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지난 2년 동안 다녔던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퇴사한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퇴사 당일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사장님께서 제게 “정신력이 그렇게 나약해 빠져서 어떡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전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독 이 회사에서는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그만두게 되었고요. 제가 정말 나약한 것인가요?
Answer
글쎄요. 사장님 말씀처럼 정말 나약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전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에 비춰보건대 질문하신 분의 정신력이 나약했다기보다는 그 회사랑 궁합이 잘 안 맞았을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퇴사하면 그 원인을 퇴사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 적응력이 떨어진다든지, 유연성이 부족하다든지, 아니면 앞선 사례의 사장님 말씀처럼 정신력이 약하다든지. 특히 속칭 일류 대학 출신들의 퇴사율이 높기 때문에 일류 대학 졸업자들은 웬만하면 뽑지 말자고 주장하시는 인사팀장님도 봤습니다만… 어찌 보면 ‘회사의 잘못은 눈곱만큼도 없고 퇴사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만든 핑곗거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퇴사의 이유는 ‘퇴사자의 잘못 때문’이라기보다는 ‘퇴사자의 성향이 기업문화랑 잘 맞지 않아서’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굳이 퇴사자의 잘못을 따지자면 그러한 기업문화를 사전에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 정도가 아닐까 하는데요. 매우 똑똑하고 성실하고 열성적이고 게다가 합리적이기까지 한 분들도 기업문화랑 맞지 않으면 조기 퇴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경험담
잠깐 제 얘기를 드리자면, 제가 중학교를 조금 험한 학교를 나왔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공부 외에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제 성적이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물론 주변 환경에 둔감한 제 친구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의외로 섬세하고 예민한 저는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서 공부에 집중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는 어쩌다 운 좋게 특목고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인기를 구가하는 ‘행복은 성적순’인 문화가 약간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아닌 여학생들로부터의 인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열심히 할 모티베이션이 생기게 되었고 그 결과 중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공부를 잘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인기가 많았다는 말씀을 드리자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에도 학교와의 궁합에 따라 이처럼 성적이 크게 좌우됐는데 심지어 직장은 어떻겠느냐’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높은 성적에 비해서는 인기가 그닥 없는 편이었습니다. 저를 좋아하던 애들은 주로 저보다 한 덩치 하던 애들이었습니다. 제가 모성애를 자극하는 외모를 갖고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럼 지금부터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또는 기업문화와 맞지 않아 고생한 제 지인들의 경험담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사례 1
매우 보수적인 국내 회사에서 매우 자유로운 글로벌 회사로 이직한 뒤 한 동안 가치관의 혼란을 겪은 지인의 얘기입니다.
김군은 선배님의 지시라면 소속을 망라하고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상명하복식 문화로 유명한 B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B는 ‘보수’의 앞 글자) 다시 말해 선배님의 지시라면 비록 그 선배님이 본인 팀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이행해야 했습니다. 조금 이상한 문화죠. 하지만 그 회사에서는 정말 그랬습니다.
하루는 팀장님께서 팀 회의 도중 갑자기 김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팀 막내는 맨날 선배 뒤치다꺼리하느라 수고가 많은데 어디 불편한 점이 있으면 한번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지.” 김군은 여느 때와 같이 방긋 웃으며 “불편한 거 없습니다”라고 답했죠. 그러자 팀장님이 다시 한번 “괜찮아. 이참에 마음속에 담아둔 불만 한번 다 털어놔 봐”라고 얘기했습니다. 김군은 계속 방긋방긋 웃으며 “불편한 거 정말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팀장님은 “정말 괜찮아”라고 하시면서 다른 선배 팀원들을 돌아보면서 “괜찮지?”라고 물었고, 다른 선배들도 “괜찮아. 이번 기회 아니면 언제 얘기하겠어”라면서 팀장님을 거들었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얘기하자 김군은 괜찮겠거니 생각하고 “그럼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면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몇 가지 사항을 정말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분위기는 순간 싸해졌고 당황한 팀장님은 성급히 회의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러고는 회의실 문을 나가는 김군을 향해 “김군은 잠깐 남아 있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팀장님 왈,
“야, 너는 막내가 되어 갖고 팀원들 다 있는 데에서 그런 식으로 불만을 얘기하면 어떡하냐?”
