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아이언맨 1>부터였을까. 우리 삶 속에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가 깊숙히 자리 잡게 되었다. TV 프로그램도 수퍼맨이 돌아왔다, 런닝맨 등 상황보다는 특정 사람(캐릭터)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스타트업도 예외는 아니다. 특정 기업의 인물이 주목을 받고, 그로 인한 낙수효과에 기대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늘 영웅형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있고, 그들의 역경 극복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것은 아닌데, 혹시 모두가 특별함만을 쫓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시장 자본주의는 경쟁을 필두로 순위를 매기는 것을 당연시한다. 몇몇 기업들이 주도하는 세상은 어찌 보면 세상 속 커다란 Main Stream에 의한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독주에 가까운 성장은 늘 경쟁자들의 견제를 통해 더욱 그럴듯한 스토리로 바뀌어 간다. 당연히 늘 문제는 도사리고 있고, 그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 또한 역사에서 늘 증명되곤 한다. 그 스토리는 소위 ‘난놈’이 주도하고 있다. 몇몇의 영웅이 자신의 스토리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늘 대리만족을 추구하며, 그들을 동경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한다.
스타트업도 예외는 아니다. 유니콘에 가까운 기업들은 언론의 다양한 주목을 받으면서 성장해왔다. 그리고 그 기업의 다양한 사람들 중 ‘대표’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그냥 1등이 아니다. 영웅이라고 보고 싶지만 사실 괴물에 가깝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굉장히 쉽게 처리하고, 손자병법에서 이야기하는 최고의 전략(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각 시장에서는 늘 막강한 1위와 엇비슷한 2, 3위가 경쟁하며 1위가 더욱 빛을 발하도록 돕는다. 2, 3위는 끊임없이 1위를 견제하면서 자신들의 위세를 피력한다. 하지만 시장은 늘 1등만을 기억하고, 1등을 쫓는 수많은 이들을 one of them 취급한다.
그들은 정말 특별(?)하다
일전에 적성과 재능을 다루는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평범한 이들이 갖추고 있는 재능과 적성의 경계조차 무너뜨렸다. 마치 초능력을 갖춘 수퍼 히어로에 가깝다. 그중 하나가 바로 ‘노오력’이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노력의 양과 질이 다르다. 늘 함께 일하는 이들을 넘어 고객까지, 모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100%에 가까운 만족을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노력의 끝에 늘 ‘자기만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갖고 있는 만족 그릇의 크기는 상당히 특이했다. 타인의 만족으로부터 자기만족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들은 타인을 만족시키는 수준 그 이상을 늘 쫓아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노력 없이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재능 안에는 늘 ‘노력하는 자세’가 DNA처럼 박혀 있는 것 같다.
보통의 일반인에게는 없는 부분이다. 영화 속의 영웅들에게나 있는 점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악당과 맞서 싸우는 수많은 히어로들과 비슷하다. 그들은 늘 묵묵히 함께 일하는 직원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고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전이시킨다. 그래야만 고객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절대 떠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 같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영웅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괴물스러운 영웅’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영웅이 있는 스타트업은 늘 시장에서 주목받는다. 그들은 괜찮은 학벌과 함께 신기한 이력 등을 가지고 있다. 나이에 비해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대단한 성과 및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형태의 낙수효과를 만들어 새로운 비즈니스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네트워크 효과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비즈니스로 끌어모은다. 물론 일부 부풀려진 쪼렙 영웅들도 있지만, 그래도 대단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까지 그들은 영웅이어야 하며, 영웅에 가까운 괴물이어야만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영웅은 유효기간이 있다. 올해 개봉한「로건」에서 나온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도 차기 울버린을 암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영웅을 맞이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배트맨, 수퍼맨,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다. 여러 배우와 감독을 만나고 사회적 정서에 따라 다양한 부분을 조명받고, 시대에 맞춰 해석되곤 한다.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은 분명 그 시대가 진정으로 바라는 ‘영웅’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시대 정서나 상황에 따라 각각의 다른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은 대표가 나서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해야 하고, 기업의 크기와 상관없이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일당백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명운은 여기에서 갈린다. 개인으로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은 기업이 만들어진 초기에만 유효하다. 기업이 안정기를 거쳐 서서히 비즈니스가 궤도권에 오르려고 하는 순간,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이들을 모으고 제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주는 것으로 변모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변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괴물, 또는 영웅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특정 개인을 주목하는 것으로 비즈니스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조직보다 뛰어난 개인은 없다.”라는 말처럼 조직을 최우선시하는 괴물로 진화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은 분명히 있다. 비즈니스 구조 또는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표로서 버려야 할 욕심, 직원들에 대한 기대감 등의 수준을 결정하고, 이를 통해 효과적인 목표 설정을 통해 ‘욕심’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내 실패는 아마도 이런 부분의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단기적 실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수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지만, 꼭 내가 스스로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영웅 또는 괴물’ 같은 존재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오히려 조직 내의 많은 이들을 영웅 또는 괴물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영화 <어벤저스> 속의 진짜 리더는 ‘닉 퓨리’이다. 세계 평화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가 나서기보다는 영웅을 발굴하고 규합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며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삼국지 속의 유비나 조조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늘 인재를 얻고자 다양한 노력을 했으며, 선의 또는 악의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역사 속에서 잠깐이나마 증명했으며, 여건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꼭 영웅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굳이 특별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늘 우리 삶 속에서는 주인공이자 영웅이니까 말이다. 가끔 누군가에게 우리는 ‘영웅’ 또는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은 영웅 또는 우리를 괴물로 보고 있는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어찌 보면 괴물이나 영웅이 되고 싶은 평범한 인간이 아닐까. 평범한 사람인 뱁새와 영웅에 가까운 황새를 구분짓는 기준은 스스로를 뱁새 또는 황새라고 치부하는 이들만의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것, 묵묵히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 스타트업에는 영웅이나 괴물보다는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비범한 결과를 이루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하다. 이제 영웅의 스토리에는 약간 지쳐있다. 세상은 원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원문: Eden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