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고, 꽤나 절망적이었던 2013년 한화 이글스의 정규 시즌이 끝이 났다. V10 김응용 감독을 야심차게 선임했던 이글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역대 최고의 순위경쟁 속에서 이글스는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한화와 한화팬은 야구가 아닌 예능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굴욕마저 맞이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글스의 2013년이 잔혹할 것임을 예견했지만, 과연 4위 두산과 30경기 차이가 나는 참혹한 성적까지 예견할 수 있었을까.
한화의 2013년을 정리하면, 작년에 비해 좋은 면은 적었고 안 좋은 면은 많았던 것 외에는 작년과 차이가 없었다. 초반의 급격한 추락, 시즌 중간 잠시 추세 반등, 그리고 다시 추락, 막판에 좋은 모습을 보이며 내년을 기약한 것까지도. 일부 선수들은 작년의 기대치를 넘어서거나 작년만큼은 했으며, 어떤 선수들은 작년에 보여준 한심함이 ‘클래스’임을 입증해 보였다.
그런 와중에 기대치 이상을 해준, ‘희망을 안긴’ 선수 5인과 기대치를 훨씬 밑돌아 버린, ‘절망을 안긴’ 선수 5인을 꼽아 보았다. 먼저 그나마 희망을 준 선수를 알아보자.
1. 송광민 (31세, 유격수)
송광저우. 2010년, 송광민은 유래가 없는, ‘주력 선수의 시즌 중 군 입대’라는 상황에 놓였다. 1차적으로는 본인의 잘못이고, 2차적으로는 프론트의 무능함이 문제였다.그리고 많은 선수, 특히 야수들이 그렇듯 송광민의 2년 군 공백은 올 시즌의 송광민이 잘해야 2군에서 경기감각을 되찾는 시간을 갖는 정도의 기대를 일으켰다.
그러나 송광민은 김응용 감독 체제에서 본인의 원래 포지션이던 3루수가 아닌 유격수로 컨버전했고, 군대 복귀 첫 해에 1군 무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올 시즌의 송광민은 AVG .261, 7HR, OPS .722를 기록하였다. 유격수 포지션이 대표적인 디펜스 포지션이며 OPS 7할만 넘어도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올 시즌 송광민은 단연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송광민과 동급 이상의 유격수는 김재호(두산, OPS 768, 1HR), 김상수(삼성, OPS 770 7HR), 오지환(LG, OPS 746 9HR) 강정호(넥센, OPS 876 22HR), 김선빈(KIA, OPS 726 1HR)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송광민의 복귀 첫 해임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송광민의 유격수 수비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매우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또한 송광민의 유격수 컨버전을 통해 내년에는 3루에 김회성(경찰)과 같은 유망주를 전폭적으로 기용하면서 이대수를 주전 경쟁의 2선에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뎁스 측면에서 송광민의 공은 매우 크다.
2. 송창식 (29세, 투수)
71이닝 ERA 3.42, 4승 6패 20SV 4BS. 클로저로 낙점된 ‘인간승리’ 송창식의 기록이다. 마무리보다는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서 좋은 성적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크게 틀리지는 않다. 3점대 중반의 마무리라는 것은 분명 A급 마무리라고 보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송창식을 둘러싼 여건은 너무나 좋지 않았다. 작년 클로저의 롤을 맡던 안승민이 말 그대로 완전히 망해버렸고(33.2이닝 ERA 7.49), 박정진(21이닝 ERA 5.82 6홀드)이 시즌 후반에나 합류한 데다 퍼포먼스 역시 11년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 중이니, 송창식은 마치 11년의 박정진처럼, 7회 송, 8회 창, 9회 식 수준의 기용을 강요받았다. 한화의 독보적으로 낮은 승수(42승)에서 송창식은 무려 팀 승수의 절반을 세이브했다. 누가 송창식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한화 이글스가 시즌의 2/3을 패배하지 않았다면 송창식은 극한의 혹사 상황에 내몰렸을 것이 뻔하며, 투수에게 사형선고였던 버거씨병을 극복한 선수라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송창식은 올해 한화 이글스의 투수고과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팀의 불펜 사정이 너무나 열악해 관리에 적합한 선발 투수로서의 자리를 얻지 못하고 이글스의 정신나간 수비력 속에서 이런 결과를 내놓은 송창식은 단연 2013 이글스 투수 고과 1위다.
