냥 인정해야 한다. 세상이 불안한데 한 사람의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나름의 우선순위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결정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나 노력이 필요하냐고 많은 이들이 묻는다. 그런데 질문이 잘못됐다. ‘어떤 노력’이 생각보다 빨리 원하는 수준 또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언제쯤 조급증이 사라질까?
사라지지 않는다. 스무 살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온전히 내 옆을 맴돌고, 가끔 내 안에 들어와서 내 중심을 흩트려 놓는다. 그래서 몰입할 대상이 필요하다. 잠시 잊을 수 있는 무언가 말이다. 그런 대상과 상황이 다양해야 한다. 가급적 되고 싶은 모습이나 만들고 싶은 전문성과 연결해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안감은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잊힐 뿐이다.
원문: Eden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