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저희 회사는 달성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를 주고 심하게 채찍질합니다. 아주 간혹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실패하죠. 목표에 미달하면 많이 혼나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힘들어합니다.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시키죠? 부작용이 더 클 것 같은데요.
Answer
아, 그 말씀에 저도 100% 공감합니다. 저도 불가능한 목표 때문에 크게 맘고생한 적이 몇 번 있었죠. 아니,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모름지기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두 번쯤은 다들 해봤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목표를 부여할 때 보통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서 합니다.
- ‘B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로 지금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달성 가능한 수준이죠.
- ‘A목표’는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도 달성할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 ‘S목표’는 ‘달성하기 거의 불가능한 목표’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해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S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S목표를 달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죠.
어떤 사업의 경우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목표 하나만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밀고 있는 신규 사업의 경우가 이럴 수 있죠. 회사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사업일 경우에는 목표를 높게 잡는 대신 회사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진짜 이렇게 지원하고요.
하지만 기존 사업, 신규 사업 구분 없이 그냥 모든 직원들에게 달성 불가능한 목표만 부여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라고 매월, 때로는 격주로 채찍질을 가하죠.
이러한 경우를 처음 접해본 분들은 목표를 받을 때만 해도 ‘설마?’합니다.
설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정말로 기대하고 있지는 않겠지?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달리라는 뜻에서 그랬을 거야. 내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노력은 인정해 주겠지?
하지만 목표 마감일에 임박해 경영진의 압박을 몸소 실감하면서 ‘목표는 달성하기 위한 목표’라는 사실과 함께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순진하게 생각했는지를 깨닫게 되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없으면 일한 게 아니다’라는 ‘진리(?)’와 함께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없으면 일한 게 아니다
그 이후로는 매달 경영진 회의에서 엄청난 실적 압박을 받게 됩니다. “목표 달성을 왜 못했느냐?”라며 깨지고. “도대체 대책은 있는 거냐?”라며 또 깨지고. “목표 달성도 못 했는데 무슨 낯으로 보고를 하느냐”라며 깨지고. 이러한 상황이 매달 반복되죠. 그러면서 점점 후회가 커집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표라서 못 한다고 할걸. 내가 왜 그것을 한다고 얘기했지?’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잘 알죠. 그 목표는 안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당시 분위기상 ‘불가능한 목표’를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했다는 것을. 이때부터는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회사는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시킬까요? 달성이 어려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토록 높은 목표를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가능한 목표를 주는 이유
1. 달성 불가능한 목표 100을 주면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최소한 50은 할 것이라는 믿음
목표를 주시는 분조차도 그 목표를 100%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높은 목표를 주시는 이유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최소한 목표의 50%는 달성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 때문이죠.
2. 초인적인 역량을 발휘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낼 거라는 믿음
앞선 이유와 비슷한데, 목표가 적당히 높으면 지금보다 조금 더 잘하려고 하는 데 그치지만, 목표가 달성 못 할 만큼 높으면 무엇인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3. 하면 된다는 의지를 갖고 끝까지 노력하는 ‘근성’과 ‘희생정신’을 파악하기 위한 의도
직원을 테스트하기 위한 의도도 있습니다.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는 직원과 ‘하면 된다’는 의지를 갖고 온몸을 불살라서라도 끝까지 도전하는 ‘근성’과 ‘희생정신’을 보유한 직원을 가려내기 위한 목적이죠.
4. 목표 달성을 위해 법정 근무시간 외 시간에 자발적으로 근무하게끔 유도하려는 의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려는 뜻도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높은 목표를 부여하면 특별히 야근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직원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 스스로 알아서 늦게까지 일하죠.
5. 목표 달성을 못 한 직원들이 죄책감을 갖고 스스로 더욱 노력하게끔 유도하려는 의도
목표 달성을 못 한 직원들은 아무래도 죄책감을 갖게 되겠죠. “목표 달성 왜 못했어?”라고 추궁하면 “목표가 높아서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직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대부분 본인의 노력 부족 또는 능력 부족을 원인으로 지적하죠. 그리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단 그렇게 말을 내뱉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세뇌가 됩니다. 그러면 죄송한 마음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죠.