3. 송창현 (25세, 투수)
시즌 후반기, 4강권 팀들의 팬들은 한화의 선발 로테이션을 주목했다. 바로 ‘송창현’의 등장 때문이다. 송창현은 올 시즌 2승 8패, 82.2이닝 ERA 3.70, 피안타율 .201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8월 말부터 송창현은 갈 길이 멀었던 삼성, 두산, LG 등에게 가장 위력적인 한화의 선발투수로 군림했다. 단지 그에게 따르지 않았던 것은 30이닝 4점이라는, 엄혹할 정도의 득점지원뿐이다.
송창현<->장성호 트레이드는 엄청난 비웃음거리였다. 송창현은 롯데 자이언츠가 3순위로 뽑아놓기는 했지만 구경조차 못 해본, 그것도 군 문제가 머지 않은 대졸 투수에 불과했으며, 스카우팅 평가에 있어서도 잠재력은 있지만 현 시점에서 가진 것이라곤 사실상 사이즈와 왼손잡이라는 것밖에 없었을 정도. 실제로 시즌 초의 송창현은 좋은 투수냐를 떠나 투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즌 말의 송창현은 뒤에서부터 짧게 숨어 나오는 특유의 팔 스윙을 기반으로 한 투구폼을 정착시키면서 송진우 코치의 서클 체인지업을 더했고, 시즌 마지막 LG전 등판에서 무려 8이닝 무실점이라는 기염을 토해내며 평균자책점 3점대의 시즌 기록을 보냈다. 김응용 감독의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까지 받는 트레이드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송창현의 기록은 몇 가지의 의문부호를 남긴다. 우선 극심한 기복을 가진 커맨드. 82이닝 52사사구의 기록은 제구력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시즌 초의 송창현과 시즌 말의 송창현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지만, 시즌 말의 송창현도 경기 운영 과정에서 마치 레다메스 리즈(LG)와 같은 뜬금없는 연속 볼넷을 내주기 일쑤였다.
또한 주목해야 하는 것은 82이닝 46K라는 탈삼진이다. 송창현은 디셉션(Deception, 숨김동작)이 탁월한 강점으로 작용해 좋은 성적을 내긴 했지만, 구속 자체는 주로 직구 130대 후반에서 형성되는 정도이며 변화구 역시 서클 체인지업을 제외하면 취약한 투피치 성향이 강했다.
때문에 투수의 기량을 볼 때 방어율과 WHIP 다음으로 중시된다고 볼만한 볼넷/삼진 비율에서 송창현은 1:1 정도를 기록하였다. 피홈런 수치도 82이닝 9피홈런으로 거의 9이닝당 1피홈런을 기록하였다.요약하면 올 시즌의 송창현은 볼넷을 자주 주고, 탈삼진 능력은 그저 그렇고, 피안타가 적지만 홈런은 꽤 자주 맞는 타입의 투수다.
세이버매트릭스의 BABIP 이론을 따른다면, 송창현이 보낸 2013년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운이 좋았다’가 정답이 된다(송창현의 FIP는 ERA에 비해 아주 높다). 한화 이글스 야수들의 평균적인 수비력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한화 투수들 대부분이 ERA에 비해 FIP가 좋다는 사실을(송창현과는 반대) 생각한다면, 송창현의 올해 고과와는 별개로 송창현의 기록이 과연 송창현의 기량이 출중함을 보여주는 사례인지, 아니면 운이 좋은 사례인지는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4. 정현석 (30세, 외야수)
내야에 송광민이 있었다면, 외야엔 정현석이 있었다.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나타난 정현석은 1군에서 .287, 4HR, OPS 733의 호성적을 올렸다. 중견수로서의 수비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코너 외야에서 정현석은 좋은 활약을 펼쳤다. 장타력 측면에서는 좀 아쉽지만, 애초에 2013년은 정현석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 경찰청 제대와 함께 더욱 기량이 향상되어 돌아온 모습.