김군은 그다음부터는 어떤 자리에서도 불만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술자리에서조차 입을 다물었죠. 물론 방긋 웃는 것은 잊지 않았고요. 그리고 몇 년 후 김군은 글로벌 회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팀장님께서 팀원들을 모아 놓고 어떤 사안에 대한 자신의 제안을 말씀하신 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문제점 또는 보완점을 말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한 마디씩 했고 김군 차례가 되었습니다. 김군은 이전 회사에서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없습니다. 매우 좋은 제안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번 팀장님도 회의를 마친 뒤 김군 보고 잠깐 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팀장님 왈,
“그렇게 아무 의견이 없으면 일을 안 한 거예요. 우리 회사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월급 주는 회사 아니에요.”
김군은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애먹었습니다.
사례 2
성과 중심의 S사에 경력직 팀장으로 입사한 박군은 첫 팀장 전략 워크숍에 참석해서 그만 쇼크를 먹었습니다. (S는 ‘성과’의 앞 글자) 팀장 전략 워크숍은 모든 팀장들이 돌아가면서 지난 분기 실적과 다음 분기 목표 및 전략을 발표한 뒤 사장님의 피드백을 듣는 자리인데 박군의 이전 회사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먼저 지난 분기 목표 실적을 달성한 팀장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팀장들이 목표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원인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들었습니다. 거시경제 상황이 악화되어서 또는 경쟁사가 공격적인 전략을 펼쳤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못한 게 아니라, 오로지 팀장인 자신이 부족해서 못했다는 식으로 모두들 ‘내 탓이오’만 얘기했습니다.
다음으로 진행된 다음 분기 목표 및 전략 발표에서는 모든 팀장들이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천지개벽 경천동지 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죽었다 깨어나도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하나 같이 제시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다들 하나 같이 ‘동어반복 산수’를 했습니다. 가령 이런 식이죠. “매출 100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A상품에서 50억, B상품에서 30억, 그리고 C상품에서 20억을 달성한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이후 사장님께서 팀장 한 명씩 돌아가면서 따가운 질책을 하신 뒤, 마지막으로 전체 팀장을 향한 격려의 말씀을 하심으로써 워크숍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개중에는 상대적으로 더 호되게 혼난 팀장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의 질책을 들었습니다.
S사 팀장 워크숍은 심오한 전략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한 마디로 ‘자아비판’하고 깨지는 자리였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깨져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박군은 황당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회의를 진행하면 안 깨지는 사람이 없을 텐데…’ 사실 그랬습니다. S사에서 짬밥 좀 먹은 팀장들은 혼나는 데에는 다들 이골이 나 있었습니다.
사례 1의 B사에서는 선배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봉사 3년을 보내야 합니다. 선배들의 말만 믿고 섣불리 불만을 얘기했다가는 위아래도 없는 ‘버릇없는 놈’ 소리 들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참고 견뎌야만 하는 회사죠.
사례 2의 S사는 ‘맷집’이 회사생활의 핵심 성공요인입니다. 욕먹는 데에 아직 어색한 분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죠. 욕먹으면 의기소침해지시는 분들은 꼭 피해야 하는 회사입니다. 전체 회의 석상에서 하도 심하게 깨져서 공황장애를 겪은 팀장님까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웬만한 폭언에는 흔들리지 않는 강단 있는 분들은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입니다. 박군은 몇 년 못 견디고 학을 떼고 퇴사했죠.
