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스타워즈: 더 라스트 제다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리즈 프랜차이즈란, 모든 문화 산업에 있어서 궁극의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게임, 소설, 드라마 등등 그 어떤 문화 산업에서든 단 하나라도 성공작을 만들어내는 것도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인데, 그걸 시리즈라는 코드 안에서 연속적으로 성공시키는 건 단순히 생각해도 어지간해서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서사극이다. 영화를 가장 작은 단위의 의미로 정의한다면 [서사가 있는 영상]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인 즉슨, 그 서사가 어떻게 파편이 나있든 역순으로 정렬되어 있든 상관없이, 얼마나 자유로운 구조의 서사든 그게 완성되어 있고 짜임새 있는 서사라면 모두 영상으로 만들어 영화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시리즈 프랜차이즈를 정의하는 핵심 중 하나를 고르라면 바로 [서사를 공유한다]가 될 것이다. 이 말은 꼭 그 서사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방식이 있다. 게임 <파이널 판타지>처럼 특정 테이스트나 요소를 공유할 수도 있고, 정석적인 시리즈물처럼 동일한 세계관에서 인물과 사건을 연결해나가는 것일 수 있다. 대체로 시리즈 프랜차이즈의 서사란 이 둘 중 하나의 연결점을 가진다. <라스트 제다이>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가기 위해서, 여기서 시작해보고자 한다.
클리셰, 떡밥, 맥거핀 그 무엇도 만능은 아니거늘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단편 소설가 안톤 체호프는 “소설에 총이 등장한다면, 그 총은 응당 발사되어야만 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이게 그 유명한 ‘체호프의 총’이라는 개념이다. 이 말은, 서사작품 내에서 무의미하게 남발되고 소모되는 흥미요소들을 절제해야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흥미요소, 즉 떡밥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서사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낸다.
어떤 서사에서 맥거핀은 절대로 남발되어서는 안된다. 누군가 내게 맥거핀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한 작품당 단 하나가 한계치라고 말하겠다. 흥미요소의 맥거핀화는 시리즈 전체의 긴장감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문제다. 이를테면 <미션 임파서블 3>의 토끼발이 그 예다.
맥거핀은 분류를 하자면 서사를 흥미롭게 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고, 서사의 핵심, 혹은 주제의식이라 할 수 없는 요소다. 흥미를 끈다는 제 역할을 다한 맥거핀은 작품 내에서 명예롭게 퇴장하고 극의 클라이막스에 그 순서를 넘기는 것이 정상이며, 작품이 끝날 때까지 대체되거나 해소되지 않는 맥거핀은,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똥을 쌌는데 미처 속에 남은 똥이 다 나오지 않고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사실 맥거핀은 이런 배변 활동에 비유하자면 똥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방귀였다는 식이다. 시원하게 뀌지 못한 방귀는 뱃 속에서 계속 이게 똥인지 뭔지 모르게 남아 찝찝함만 가중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작, 그리고 시리즈 전체에서 이어져 온 흥미요소 대부분을 모조리 제멋대로 맥거핀으로 만들어 없애버린다. 해소가 아니라 말살을 해버리고, 기대 자체를 바보짓으로 만든다. 정말로, 차라리, 자신이 책임질 수 없다면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 떠넘기는 것이 차선책이 아닌가. 하지만 라이언 존슨은 그냥 자기선에서 모든걸 해결하고자 한 것 같다. 문제는, 그러기엔 감독 자신의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 거론되는 스노크의 정체와 레이 부모의 정체는, 사실 꼭 그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져야만 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의 정체가 뻔히 예측이 가능한 범위라면 얻을 수 있는 반응은 호의보다는 실망 뿐일 것이다. 어설프게 떡밥을 풀거라면 차라리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아예 해소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방식은 이 흥미요소를 대할 때 라이언 존슨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처리 방법 중 가장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그 숨은 뜻을 기대했던 관객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이런식으로 해소될 여지 자체를, 그리고 그 의미 자체를 아예 극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단순히 흥미요소가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과도 천지차이의 의미를 가진다. 관객은 이제 그 부분에서 지속적으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기대를 거는 것도, 또는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곱씹고 연결구를 고민하면서 앞으로의 전개에 몰입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단지 정말로 애초에 이 영화에 등장하면 안되는 부분이었다고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만약 스노크의 정체가 어떻든 상관이 없고, 레이 부모 역시 그저 부랑자에 불과했다면, 그걸 보다 세련되게 풀어낼 방법이 수십가지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노크의 경우 그가 에즈라든 윈두든 상관없이 극에서 가지는 절대악이라는 상징성 자체가 그런 떡밥의 의미를 모두 상쇄할 만큼 결정적이고 거대하면 되었다. 레이 부모 역시 그동안 천부적 재능을 지닌 특정 혈족만이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귀천 없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게 극적으로 드러내주면 되었다.
