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MBA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과목들 가운데는 혁신(Innovation)에 관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과목들을 마칠 때 즈음에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 이에 대해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1. 혁신은 실천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혁신이라는 것은 생각(Idea)과 그 생각에 대한 실천을 뜻합니다. 누군가 혁신을 이야기할 때 혁신적인 생각 자체 내지는 혁신적인 결과물(물건,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생각뿐인 혁신은 스타트업 기업도 포함하여 기업에게 필요한 진정한 의미의 혁신은 아닙니다. 창조적인 생각 자체도 중요한 능력임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생각만으로는 기업이 원하는 혁신(혁신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는)을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생겨나고 있지만, 그중에 극소수만이 성공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창조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뭔가 이룬 것 같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아이디어에 수반에는 꾸준한 노력(혹은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창조적인 생각은 머리에서 나올지 모르지만, 혁신적인 결과물은 손끝에서 나옵니다.
2. 혁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혁신이라는 주제 자체가 매우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혁신적인 생각과 혁신적인 결과물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혁신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혁신적인 결과물이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 또한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왔다고 해서 그 바탕이 되는 생각 자체가 혁신적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혁신적인 생각(아이디어)이 혁신적인 결과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꾼 혁신적인 물건들 모두가 혁신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기업에서 혁신적인 결과물이 도출되는 데 있어서 많은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그 많은 요소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최선의 결과물이 나옵니다. 혁신적인 생각(혹은 사고)은 그러한 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3. 혁신은 (마지막에) 올리는 체리다
어쩌면 이 부분이 혁신을 논하는 사람이 가장 반대하는 이야기일 듯 합니다. 혁신에 관한 많은 논문과 기사들이 기업에게 “혁신이 전부이고, 혁신만이 살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혁신에 대한 많은 방법론을 배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만, 혁신적인 사고는 혁신적인 결과물을 내는 전부가 아니라 거의 다 완성된 결과물을 마무리해주는 역할만을 한다는 겁니다. 체리가 케익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틀림없이 필요하지만 체리만으로 케익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요.
그래서 체리를 올린다는 이유로 케익 자체를 훼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체리는 올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혁신적인 기업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기업이 망가지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4. 혁신은 보통 자기 상자에서 일어난다
혁신 혹은 혁신적인 사고를 논할 때,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이야기는 아마도 ‘Out-of-box-Thinking(상자 밖에서 생각하기)’일 것입니다. 똑같은 제목의 책도 있더군요. 제가 책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으로 짐작하건대 창조적인 사고(혹은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이 아닌 상자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뭐 이런 류의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꾼 실질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낸 많은 생각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영역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해야겠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와 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바꾸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혁신적인 결과물은 커피숍이나 공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나옵니다.
물론 뉴톤은 공원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법칙을 생각해 냈고, 천재적인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공원과 같은 곳을 산책하면서 사색의 시간 가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이론을 정리하고, 체계화 한 곳은 공원이 아니라 책상이었습니다. 공원 산책이나 커피숍 토론과 같은 일련의 환경변화가 사람의 생각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커피숍이나 공원에서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횟수보다는 실험실에 혼자 틀어박혀서(혹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 보다 깊게 알아가면서)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횟수가 월등히 높습니다. 다만, 후자의 경우가 전자의 경우보다 덜 드라마틱 할 뿐이지요.
또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실질적인 이론이나 결과물로 체계화하는데 있어서는 ‘자신의 영역’에서 치열한 자기 노력이 있어야지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영역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도움이 됩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어줍잖은 혁신 방법론을 쫓아다니지 말고 처박혀서 해당되는 분야를 공부하세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스타트업 기업가이신가요?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만나 한두 마디 줏어듣는 것보다 전산학을 다시 공부하세요. 어줍잖은 전문가들에게 몇 마디 듣기 위해 쫓아다니는 것보다, 학부 때 배우는 알고리즘이나 이산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통상은 이를 ‘복습’이라 합니다)이 혁신적인 사고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시중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혁신이론을 공부한다거나, 커피숍을 기웃거리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5. 혁신 활동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알려진 많은 방법론들과 활동들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Designs’ Thinking, System’s thinking, IDEO Process (DeepDive), Lego Serious Play, Systematic Innovation과 같은 방법론들이 서로 자기네 방법론이 최고라고 떠들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이 초일류기업들의 혁신 관련 활동들을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실제로 나오는 것은 그러한 활동이 아니라, 그 활동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활동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속한 구성원들의 수준이 어떠냐에 따라 아이디어의 질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구성원들의 수준은 단순히 최종 학력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사고 체계의 성숙도를 의미합니다.
혁신적인 기업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혁신적인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재들이 ‘조직문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한다면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야기가 약간 곁가지로 샌 것 같은데, 어쨌든 여기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진 혁신 방법론이나 활동 자체가 혁신을 만드는 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이 구성원들이 새로운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영향력 있는 생각을 하는 것은 구성원들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6. 혁신적인 생각은 습관이다
이 이야기는 혁신을 혁신적인 사고로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창의적인 인재’와도 의미가 닿아 있습니다.
기업들도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고, 개인들도 한 번쯤은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창의적인 인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해봤을 것입니다. 위에도 언급이 되어 있지만,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론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떠한 방법론들은 실질적으로 체계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체계화된 사고방법론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법론이 익숙하지 않으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혁신 방법론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으면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혁신 방법론이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경험입니다. 물론 스타트업 기업이나 기업의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혁신적인 방법론을 적용해 보는 경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혁신적인 방법론은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습은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합니다. 마치 매일 운동하면서 근육을 키우듯이 일상에서의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훈련이 반복되어 익숙해지면 그것이 바로 습관이 되는 것이지요.
혁신적인 사고가 빛을 보는 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꾸준한 연습 끝에 실전에서 빛을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혁신적인 사고에 대한 꾸준한 연습만이 실전에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