이처럼 기업문화랑 잘 맞지 않으면 아무리 달콤한 귤이라도 결국은 탱자가 됩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정말 똑똑한 것으로 소문났는데, 또는 이전 회사에서는 정말 일을 잘하는 에이스였는데 새로운 회사에서 갑자기 일을 못하는 꺼벙이가 되었다면 먼저 본인을 탓하기 전에 기업문화가 나랑 잘 맞는지 판단해 보십시오. 내가 못났을 수도 있지만 지금 회사에서 갑자기 일을 못하게 되었다면 기업문화를 의심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기업문화가 정말 이상한 회사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적응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퇴사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힘든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도 많습니다. 어떠한 기업문화가 여기에 해당될까요? 지금부터 가급적 피해야 할 몇 가지 기업문화 사례를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기업문화가 매우 나쁜 회사 사례
A. 기업문화가 비상식적으로 특이한 회사
사회 상식에서 벗어날 만큼 특이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정말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모 회사에서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친구 한 명 없이 왕따로 책과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 ‘가장 모범적인 직원’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공부를 하느라 책과 도서관만 왔다갔다한 게 아니었죠. 성격이 모나서 친구들이 같이 안 놀아줘서 그냥 혼자 모질게 공부만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학점이 좋은 편도 아니었습니다. 친구들도 별로 없고요. 다른 회사에 가면 정말 왕따감이었을 이 사람이 이 회사에서는 모범적인 직원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회사와 일 밖에 모른다고요.
반면 적당히 놀 줄 알고 적당히 술도 마시고 적당히 할 말도 하는 보통의 젊은이들은 ‘개선할 대상’으로 평가받습니다. 골프는 ‘필요악’이 아닌 ‘사회악’이고 술은 만병의 근원이자 정신을 타락시키는 마약이고. 이런 회사에서는 일반적인 성향의 보통 젊은이들은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해 5년 이상 근무한 사람 중에는 다른 회사로 이직한 뒤에도 적응하지 못해 다시 이 회사로 컴백하는 경우도 많죠. 비정상적인 상황에 익숙해진 나머지 정상적인 상황에는 적응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B.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회사
기업문화가 비정상적으로 특이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특이한 회사 중에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회사도 있습니다. 특히 최근 사세가 급작스럽게 성장한 중견기업 중에는 ‘나의 방식만이 곧 성공 방식’이라는 도취에 빠져 기업문화와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직원들을 인정하지 않는 회사도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관행과 업무 프로세스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표현 그대로 ‘이단시’ 합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신입이든 경력이든 관계없이 가장 중요한 직원 선발 기준 중 하나가 ‘기업문화와의 적합도’입니다. 즉, 기업문화와 잘 맞지 않는 직원은 뽑히기도 어렵고, 설사 입사하더라도 사내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업문화가 매우 강한 기업에서는 기업문화랑 맞지 않는 직원은 ‘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C.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를 숭배하는 회사
이런 회사는 의외로 많습니다. 오래된 회사 중에서, 그리고 영업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 중에서 이런 회사가 많죠.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중에서는 이런 군대식 기업문화에서 잘 적응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냥 군대에서 일할 것을 추천합니다.
D. 과정은 생략하고 목표 대비 실적으로 쪼는 회사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피력해도 혼나는 회사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목청껏 외쳐대도 혼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혼나는 정도가 아니라 불호령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죠.
이런 회사에서는 “반드시 성과를 내겠습니다”라고 해야 혼나지 않습니다. ‘실적이 왕’이고 ‘실적만이 평가 대상’이기 때문이죠. 이런 회사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정말 죽도록 일해도 성과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얼핏 들어보면 괜찮은 회사 같죠? 실적은 측정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실적은 정직하니까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그럴까요? 실적은 측정 가능하지만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보이게 할 수도 있고 작게 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적은 절대로 정직하지 않습니다. 해당 업무에 종사하신 분들이라면 굳이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니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성공합니다. 여기에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은 “나는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할’ 용의가 있는가?”입니다. 남들보다 더 ‘할’ 용의가 없으면, 아니 남들만큼 ‘할’ 용의가 없으면 이런 회사에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평가는 제대로 못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낙오되겠죠.