하지만 스노크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악역의 이미지를 구축하다 갑작스럽게 죽어 영화에서 퇴장했고, 레이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카일로 렌의 입을 통해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 중에 묻어 사라진다. 7편에서 대놓고 암시를 남발하는 두 흥미요소에 기대를 걸고 영화를 보아왔던 관객들은 그저 닭쫓던 개가 되버린 셈이 아닌가.
부수고 불태운 개연성과 당위성, 그리고 상식
이런 전작의 흥미요소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는 시리즈 전체의 테이스트, 설정을 대하는 데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세계관 내에서 수천 년 간 사용되어 온 하이퍼 스페이스 항행은 이제 우리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폭발적인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 이건 홀도 부제독이 수천 년 만에 한 번 나올법한 천재이거니와 수억 수조 번 이상의 하이퍼 스페이스 항행 역사상 비슷한 사건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우주제일의 안전한 여행 수단이라는 뜻일까? 수송선의 은폐장과 순양함의 내부는 자유롭게 스캔할 수 있는 함선이 좀도둑 세명과 드로이드 한대가 탑승한 셔틀 한대는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숨겨진 반지를 통해 비밀결사 아이돌처럼 비춰지는 저항군은? 단순히 포스 센시티브로 묘사되었던 레아가 자유자재 능수능란의 포스 유저가 된 이유는?
이 영화는 너무나 많은 것이 감독의 편의에 따라 바뀌어 있다. 분명 레이가 바로 추격전 현장으로 비행해 온 것을 본다면 레이가 루크를 만난 전작의 엔딩에서 얼마 시간도 흐르지 않았는데, 오프닝 전투에서 열대 남짓의 폭격기/전투기만을 잃었을 뿐인데 저항군의 규모는 고작 순양함 하나에 400명 내외로 줄어들어 있고, 막대한 물량과 함대를 자랑하던 퍼스트 오더도 헉스의 함대 뿐인 것으로 묘사된다. 함대 추격전을 벌이던 곳에서 아광속으로 24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저항군은 알고 있지만 퍼스트 오더는 모르는 버려진 기지가 있으며, 우주공간에서 2차 세계대전식 폭격기가 자유낙하 폭격을 하고, 며칠 배우지도 못한 레이는 홀로 검술과 포스의 운용을 터득하여 루크마저 압도한다. 절대적 라이트 사이드였던 루크는 어째서인지 충동과 혼돈의 집합체가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이렇게 굉장히 편의적으로 재해석 되어있고 편의적으로 재배열되어 있다. 서사의 전개도 응당 이렇게 흘러갈 법한 타당성보다는 서사의 결론에 도달해야만 하니 무작정 드라이브를 걸어버리는 식의 편의적 전개로 흘러간다. 극적 장치를 위해 모든 인물과 사건이 그저 행위의 원인과 결과만으로 이어진, 그것도 아주 가늘고 단조로운 과정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이런 편의적인 각본과 연출의 문제가 결국 곪을대로 곪아 터져나오는 결과는, 모든 인물들의 저능화다.
포 다메론은, 전작에서 레아가 1인 특수 임무를 맡길 만큼 신중하고 똑똑하며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에이스 파일럿에서 트리거 해피에 아군의 피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핫헤드가 되어버렸다. 레아와 홀도는 저항군의 한명 한명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인군자를 표방하지만, 수십척의 무방비 수송선에 넣어 들키지 않게만 기도하며 날려보내는 학살 그 자체인 작전을 실행한다.
