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데이빗 도스(David Dobbs)가 기고한 리차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The Evolution of Beauty)』 서평 「Survival of the Prettiest」를 번역한 글입니다. 『아름다움의 진화』는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2017년의 책 10권에 뽑혔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1809년 태어난 찰스 다윈은 화수분과 같습니다. 다윈 자신은 25권의 책을 남겼고 전 세계 도서를 정리한 원더캣(WorldCat)은 다윈에 관한 책이 7,500권에 달하며 점점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말합니다. 1860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래 약 100년 동안 다윈에 관한 책은 매년 평균 30여 권이 발표되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이 숫자는 50으로 뛰었고 1980년대 들어 다시 100으로 뛰었습니다.
오늘날 다윈에 관한 책은 연간 160권이 출간됩니다. 이는 2.3일에 한 권의 책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많은 책이 있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주장이 등장합니다. 2017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생물학자 J. 스콧 터너는 『의도와 욕망(Purpose and desire)』에서 모든 개체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이 욕망이 진화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오늘날 신다윈주의는 이를 진화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의 주장은 그럴듯하고 책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윈의 작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 책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임스 코스타의 『다윈의 뒷마당(Darwin’s Backyard)』은 다윈이 다운하우스에서 벌, 따개비, 감자, 비둘기 등에 행했던 다소 체계적이지 않은 실험에 주목해 그가 어떻게 자연선택 이론을 만들었는지 알려주며, 독자들 역시 집에서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지질학자 매튜 J. 제임스의 『진화를 수집하다(Collecting Evolution)』는 1905-1906년 전설적인 생태학자 롤로 벡이 샷건과 배낭, 카메라를 들고 갈라파고스를 방문해 다윈의 진화론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 증거를 수집한 사건을 이야기해줍니다.
롭 웨슨의 『다윈 최초의 이론(Darwin’s First Theory)』은 놀랍게도 아직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다윈의 이론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은 1831년에서 36년 사이 젊은 다윈의 비글호 항해를 추적하며 다윈이 처음으로 제시했지만 사람들이 간과한 ‘산호초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다룹니다. 방법론적 면에서나 시각적인 면에서(환경의 변화에 따라 형태를 바꾸어 가는 산호초를 보며) 이 조숙하고 심지어 대담한 아이디어는 20년 뒤 다윈이 발표할 진화론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다윈의 이론이 있습니다. 그의 이론 중 가장 덜 인정받았고(적어도 책의 인기 면에서) 가장 논쟁적이었던 한 이론이 마침내 올해 출간된 한 책에 의해 정당한 변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윈은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을 주장한 『종의 기원』을 펴낸 후 약 10년이 지난 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ship to Sex)』이라는 또다른 문제작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종의 기원』에서 짧게 언급했던 생각을 더 확장시켰습니다. 그는 때로 성을 통해 번식하는 유기체에서는 다른 종류의 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물은 때로 자신의 짝으로 가장 적합한(fittest)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상대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미학이 진화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다윈은 동물, 특히 수컷 동물이 가지는 장식물을 자연선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성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숭이와 유인원의 밝은 엉덩이와 얼굴, 말레이시아 들소의 하얀 엉덩이와 다리, 벌새, 벨버드, 쏙독새, 관머리박새, 붉은 뇌조 등 화려한 깃털과 구애 행동을 가진 새들, 그리고 생존에는 불리했겠지만 암컷을 기쁘게 했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 분명한 공작의 화려한 꼬리 등.
수많은 동물의 이런 장식물은 ‘암컷의 선택’이라는 일관적인 취향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윈은 생존력보다 아름다움이 개체를 유리하게 만드는 이러한 현상이 독립적인 진화 기제로 작용했으며 때로 자연선택에 반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성선택이라 불렀습니다.
다윈에게는 아쉽게도 많은 생물학자가 이 이론을 거부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다윈의 성선택에 대한 강조가 자연선택이라는 강력하고 유일한 힘을 위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성선택이 아름다움에 기반 둔 여성의 선택에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고 느꼈습니다. 동물학자 조지 잭슨 미바트는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대한 비평에서 ‘암컷의 변덕이 가지는 극도의 불안정성은 진화의 동력이 되기에는 너무 불확실한 것’이라 말했습니다.