하지만 때로는 경영진의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원들이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꼼수’를 부리기 때문이죠.
목표 달성을 위해 직원들이 취하는 꼼수
1. 상품/서비스 구분을 불명확하게 함
달성 불가능한 매출 목표를 받을 경우 많이 쓰는 방법은
a. 성격이 다른 여러 개의 상품 또는 서비스를 하나로 합치거나
b. SKU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가령 청바지(블루진) 상품 하나로 매출 10억 원을 달성하라는 목표를 받았는데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a. 청바지가 속한 데님 팬츠 전체 매출로 10억 원 목표를 잡거나,
b. 청바지 SKU 수를 계속 늘림으로써 청바지 매출을 확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 다 꼼수죠.
비유하자면 400미터 달리기를 40초 이내에 뛰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받으니까 (개인 400미터 달리기 세계 기록은 43초) 4인조 릴레이팀을 구성해서 40초 이내에 주파한 뒤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는 꼴이죠.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수치를 조작한 것이지만 어찌 보면 회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청바지 한 품목으로 매출 10억 원을 달성하려고 무리해서 추진했다가 목표만큼 판매하지 못할 경우 재고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는 데님 팬츠로 10억 원 목표에 도전하는 게 리스크가 적겠죠. 400미터를 40초 이내에 뛰려고 무리해서 연습하다가 부상당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2. 다른 사업부에 비용을 전가함
달성 불가능한 이익 목표를 받을 경우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간접비용을 다른 사업부에 전가하는 것입니다.
모 회사에서는 신규 사업을 1년 내에 흑자 전환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부여합니다. 이건 정말 상식에 어긋나도 너무 많이 어긋나는 지시죠. 그런데 이를 달성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신규 사업의 간접비 대부분을 다른 사업부에 전가하는 방법으로요. 심지어 다른 사업부에서 인력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하면서 인건비를 모두 타 사업부에 부담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출 목표를 받은 경우에도 유사한 방법을 쓸 수 있죠. 가령 여러 채널을 보유한 방송국에서 비인기 채널이지만 회장님의 관심이 높은 A채널의 광고 매출을 증대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때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A채널에 광고를 할 경우 인기 채널인 B채널의 광고비를 할인해 주는 것입니다. 이 경우 B채널의 광고 매출은 줄 수 있지만 A채널의 매출은 많이 올라가겠죠.
3. 관리 지표 비용을 비관리 지표에 전가함
일반적으로 관리지표에는 손익계산서상의 이익은 포함되지만 손익계산서에 잡히지 않는 재고비용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안 팔리는 제품을 할인하지 않고 정가 판매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할인을 안 하면 손익계산서상에서의 수익성은 좋아지지만 재고가 늘어 재고비용은 증가하겠죠.
재고를 과다하게 구매하여 구매 단가를 낮추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구매단가의 인하로 매출총이익률은 증가하지만 역시 재고가 많아져서 재고 부담은 늘어나죠.
신규 인수한 브랜드의 단기 수익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건비, 광고비, 연구개발비 등을 삭감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파워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브랜드 파워는 비관리지표인 경우가 많죠.
4. 의도적으로 수치를 조작해 허위 보고함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방법은 지금 말씀드릴 방법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합니다. 심한 경우 의도적으로 수치를 조작해서 허위 보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가령 경쟁사 대비 인당 매출을 비교할 때 경쟁사는 아르바이트 직원도 포함시키는 반면 자사는 정규직으로만 한정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죠. 평당 매출을 비교할 때 어디는 전시 면적만 포함시키고 어디는 창고 면적까지 포함시키는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이것은 명백한 허위 보고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반복해서 하다 보면 죄책감이 옅어지죠.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
불가능한 목표 부여는 직원들이게 다음과 같은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1. 사내 정치에 많은 노력을 들임
사내 정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하죠. 타 사업부의 도움이 없이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타 사업부에 비용을 전가시키고 싶어도 그 사업부에서 동의해야 가능한 거죠. 따라서 평소 사내 정치를 열심히 해서 ‘덕'(?)을 많이 쌓아두어야 합니다.