핀은 모든 퍼스트 오더 전함에 탑재되어 있다는 하이퍼 스페이스 탐지기를 지휘선 한대에 탑재된 것만 몰래 끄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반역에 가까운 작전을 방금 만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포함 셋이서 입안하고, 실행하며, 그 과정에서 귀환 과정에 필수적인 우주선을 아무렇게나 방치하고, 임무 와중에 동물 보호를 역설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등 온갖 머저리짓을 하다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매일 청소하며 이미 존재를 알고 있었던 하이퍼 드라이브 추적기의 존재를 그것 때문에 저항군이 멸망하기 직전이 되서야 말한다.
모든걸 다 예측하고, 자신의 제자와 레이의 마음속을 모두 훤히 꿰고 있다는 슈프림 리더 스노크는 자기 바로 옆에 놓인 라이트세이버를 조종하는 포스를 감지하지 못하고 죽는다. 헉스는 자기 함대와 평행하게 비행할 뿐인 순양함 단 한척을 제대로 추적, 섬멸하지 못해 자기 함대에 궤멸적인 피해를 허용한다. 극 내내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멍청한 짓은 이게 다가 아니다.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가 없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등장인물은 좌충우돌에, 자기 행동의 결과를 두 수만 넘어가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미봉책과 안일함으로 점철된 행동만을 일삼는다.
진짜로 큰 문제는 이런 등장인물들의 멍청함 때문에 겨우겨우 이 극의 사건과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는 만큼, 누구 한명이라도 제정신을 차리면 극 자체가 전혀 의미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관객이 이들 중 단 한 명의 행동에라도 의문을 품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극 자체가 거대한 도미노처럼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모두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이 영화와 이야기가 나를 설득하는게 아니라 기만하고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실제로 그렇다. 자기가 직접 말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예측조차 할 수도 없고 타당성도 없는 내용들을 들고 오면서 치사한 협잡을 벌인다.
존재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불필요한 존재들
극의 구성 또한 엉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포와 로즈의 활극은 훨씬 더 나은 시퀀스로 대체되거나 아예 덜어낼 수 있다. 특히 이 시퀀스에 있어서 감독이 활극이란 것에 대해서 너무나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인디아나 존스> 를 보고 떠올리는 활극이란, 똑똑하고 재치 넘치는 주인공이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고 보상을 쟁취하는 유쾌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포와 로즈의 활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충동적이고, 계획이란 전혀 없으며, 구체적인 방법이나 대안, 기발한 기지 같은 것도 없고, 생각 없이 행동한 결과 끝에서 베네치오 델 토로라는 구원자가 해결해주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어쩌면 로즈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런 치밀하지 못한 극의 정체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로즈는 순양함의 탈출 포드를 담당하는 일개 병사일 뿐인데, 그 어떤 역량 검증이나 운명적 계기도 없이 그저 핀의 충동에 얹어 주역급으로 부상한다. 정치적 논란을 낳을 부분을 모두 제외하더라도, 이 캐릭터는 이 극에서 그 어떤 필연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당장 그녀가 비밀 작전에 가담하게 되는 이유인 “나만이 그 장치를 끌 수 있다”는 것은 하이퍼 스페이스 추적기라는 퍼스트 오더의 1급 기밀급 장치를 저항군의 일개 엔지니어가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된다. 차라리 청소라도 해본 핀이 더 잘 알고 있는게 타당하지 않은가?
로즈라는 캐릭터는, 그 캐릭터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 캐릭터를 존재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주변의 모든 것이 당위성도 필연성도 없이, 단지 로즈를 출연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이자 변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등장한 동양인 여성 캐릭터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비밀 작전에 투입되어 갑자기 동물 사랑을 외치고, 영화 내내 짓는 표정이란 감성에 젖어 분노한 것이 전부이며, 뜬금없이 최종 전투의 특공조에 발탁되어 스피더를 몰다가 주인공을 구하고 전혀 그 어떤 맥락에도 닿지 못하는 뻔하디 뻔한 메시지를 전한 다음 키스를 해버리는 것을 보면, 이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는 극의 완성도나 서사의 재미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어떤 노골적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일정 수준의 정치적 올바름의 필요성도 공감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공공 선에서 그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슬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캐릭터는 오히려 그런 공공 선에 대한 진한 거부감과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훨씬 크다. 애초에 극에 녹아들지 못하고 타당한 역할이 없는 캐릭터는 그 어떤 정치적 의미를 떠나서 불필요하기만 할 뿐이다.