결국 성선택 이론은 자연선택 이론과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적응주의자들의 ‘적합성 우선’적 관점에서 성선택은 대부분의 중요한 특성을 결정하는 자연선택 아래 한 가지 하위분류로 격하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깃털이나 인간의 경우 대칭적인 얼굴은 성선택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 적합성을 보여주는 ‘정직한 신호’로 여겼습니다.
한편 1900년대 중반,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을 결합시킨 『현대진화이론』은 진화적 적합성을 특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특질을 만들어내는 개별 유전자에 속한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 특질이 아니라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흐름이 지금도 계속됩니다.
다윈이 성선택 이론을 발표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날, 예일 출신의 겸손한 조류학자이며 박물관 관장인 리차드 프럼은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극적인 승리를 안겨주려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아름다움의 진화』에서 프럼은 세련되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글솜씨를 가지고 수십 년의 연구와 수백 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또한 ‘적응론자들의 구태적인 자연선택에 대한 절대적 의존’으로부터 진화생물학을 구원하려 합니다.
그는 자연선택에 대한 절대적 의존은 인류의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진화에 대한 그릇된 관점을, 특히 진화가 성과 인류의 문화에 끼친 영향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럼은 자신이 전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리차드 도킨스와 같은 적응론적 진화론을 고수하는 생물학자들은 프럼의 주장을 반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럼은 논리적 승리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고 우아하고 매력적으로 포장하려 합니다. 자신의 짝을 위해 예술적인 정자를 만드는 바우어새(bower bird)처럼, 그는 경쟁자를 밀어내거나 라이벌을 쫓아내기보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유혹적인 동시에 반역적인, 그런 흥미로운 책을 완성했습니다.
리차드 프럼은 무엇보다도 극단적인 조류 애호가입니다. 그는 알려진 지구상 1만 종의 조류 중 ⅓ 이상을 직접 관찰했고 이 경험으로부터 아름다움은 생존 적합성을 알려주는 ‘정직한 신호’라는 적합론자들의 주장을 논박합니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자연이 있으며 특히 그의 새에 관한 이야기들은 매우 자세하고, 빈틈없으며, 상당한 깊이가 있고 때로 감각적입니다. 극도로 화려한 청란이 꼬리를 펼칠 때 그의 표현은 에로틱하기까지 합니다.
프럼은 깃털 진화의 전문가기에 깃털이 하늘을 날기 위해 진화하기보다는 피부를 장식하기 위해 진화했을지 모른다는 흥미로운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곧 생존보다 아름다움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다. 예술 비평가들이 예술에 목숨을 거는 이유에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프럼은 새들이 예술가라 생각합니다. 프럼의 동료인 마나킨은 새들의 춤을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인간은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야 원근법을 이해했지만 바우어새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정자를 짓는 데 이를 이용해 왔습니다.
바우어새 수컷은 프럼이 제시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예입니다. 이 특별한 새는 잔가지를 이용해 원형, 원뿔형, 혹은 꽃으로 장식한 기둥 모양의 구조물을 짓고 돌, 조개, 딱정벌레 껍질, 화려한 버섯 등을 이용해 그 구조물과 주변 땅을 장식하는 예술적 공간을 만듭니다. 이 건축물은 암컷으로 하여금 예술품을 구경하면서도 암컷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수컷 또한 그렇게 행동합니다.
프럼은 어떤 수컷은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재배열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며 조금씩 작품을 고쳐나가 마치 ‘까다로운 플로리스트’처럼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몇몇 종의 수컷은 나무 뒤, 혹은 자신이 만든 구조물의 뒤편에 숨어 암컷이 자신의 작품을 검사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암컷은 작품이 마음에 들면 목을 늘이고 꼬리를 들어 수컷을 부르고 이들은 짝짓기합니다(이 과정은 몇 초밖에 걸리지 않으며 두 새는 다시는 만나지 않습니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은 암컷은 그냥 떠나갑니다.