2. 사내 라인이 형성됨
혼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은 윗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상사가 밀어주는 사람은 실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이런 관행이 오래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라인’이 형성됩니다. ‘김부사장 라인’, ‘이사장 라인’, 이런 식으로요.
3. 꼼수에 능한 사람은 승승장구하고 양심껏 일하는 사람은 손해 봄
꼼수를 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꼼수에 능한 사람만 승승장구하게 되죠. 정석대로 일하시는 분은 손해를 보고요.
4. 사내 인맥이 약하고 꼼수를 미처 익히지 못한 경력직은 손해 봄
꼼수는 아무나 못 쓰죠. 알아야 쓰죠. 회사별로 ‘허용 가능한 꼼수’가 다를 수 있고요. 따라서 인맥이 약해 꼼수를 받아줄 부서도 없고, 사내에서 통용되는 꼼수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경력직들은 아무래도 손해를 보겠죠.
5. 목표 달성을 못 해 쪼임 당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과다하게 받음
쪼임 당하고 깨지는 것도 한두 번이죠. 매달 혼나면 스트레스가 쌓여 언젠가는 병이 됩니다. 특히 꼼수를 부릴 줄 모르는 ‘범생이’ 직원의 경우 스트레스에 더욱 취약하죠. 우울증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습니다.
회사에 미치는 영향
1. 관리 지표 개선되나 그 외 항목은 망가짐
관리 지표는 좋게 포장되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지표는 망가질 수 있죠. 한 마디로 안 보이는 곳이 곪아 터질 수 있습니다.
2. 양심가는 퇴사하고 ‘꼼수맨’만 남게 됨
정석대로 일하시는 분들은 목표 달성에 실패하여 점차 도태되는 반면 꼼수에 능하신 분들은 계속 인정을 받아 나중에는 ‘꼼수맨’들로만 넘쳐날 수 있습니다.
3. 다른 중요한 가치들이 뒤로 밀리게 됨
단기 수익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다른 중요한 가치들이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가령 직원들의 안전한 근무 환경 조성이라든가, 비리 척결 등과 같은 가치들이 실적 논리 앞에서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죠. 한 마디로 ‘실적이 왕’이라는 논리 때문에 ‘실적만 달성하면 많은 것을 눈감아주는’ 잘못된 기업문화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4. 회사 평판이 악화됨
결국 브랜드 관리를 소홀히 하여 기업 이미지가 망가질 수 있습니다. 양심적인 퇴사자들이 늘어날 경우 업계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고요.
5.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됨
비록 목표치 도달에는 실패했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모든 아이디어가 묻힐 수도 있죠. 매출을 20% 증대하는 데에 기여했으면 좋은 아이디어인데 목표치인 200% 달성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사장된다면… 손해죠.
6. 단기적으로는 이익, 장기적으로는 큰 손해
결국 단기적으로 이익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손해입니다. 한 마디로 ‘소탐대실’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죠.
마치며
혹시 ‘우사인 볼트의 법칙’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아마 못 들어 보셨을 겁니다. 제가 방금 전에 만들어낸 말이니까요ㅎㅎ. 우사인 볼트의 법칙이란 ‘아무리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해도 누구나 우사인 볼트처럼 될 수는 없다’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달성 불가능한 목표는 득보다 실이 더 큽니다.
Key Takeaways
-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주고 쪼는 이유는 그것을 실제로 달성할 것으로 기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꼼수’를 부리기 때문에 당초 기대했던 바와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
- 결과적으로 달성 불가능한 목표 부여는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전체적으로는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크다.
원문: 찰리 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