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밥, 이탈리아 파스타, 인도 카레, 베트남 쌀국수, 벨기에 와플, 멕시코 타코, 터키 케밥, 홍콩 딤섬, 독일 소시지, 스위스 퐁듀, 스페인 빠에야.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인 동시에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메뉴들이다. 한국에서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질감 없는 한식과의 퓨전으로 성공적 현지화를 이룬 사례이기도 하다. 요리법도, 느낌도, 핵심 재료와 맛도 다른 음식들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메인 메뉴라는 점.
우리나라는 적지 않은 기간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하며 주로 세 가지 메뉴를 앞장 세워왔다. 불고기, 비빔밥엔 별 불만 없다. 늘 탐탁지 않았던 건 바로 그놈의 김치다.
특정 국가 대표 음식이 세계적 선호를 받기 위한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확장성과 접근성.
- 어떤 음식이나 재료와 접목해도 일정 이상 결과를 담보하도록 해주는 확장성은 현지화를 용이하게 만든다.
- 접근성은 대체 가능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재료는 어디에서든 구하기 쉬울 것이며, 경작 환경이 달라 타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재료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재료로 대체 가능해야 한다.
예컨대, 파스타는 면에 어떤 현지 재료를 섞어도 썩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페퍼론치노가 없다면 청양고추로, 허브 가루가 없다면 생략하거나 깻잎 같은 걸 다져 넣어도 요리를 즐기는데 큰 문제는 없다.
불고기나 비빔밥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한다. 무엇보다 이 둘은 일단 메인 요리다. 하지만 김치는 반찬 아닌가? 곁들여 먹는. 그것도 김치 홍보한답시고 맨입에 주는 경우는 무언가? 만일, 세계 음식 체험전 같은 행사에 초청되어 갔는데 락교를 밥숟갈로 퍼주고 피클만 접시에 쌓아준다면 맛있게 즐길 사람이 있을까? 세상 어떤 나라도 반찬을 세계화시키기 위해 공들이진 않는다. 메인 요리가 유명해지면 곁들여 먹는 음식들도 따라가는 것뿐이지.
외국인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소개할 때, 김치가 처음 거론되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마치 다른 음식들은 김치를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김치를 자랑할 때 효능을 나열하곤 하는데 사실 그렇게 절대적으로 좋은 음식도 아니다. 고춧가루와 소금, 액젓에 절이는 것이기 때문에 염분을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게 됨은 물론 위장에도 좋지 않다. 익히 알려진 장점들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라, 만병통치 약 같은게 아니라는거다. 효능을 따져 수출하려면 차라리 건강식품을 별도로 내보내는 게 낫지 문화와 생활에 스며들어야 하는 음식에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는 소구점이다.
맵고, 짜고,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점은 늘 김치 세계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건 실상 문제도 아니다. 문제는 김치가 외국 메뉴와 접목 가능한 확장성이 거의 전무한 음식이란 사실이고, 한국을 벗어나면 필요한 재료를 제대로 다 구하기도 쉽지 않다. 다른 재료로 대체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 관리 기준과 규격을 제대로 정하기마저 어렵다.
물론, 김치 파스타나 김치 나베, 김치 빠에야 등 국내에서 제법 정착된 퓨전메뉴도 있다. 그런데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외국 메뉴에 김치를 첨부한 느낌이 아니라 김치를 메인으로 외국 메뉴를 곁들은 느낌이 강하다. 김치나베로 치면 김치찌개에 돈가스를 넣은 맛. 김치가 그만큼 색깔 강한 음식이라 웬만해선 서브로 존재하기 어렵다. 어쩌면 카레와 비슷하다. 무엇을 넣어도 카레향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카레는 강황가루 이외 투입 재료는 세상 거의 모든 재료라 해도 될 정도로 확장성이 좋다. 각자 입맛에 맞게끔 조절이 가능하다. 김치는 한정된 음식들과 어울리고 그마저도 대체로 한식이다.
인천 공항이 드디어 한국의 뭘 알려야 하는지를 깨달은 모양이다. pic.twitter.com/cb8FBHXuTp
— pory (@pory_treer) December 12, 2017
기준만 보면 치킨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데…
그래도 꼭 김치를 전세계인 입에 욱여넣어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하면, 관리 기준 마련에 먼저 힘써야 한다. 외국에 유통되거나 현지 제조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수치화된 규격이 필요하다. 염도나 산도, 발효 정도를 측정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준이 없는 실태라 일정한 맛을 담보하기 어렵다. 손맛과 감을 너무 많이 탄다. 나라마다,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조금씩 입맛이 다르고 그에 따라 모든 규격이 나뉘어 관리되어야 세계화가 가능하다. 100% 완벽하게 이런 부분이 관리되는 음식은 없겠지만 김치는 최소한의 기준마저 마련하기 쉽지 않다.
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건강식품이다. 맞다.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건강식품이란 효능을 일컫는 것이지 누구나 맛있어 할 지구적 음식이란 의미가 아니다. 하필, 김치를 우길 필요가 전혀 없다. 다른 좋은 음식들이 알려지면 김치도 곁들여 먹어보기 시작할 거고, 반찬은 그런 정도로만 알려지면 충분하다. 자랑할 게 많은 나라인데 굳이 김치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만일, 김치로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한 외국인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좌절의 경험이 될 거라 확신한다. 그는 다시 한국 음식을 찾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김치를 한국 대표 음식으로 밀면서 세계화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한국에 대한 편견 하나를 세계인의 뇌리에 공고히 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꼴이 될지 모른다.
원문: nangbi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