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더 아무것도 하기가 싫을 때
-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도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싫을 때
- 해야 하는 일들이 다 아무 의미 없이 보일 때
- 밥 먹는 것도 귀찮고 내가 왜 밥을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지 한탄스러울 때
- 잠을 계속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올 때
- 재밌다고 하는 예능, 웹툰 블라블라를 보는 것마저도 귀찮을 때
- 그 무엇도 재미가 없다고 여겨질 때
그래서 누워서 천장에 얼룩무늬를 세어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움직이니까 어지럽고 현기증이 온다. 아, 지긋지긋한 저질체력. 아, 망할 무기력증. 또 시작이군. 그래, 오늘은 이것에 대해서 글이나 써보자.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주위를 관찰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나는 보통 인간들보다…
- 아주 빨리 싫증을 내고 지루해하고
- 그러다 보니 만사가 순식간에 재미없고
- 그러다 보니 무기력증이 빨리 온다
제가 뭔가 항상 부지런하게 사고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그것은 그만큼 제가 무기력증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눈물 좀 닦고)
무기력증이 올 때 현상은 대략 위에서 나열한 바와 비슷하다. 이 상태를 계속 내버려 두면 나아지겠지… 가 아니라 더더욱 이상하고 기기묘묘한 분위기에 휘말린다. 더 우울하고, 화가 나고,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고, 사는 게 귀찮고, 심지어는 자살은 무서워서 못하겠고 그냥 귀찮으니까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이따위 생각까지 하게 된다. 더더욱 멜랑꼴리 한 음악을 들으면서 음울해지는 것이지.
난 이런 상태가 싫다. 어떻게 해야 할까?
- 운동을 한다.
- 명상을 한다.
- 무슨 일이든 팍! 질러버린다.
내가 보기에 정답은 1번 혹은 2번인듯한데 문제는 1번과 2번을 꾸준히 자주 습관처럼 해주셔야 이 상태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무기력 늪에 빠져서 춤추고 있는데 어떻게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자빠지겠는가 숨 쉬는 것도 귀찮은데.
그래서 극단적인 나는 극단적인 3번을 선택했다. 사고를 칩니다.
모든 것이 귀찮은데 어떻게 사고를 치냐고? 사실 그렇긴 하다. 잠자는 것도 귀찮고 막 그런데 그 몸을 끌고 나가 사고를 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무기력증이 너무 싫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자극적인 마약을 주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 뭐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다. 나 같은 경우 이런 사고를 벌려보았다.
- 비싸고 별 쓸모없는 무언가를 급작스레 사버린다.
- 싸운다.
자, 위의 예시는 매우 나쁜 예시이며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행하기는 했으나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나의 앞통수를 후려쳤다. 우울해서 걍 사버린 50만 원짜리 한약 다이어트제는 일주일도 못 먹고 다 버렸다. 언니랑 드럽게 싸웠다. 당연히 무기력증은 벗어나는데, 뭔가 나에게 남은 건 만신창이다.
악을 악으로 대응하는 나의 무식함 퍼레이드. 그래서 좀 나이를 먹고 나니까 대응책이 약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아래를 보시오.
- 해야 하는 일정을 다 몽땅 때려치우고 바다에 간다. 대자연의 품에 안긴다.
- 비트코인을 산다.
- 프로젝트 시작을 선포한다.
대자연
바다에 급작스레 떠나는 건 꽤나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요즘은 잘 안 먹힌다.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이지. 그래도 한때 내가 농장을 돌아다녔던 이유가 그거다. 마음과 정신이 좀먹었을 때는 대자연만 한 치료제가 없다. 손바닥만 한 나방이 날아다니는데 어디서 무기력을 중얼거리겠는가. 아아 대자연이여.
비트코인
그다음 선택한 건 비트코인이다. 차트가 날아다니는 비트코인을 보고 있노라면 심장이 쫄깃해져서 무기력을 이야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후폭풍 엔드 리스크가 너무 크다. (허허허허)
프로젝트
마지막 단계가 프로젝트 시작 선포이다. 그냥 지르는 거다. 평소에 한 번 해봐? 이러고 있던 사이트 프로젝트, 잡다한 돈 안 되고 그냥 나의 욕심만 챙기는 그런 쓸데없는 그런 프로젝트를 그냥 선포하는 거다. 여기서 포인트는 널리 많은 사람에게 선포를 해야 한다. 이 경우 쪽팔려서라도 무작정 하게 되어있다. 무기력증이 장기간 지속될 때 이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선포해라. 책을 쓰겠습니다! 작은 다큐를 만들 겁니다!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할 거예요! 작은 장사 시작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던지세요. 얍. 사실은 캠프, 코딩 캠프, 노마드 코더… 거의 다 이 단계에서 시작했던 것 같은…
아, 마법이자 저주인 나의 무기력증이여.
하지만 이걸 활용해보자. 가장 쓸모없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나를 치료할 수 있는. 그러다 보면 남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다 보면 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중요한 건 일단 저질러야 해.
‘푸른 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꽃을 발견한다 해도 금방 시들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푸른 꽃이 주는 선물은 그 꽃을 향해 떠나는 여정에 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다. 목적지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여정 그 자체이다. 그 여정이 나를 허물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간다.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그 낭만적인 꿈이 없다면 우리는 일생 동안 현실에만 머물 것이다.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는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Unfold your own myth)’라고 말했다.
걸음을 옮겨라, 두 다리가 점점 지쳐 무거워지면 너의 날개가 펼쳐져 비상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 류시화
원문: Lynn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