무엇보다 군 입대 전에도 외야수로서의 수비는 강견과 함께 충분히 괜찮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고, 올 시즌의 정현석에게 옥의 티가 있다면 득점권 타율(.222)과 대타 타율(.182) 부분과 뭔가 어정쩡한 기록이다. 그러나 득점권 타율은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결국 자기 커리어 스탯에 수렴하므로, 정현석의 득점권 부진은 아쉽긴 하지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출루율 .365, 장타율 .368이라는 정확히 하위타선에 적합한 수준의 세부기록인데, 장타력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중견수로서의 수비력과 기동력에 큰 강점이 없는 정현석은 4강 컨텐더급 팀이라면 제4의 외야수 정도의 포지션을 차지하게 됨을 또한 유념해야 한다. 아니면 중견수 고동진을 밀어내든지.
사실 김경언, 추승우 역시 정현석과 함께 괜찮은 성적을 올리긴 했지만, 규정타석 미달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높게 평가하기 힘들다. 특히 김경언과 추승우 모두 코너 외야수라는 점이 문제. 코너 외야수는 절대적인 ‘파워 포지션’이다. 더군다나 김경언, 추승우는 모두 규정타석 미달이며 실질적으로 추승우의 경우 나이와 커리어를 감안하면 희망을 주기보다는 감동을 주는 케이스라고 필자는 평가하고 싶다.
5. 한상훈 (34세, 2루수)
한화에서 가장 저평가되기 쉬운 야수가 한상훈이다. 올 시즌 2루수 부문은 대체로 정근우부터 시작해서 모두 기대 미만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2루수 중 규정타석 3할, OPS 8할 이상은 아무도 달성한 사람이 없으며, 손주인(AVG .265, 3HR, OPS 701)이 골든글러브가 가능하겠냐는 질의(애초에 턱도 없을 성적임에도)가 올라왔을 정도로 2루수는 흉작.
2루수 부문에서 한상훈(AVG .262, 1HR, OPS 725)보다 나은 성적을 내고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는 고작해야 정근우(AVG .280, 9HR, OPS 776) 정도밖에 없다. 허경민은 228타수밖에 되지 않는다. 손주인은 잘 봐줘야 비슷한 수준이고, 서건창? 서건창의 공격생산성은 신인왕을 했던 작년조차 OPS 7할 정확히 턱걸이하는 수준에 올해는 6할대다. 지석훈, 정훈, 김태완, 조동찬, (특히 최악의 부진으로 점철된) 안치홍 등은 언급할 이유조차 없다.
공격생산성 측면에서 규정타석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수준(대충 200타수 이상)에서는 정근우를 제외하면 허경민 정도만이 유일한 한상훈의 경쟁자다. 손주인은 트레이드 및 모팀 프리미엄으로 다소 호의적인 평가를 더한 편이고, 나머지 2루수는 딱히 수비 및 주루를 감안해도 전혀 한상훈의 우위라고 말할 수 없다.
포지션 별 경쟁력을 생각하면, 한상훈의 경쟁력은 엄청난 수준이다. 포지션 경쟁력으로 치면 최진행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1루수 김태균 수준. 최진행과 동급 이상의 좌익수가 김현수, 최형우 정도가 있고 김태균에 견줄 1루수가 박병호와 박정권(근소하게 딸린다) 정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확실히 우세한 사람이 정근우 외엔 아무도 없는 한상훈의 가치는 월등하다. 단연 독보적인 레벨.
올 시즌의 2루수가 흉작인 것, 특히 안치홍과 조동찬의 부진을 생각하면 한상훈이 반사이익을 누렸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상훈 본인의 성적도 올해가 준 커리어 하이다.
To be continued…
이렇게 송광민, 송창식, 송창현(3송), 정현석, 한상훈을 꼽아 보았다. 최진행과 김태균도 어려움 속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바티스타 역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대수는 3루수로서 안착해 나름대로 쓸 만 했고(물론 3루수로서의 공격력은 아쉽다), 엄태용은 가능성을 보여주기만 했다..는 평가가 적정할 것이라고 본다. 정범모 역시 좋은 타격을 보여주긴 했지만 포수로서의 수비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았기에 선정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는 가뜩이나 안 돌아간 한화를 실망시킨 선수들을 알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