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거리를 걷다 보면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수 있다. 이 추운 날 저 트리를 보면 괜스레 산타 할아버지의 추억도 생각이 나고, 엄마에게 선물을 사 달라고 졸랐던 나의 옛 모습도 생각이 절로절로 나며 그땐 참 철이 없었다고 나를 위로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왜 12월 초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까? 그리고 왜 크리스마스트리는 번화가에만 있는 것일까? 과거부터 생각해왔던 의문이었다. 그래서 이 원인을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부분에도 역시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넛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사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소비할 때 자제력을 줄이게 만드는 넛지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트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지금부터 이 사실에 대해 알아보자.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디에 ‘많이’ 있는가?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디에 있는가? 당연히 전국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시골의 어느 한적한 역에도 있고 서울 명동의 중심에도 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디에 많이 있는가? 다들 교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성탄절은 기독교의 예수가 세상에 태어난 날을 기리는 관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크리스마스트리가 많은 곳은 교회가 아닌 번화가다.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는 곳, 수많은 상점이 있는 곳, 돈과 돈이 오가는 곳에 오히려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다. 실제로 2016년 서울, 경기권의 번화가와 비번화가의 크리스마스트리 개수를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서울 신촌 젊음의 거리: 44개
- 서울 신월7동주민센터 부근: 3개
- 수원 인계동 거리: 54개
- 용인 역북동: 6개
조사 결과 번화가를 중심으로 한 거리의 크리스마스트리의 수는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으며 심지어 100여 개를 넘어가는 지역도 볼 수 있었다. 교회도 아닌 번화가에 월등하게 크리스마스트리의 숫자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를 상기시키는 ‘시각적 수단’
크리스마스트리가 가진 가장 큰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고 상기시켜 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 다루게 될 사람의 심리적 특성과 사용자 경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크리스마스인 것을 깨닫는 것일까?
바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주는 이미지에 있다. 인간의 기억을 더 잘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숫자와 글자로 된 데이터보다 이미지로 된 데이터를 주는 것이 인간이 더 실질적으로 잘 기억하고 오래 기억할 방법이다. 다음 예를 통해 기억에 더 잘 남는 것이 무엇인지 보자.
- A: 매년 양력 8월 15일이고 대한민국에서는 국경일로 법제화함으로써 이날을 기념한다. ‘광복’은“빛(光)을 되찾음(復)”, 즉, 주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해방 년도인 1945년을 광복절 원년으로 계산한다.
- B:
어떤 예시가 더 확실하게 와닿는가? 어느 쪽이 더 기억에 남는가? 당연히 B다. 인간은 과거부터 글이 아닌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판단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갖췄다.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해석 가능하며 이미지를 통한 해석을 더 친근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왔어요’라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한 결정적인 이미지를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리 앞 캐럴: 크리스마스를 상기시키는 ‘청각적 수단’
당신의 ‘인생 캐럴’은 무엇인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는 꼭 ‘캐럴’이 나온다.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에서부터 최근 가수들이 컬래버레이션한 노래까지 다양한 노래가 나온다. 크리스마스트리 앞 캐럴 역시 앞서 크리스마스트리와 비슷하게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촉발하는 수단이다.
실제로 사람은 음악이나 노래를 통해 특정 기억에 대한 뉴런을 발화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듣고 특정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도 바로 음악을 통해 우리 뇌 속의 뉴런이 작동하고 음악과 관련된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헤어지면서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을 때 헤어졌던 그 순간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린다. 슬픔이 촉발될 수도 있고, 그리움이 촉발될 수도 있다. 그때 그 감정을 다시금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특정한 상황을 상기한다. 캐럴도 마찬가지다. 캐럴을 들었을 때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떠오른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나일 수도 있고, 첫사랑에게 이별을 선고받은 가슴 아픈 순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캐럴을 통해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할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상기시키는 이유: 특정 날에 더 많이 소비를 결정한다
교회가 아닌 매장이나 번화가의 옷가게 등 기업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사람들은 특정 시기에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특정 시기는 크리스마스고 결정은 ‘소비를 하겠다는 결정’이 되겠다. 소비하겠다고 결정하면 기업들은 매출을 올릴 명분을 확보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기업은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즉 번화가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더 쉽게 지갑을 열도록 하는 시각적인 넛지인 것이다.
사람들은 왜 특정 시기에 결정을 하는 것을 좋아할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특정 시기에 결정을 내려 ‘새로운 시작’이나 ‘마무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새해에 다이어리처럼 새해 다짐과 관련된 물건이 팔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새해라는 특정한 시기에 맞춰 새로운 시작을 한다고 인식하고 제품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크리스마스라는 특정한 시기를 강조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이날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 등에게 줄 선물을 사는 계획을 세우도록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알릴 수단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인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당신의 소비를 자극하는 기제
교회가 아닌 번화가, 백화점 등의 크리스마스트리는 당신이 특정한 시기를 상기하고 기억하도록 하여 특정한 시기에 맞춰 사람들이 스스로 소비하도록 만드는 넛지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번화가의 중앙에 잘 보이도록, 크게 만들어진 이유도 이 때문이고, 백화점이나 상점의 잘 보이는 입구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당신의 소비를 자극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제다. 당신이 오늘도 봤던 크리스마스트리는 단순히 당신의 낭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의 지갑을 자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