E. 최고경영자가 지나치게 난폭한 회사
‘낙수 효과’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최고경영자가 난폭한 회사는 대개 임원들도 같이 난폭합니다. 임원들이 난폭한 회사는 대개 중간 관리자들도 함께 난폭해집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사를 본받고 상사의 잘못된 행태를 그대로 학습하기 때문이죠. 또한 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래에서 풀려고 하는 ‘못된 심보’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 마디로 회사 분위기 전체가 좀 거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착한 사람은, 아니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은 이런 회사에서 버티기 힘듭니다. 업무 외에 괜한 일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기 마련이죠.
F. 비리나 성희롱을 용인하는 회사
제 지인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거래처인 모 대기업 상무님 팀과 저녁 식사 겸 술자리를 했는데 이때 상무님께서 옆에 앉아 있는 신입사원을 가리키며 “나 오늘 얘랑 잘거야”라는 말씀을 하셨답니다. 제 지인은 처음에는 자기가 잘못 알아들었나 하고 귀를 의심했는데 그 상무님께서 재차 “나 오늘 얘랑 잘거야”라는 얘기를 하셔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제 지인 왈, “문제는 이러한 만행에 대해서 아무도 제지를 못했다는 거지. 나는 물론 못했고 상무님 팀원 중에서 어느 누구도 제지를 못했고. 그 말을 들은 신입사원은 그냥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고. 듣는 내가 기분이 더러웠는데 그 신입사원은 어땠겠어? 아니면 그런 말에 익숙해져서 이력이 났을 수도 있고.”
비리나 성희롱을 용인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회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성희롱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외에는 모두가 매우 힘듭니다.
G. 답답할 만큼 보수적인 회사
보수적인 회사에 잘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제가 쓴 이런 ‘변방의 북소리’와 같은 글까지 일부러 찾아서 읽을 만큼 지적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 만약 이런 회사에 다니실 경우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답답해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갈 수 있습니다.
H. 직원의 인격을 무시하는 회사
실제로 직원들을 ‘머슴’ 취급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심성이 매우 심하게 꼬였거나 아니면 지나친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분을 오너로 둔 회사 중에 이런 회사가 많습니다. 인격이 무시당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머슴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신 분이라면 이런 회사에서 버티기 힘들죠.
I. 사내 정치가 판을 치는 회사
실적으로 진검승부를 하는 대신 사내 정치라는 꼼수로 승패를 가르는 회사는 참 많습니다. 그런데 다른 회사에 비해 사내 정치가 특히 더 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촉각이 특별히 더 발달한 분이 아니라면 이런 회사에서 버티기는 쉽지 않습니다. 임원이 되면서부터 좌절의 순간을 여러 번 겪을 것입니다.
J. 뒤통수치기를 밥 먹듯이 하는 회사
뒤통수치기가 일상화된 회사도 있습니다. 이 회사 임원들은 앞에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지만 뒤돌아서면 서로를 헐뜯느라 혈안이죠. 여러 부서에서 사장님께 공동으로 보고를 드릴 때에는 회의 전이랑 후가 너무 다릅니다. 회의 시작 전에는 서로 칭찬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죠. 하지만 회의 도중 사장님께 꾸중을 듣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느라 또 혈안이죠. 사전에 합의 본 내용도 자기한테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뒤집어 버립니다. 다른 회사와 협상을 할 때에도 이런 뒤통수치기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이 회사와 거래를 해본 기업은 “앞으로는 절대 다시 안 한다”라고 혀를 내두릅니다.
이런 회사에서는 ‘등에 칼을 먼저 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기 등에 칼이 꼽힙니다.
