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세대에 대한 절망과 포기, 자조에 대한 이야기들이 퍼져나갈 때, 청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보고 싶다면 『불만의 품격』(최서윤 저, 웨일북)을 읽어보면 된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있는 한 명의 여성이자 청년이 어떻게 온몸으로 이 사회에 살면서 질문을 던지고, 저항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저항한다. 그런데 무엇에? 그것은 오랫동안 기성세대가 ‘적’으로 여겨왔던 자본주의 자체도, 독재 정권도, 기타 이데올로기나 사회체제도 아니다. 오히려 적이 불투명해진 시대에, 저항이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억압에 대한 상시적이고도 일상적인 투쟁이 되었다.
이러한 투쟁은 어느 하나의 지점으로 온전히 수렴되지 않는다. 오직 이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내는 진지한 ‘생활자’의 체험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오래전 도스토옙스키가 ‘지하생활자’의 관념적인 수기로 사회 비평을 수행했다면 최서윤은 ‘지상생활자’의 실천적인 수기로 이를 수행한다. 이 책에는 매일의 삶에서, 지하철과 단칸방, 술자리와 광장, 인터넷과 학교에서 경험한 모든 일에 대한 저항의 흔적이 담겨 있다.
언제나 그렇듯 생각하고 말하기란 쉽다. 그러나 진정 어려운 것은 살아내는 일이다. 기성 지식인들의 고준담론이나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들, 거리를 두고 충고하는 말들이 우리의 귓전에 머무는 것은 그들이 이 시대의 ‘생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프로 불편러’라 불리고, 무엇이든 재미를 앞세운 ‘병신 같지만 멋있는’ 것들이 찬양되며, 진지하게 세상을 대하고자 하는 이들이 ‘진지충’과 ‘씹선비’로 매도당하는 세상에 뒤섞여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각종 패륜적 언사를 의미하는 ‘패드립’의 세계에서 옥신각신한 적도, 여성으로서 ‘김치녀’나 ‘된장녀’라 내몰리거나, 청년으로서 ‘개새끼’로 규정당한 적도 없다. 가성비를 앞세우며 ‘꿀알바’ 지망생이 되어보거나, 비주류적인 취향의 ‘힙스터’로 규정되며 혐오 당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며 관통한다.
또한 그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생활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섬세하게 자기만의 기준을 찾아 품격을 세워나간다. 옳음과 그름을 예리한 시선으로 구별하며, 자기의 자리를 찾아 나가는 ‘현재 진행형’의 분투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책에서 묘사된, 방음과 단열이 되지 않는 단칸방에서, 옆집 개를 증오하거나 옆집 사람의 새로운 애인을 알아버리는 상황은 어딘지 신춘문예의 아이러니한 단편 소설이나, 옛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는 소설이나 희곡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 시대 대부분의 청년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옆집 ‘개새끼’나 옆집 ‘연인’에게 느끼는 분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이 모든 게 혹시 ‘우리 사회’ 자체의 문제는 아닌지 의심한다. 방음과 단열이 되지 않는 쥐구멍만 한 공간을 덕지덕지 만들어놓고 ‘살라’고 하는 이 사회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지점에서 흔한 인간애, 훈훈한 휴머니즘으로 마무리하는 ‘연민’에 도취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손쉬운 자기 연민도, 응당 요구되는 타자에 대한 연민도 그다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자기에게 매일같이 도래하는 억압과 폭력에 끈질기게 저항할 뿐이다.
그 외에도 책에는 청년들의 창의성을 갈취하는 것에 가까운 공중파 방송의 만행이나, 청년 세대의 ‘열정 페이’를 당연시하는 기성세대의 ‘꼰대’질,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이 모든 일은 결코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이미 만연한 ‘적폐들’이다.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세간에 떠돌지만 적폐는 정치권의 특정 세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퍼져 있다. 그렇기에 적과의 투쟁은 일상적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사회의 곳곳을 혈혈단신으로 누비고 다니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속한 청년이자 여성인 저자는 그 누구보다 그러한 ‘적들’에 대해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다. 그는 감정적 토로와는 별개로, 시종일관 우리 사회와 문화의 ‘부당함’ 혹은 ‘그릇됨’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만의 품격』에 담긴 수십 편의 글은 하나하나가 우리 시대의 징후이자, 청년 세대 및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증언이다. 여기 담긴 글들은 지식의 깊이나 논리의 정교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처럼 ‘지금 여기’에 대한 절실한 증언이라는 측면에서 중요성과 고유성을 획득한다. 언뜻 보면 거친 표현들이 가득하지만 저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일방적이거나 폭력적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자신이 마주한 하나하나의 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반성과 성찰을 수행하며, 자기를 내세우기보다는 자기가 처한 맥락을 짚어나간다. 그렇기에 이 글들은 우리 시대 최전선의 ‘생활 수기’면서 솔직함을 담보로 한 ‘사회 비평’이기도 하다.
제목과 설명에서도 알 수 있지만 글의 기저에는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불만을 제시하는 것으로만 그치는 내용은 아니다. 저자는 새로움, 창조성, 멋, 예의, 정의 관념, 재미, 비폭력 등의 세부적인 특성들을 지닌 ‘품격’있는 삶과 말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또한 책에는 우리 시대의 거의 모든 주요 쟁점들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견해가 제시된다. 물론 이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복제 인간이나 도플갱어가 아니라면 그런 식의 동의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시대와 사회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삶을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던지는 무수한 질문과 의심은 동시대인에게 적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월간 잉여》의 편집장으로서, ‘차이 나는 클라스’ 등의 출연자로서 그가 던져왔던 많은 질문과 의심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한 명의 글쟁이로 살아왔지만, 내가 부러워했던 건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나 논리적 엄격함에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러운 건 글을 쓰는 것 이상으로, 언제나 하나 가진 이 몸으로, 이 시대를, 이 삶을 진정으로 살아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경험이, 용기와 강단이, 쉴 새 없는 실천력과 그로 인해 다채로워지는 삶이 부러웠다.
최서윤은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의 삶으로, 그의 경험으로, 그의 몸으로 글을 쓰며 시대를 증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