이런 것은 비단 로즈의 캐릭터 뿐만이 아니다. 앞서 말한 베네치오 델 토로는 그저 극이 막혀버릴 법한 구간에서 이를 뚫어버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서 두 번 작동하고는 의미없는 배신을 한 채 말그대로 극에서 사라져 버린다. 카지노 행성의 말들과 크리스탈 크리터 또한 이렇게 쓰이고 사라진다. 멍청해진 등장 인물들이 온갖 사건을 저질러 극의 전개 자체가 막히면, 그걸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 존재가 등장하고는 곧바로 사라져 버린다. 안일하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요, 모두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뭐가 남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시리즈의 일부분, 연속물로서 차기작의 연결구를 만들어주는데에도 처참히 실패했다. 후속편이 있는 영화는 엔딩에서 두가지 역할을 필수적으로 해내야만 한다. 더 큰 시련을 던져주어 위기감을 불러 일으키고, 동시에 해결 방법에 대한 암시를 주며 위기 해결에 대한 기대를 넣어줘야 한다. 그리고 <라스트 제다이>는 이 두가지에서 모두 처절히 실패했다.
루크는 죽고, 약화된 카일로 렌의 퍼스트 오더는 이전보다 특별히 무섭거나 대단히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으며, 밀레니엄 팔콘에 모두 탑승할 수 있을 만큼의 수로 줄어버린 저항군은 그 어떤 대항책도 생각나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영화는 어처구니 없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불필요 했던 부분에서 가장 비중없이 등장했던 조연에게 뜬금없는 행위를 시키면서 마지막을 짓는다. 어쩌라는 말인가? 변방 카지노 행성의 소년이 저항군 반지를 가지고 있는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치밀함 속에서 필연과 당위로 무장해 차곡차곡 쌓아나간 것이 아니라, 이미 결론을 정해 놓고 필요한 것들을 편한대로 골라 집어 넣은 것에 가깝다. 라이언 존슨이 생각한, 팬들이 기대한 훌륭한 스타워즈 영화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손에 잡히는 너무나 쉬운 도구들 만을 취했고, 그 결과 영화는 거대한 협잡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극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방법이 극히 어설프고 세련되지 못하며 또 그 때문에 많은 영화적 완성도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건 80년대 반공영화식 프로파간다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극장에서 돈을 주고 영화를 보는 이유는, 특히나 이런 시리즈물을 보는 이유는 그런 뻔하고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메시지 따위를 진부하고 자기모순적으로 전달하는 걸 보고자 하는게 아니라, 시리즈 팬으로서 추억을 곱씹고 새로운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그 다른 어떤 목적도, 절대적 우선순위에 있는 영화의 완성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시리즈 프랜차이즈에 있어서 신작의 판매량은 이전작의 평가에 좌우됨이 절대적이다. 유명 비디오 게임 프랜차이즈인 <어쌔신 크리드> 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는 <유니티>는 역설적이게도 8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시리즈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작품이자 훌륭한 평가를 받는 <신디케이트>는 400만장도 돌파하지 못했다.
<라스트 제다이>는 분명 흥행 면에서 성공할 것이다. 직전 작품인 <깨어난 포스>의 평가를 박하게 한다 하더라도, <제국의 역습>이 있는 이상 이 프랜차이즈는 한 두 작품이 망했다고 해서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실패작이 연속해서 누적되기 시작한다면 멸망의 전조가 드리워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라스트 제다이> 는 세련된 정형성 파괴도 아니고, 성공적인 세대교체도 아니며, 그저 모든 것을 대책없이 불태워버린 폐허에 불과하다. 앞으로 남은 마지막 9편에서는, 부디 팬심을 총동원해서가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으로도 극찬과 사랑을 할 수 있는 스타워즈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