마무리하며
이상으로 가급적 피해야 할 몇 가지 기업문화 사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기업문화가 매우 나쁜 회사 사례는 이 외에도 많습니다. 갑질이 일상화된 회사, 분위기가 굉장히 험한 회사, 여성을 차별하는 회사 등등 부지기수이죠. 여기서는 대표적인 열 가지 사례만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신다고요?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고요? 만약 이런 회사에 근무하는데 일을 잘 못하신다면 그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절대로 여러분이 못나서가 아닙니다. 그건 한 마디로 여러분께서 다니시는 회사의 기업문화가 ‘쉣’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사에서 일을 잘하시는 분은 여러분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인재’입니다. 정말 희한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분이죠. 보통의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신 분이라면 이런 회사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지금 이러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송하지만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51% 정답마저 없습니다. 제 지인은 이러한 회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회사들을 여러 차례 두드려봤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도긴개긴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지인처럼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이직을 감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랬다가 제 지인처럼 기업문화가 마찬가지로 나쁜 회사에 들어갈 경우 힘들게 이직만 하느라 고생한 꼴이 되겠죠. 그렇다고 매일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다니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고요. 고3이나 군대처럼 시간이 한정돼 있는 것도 아니고…
대응 방안은 드릴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사실은 ‘여러분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옳습니다. 기업문화가 ‘쉣’입니다.
여러분의 유일한 잘못은 세대를 잘못 태어난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 부모님 세대랑 비교해보면 훨씬 나은 편입니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으십시오. 그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쉣’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입니다. “진짜 더러워서 내가 피하고 싶지만 네가 불쌍해서 조금 더 맞춰준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정말 불쌍해서 맞춰주는 것이다. 내가 아니라 네가 불쌍해서…”
“나는 괜찮다. 절대로 약하지 않다.”
Key Takeaways
- 아직도 많은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퇴사하면 그 원인을 퇴사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 퇴사의 이유는 퇴사자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퇴사자의 성향이 기업문화랑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 기업문화가 특히 나쁜 기업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말라. 여러분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 여러분이 옳다. 기업문화가 ‘쉣’이다.
추신
이 글을 읽으신 모 독자님께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기업문화가 좋은 회사가 도대체 몇이나 되느냐? 밖에서 봤을 때 기업문화가 좋아 보이는 회사도 실제로 일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업문화가 좋은 회사가 있더라도 그러한 회사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글보다는 차라리 기업문화가 나쁜 회사에서 견디는 방법을 제안하는 글이 더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 기업문화가 좋은 회사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그리고 기업문화가 나쁜 회사에서 견디는 방법을 쓰라는 제안에 대해서도 역시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그동안 쓴 글 중에 그런 글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한 글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제안도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나쁜 현실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왜 순응하라는 식의 글을 쓰냐고요.)
이 글은 기업문화가 나쁜 회사에서 견디는 방법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닙니다. 이 글은 기업문화가 나랑 맞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시거나 퇴사의 길을 선택하신 분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드리기 위해서 쓴 글입니다.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퇴사하신 분들 중에는 ‘직장생활에 학을 떼고’ 또는 ‘자신감을 잃어서’ 또는 ‘스스로를 자책한 나머지’ 직장생활에 복귀하기를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 중에는 기업문화가 나빠서, 또는 자기와 맞지 않아서 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을 자기에게 돌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역시 나는 못났어.”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왜 나는 사회생활을 못할까?”
이렇게자책을 하시면서요. 어떻게 아냐고요? 저 또한 한때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자책하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과 더 잘 맞는 조직이나 상사를 만나면 일을 잘 하실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물론 기업문화가 나쁜 회사에서 온갖 어려움을 견디면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으시고 언짢아하실 수 있습니다.
“기업문화가 좋은 회사가 얼마나 된다고…”
“기업문화가 좋은 회사에 누가 가기 싫어서 안 가냐?”
“기업문화가 좋은 회사 다녀봤다고 잘난 체 하냐?”
“좋은 회사 다녀봤으면서 왜 피해자 코스프레 하냐?”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시면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이시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100% 정답은 없고, 모든 분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제안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기업문화가 나랑 맞지 않아서 하루하루 지옥의 날을 보내시거나 퇴사의 길을 선택하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동시에 저를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제 글 중에 많은 글들이 저를 위한 글입니다.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자문자답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분들도 저처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입니다. 좋은 뜻으로 쓴 글, 좋은 뜻으로 해석해주셨으면 합니다.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