프럼은 다른 종에서 관찰되는 이와 비슷한 구애 과정이 장기간,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수컷과 암컷의 공진화에 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컷의 미적 감각과 사회적 능력은 암컷이 이를 기뻐하는지의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판단되고 시험받습니다. 프럼은 암컷의 개인적 취향이 아름다움의 진화를 촉진시켰다고 말합니다.
다른 진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특별한 목표는 없습니다. 자연선택에서는 적합성이, 성선택에서는 아름다움이 기준이 될 뿐입니다. 물론 더 아름다운 장식품이 생존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미적’ 구애 과정은 암컷의 성선택, 자율성, 안전을 보장하는 환경과 기질, 의식행위 등 일종의 문화를 만들고 이런 문제를 상쇄한다고 프럼은 말합니다(물론 암컷이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합니다. 짝짓기 이후 자식을 기르는 것은 암컷의 몫입니다).
프럼은 이러한 미적 선택과정에 의해 암컷의 취향이 일종의 문명화를 통해 짝짓기 행동을 변화시키고, 넓게는 수컷의 사회적 행동 또한 변화시켜 『아름다움의 진화』가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 프럼은 이 과정이 수컷을 약화시키거나 암컷이 수컷을 지배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단지 암컷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수컷이 선택된다는 뜻입니다.
이 시점에서 프럼은 새들을 통해 보인 그의 이론을 호모 사피엔스의 성선택에 적용합니다. 그는 동물과 인간에 대한 연구들을 조금 보여주며, 어떻게 적응론자들이 인간의 특성을 설명할 때 성선택으로 쉽게 설명이 되는 문제를 놓치는지 보여줍니다. 그가 나열하는 여러 문제, 곧 자연선택은 설명할 수 없지만 성선택으로는 설명 가능한 문제에는 동성애, 일부일처제 선호, 여성 가임기와 무관한 남녀 모두의 성관계 선호, 뇌를 제외한 신체 거의 모든 부분이 여성과 비슷해져 힘의 차이가 줄어든 남성, 부성애의 진화 등이 있습니다.
이들 특성은 다른 영장류와 유인원에서는 매우 드물게 관찰되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가진 특성은 더 있습니다. 성관계에 대한 끝없는 관심, 항상 커져 있는 여성의 가슴, 남자의 커다란 성기, 그리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특징인 여성의 오르가슴이 있습니다. 늘 성관계를 맺는 보노보를 제외하면(보노보 암컷이 느끼리라 생각되는 오르가슴과 함께) 어떤 유인원도 이러한 특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프럼은 인간이 이런 특성을 가진 이유로 이를 통해 여성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태도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관계가 임신보다는 여성의 오르가슴을 위해 이루어질 때 여성은 성관계를 통해 이 남자가 여성의 욕망과 취향, 선택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곧 인간의 성관계는 일종의 보여주기 의식의 역할을 한다고 프럼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침실이 우리에게는 바우어새의 정자인 셈입니다.
프럼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이 모든 상황에도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선택은 수컷과 암컷의 해부학, 생리학, 그리고 관심사 사이의 절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프럼은 양성생물에 있어 이러한 절충이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수컷이 더 큰 몸집과 힘으로 암컷을 지배하며 암컷이 누구와 짝짓기를 하고 누구의 자식을 낳을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리와 고릴라의 경우 우두머리 수컷은 힘을 이용해 암컷을 독점하며 때로 다른 수컷의 자식을 죽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수컷과 암컷이 서로의 욕망 차이를 상대의 우선순위와 이를 추구하려는 태도를 서로 존중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입니다.
프럼은 우리 인간이 바로 이 두 번째 길을 택했으며 인간이 가진 지적 능력으로 아름다움을 사회화시켰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가 아름다움을 그저 기존 진화론이 말하듯 생존 적합성의 표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근본적이고 복잡한 진화적 동력인 것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