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로 가득한 거리를 홀로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은 편의점 신상 음료수 칸. 매일 같은 시간. 같은 편의점에 도착한 그는 새로 나온 음료수를 검거한다. 편의점 점장님은 뭉크의 작품처럼 절규한다.
“봄부터 겨울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다른 음료수를 사 가다니!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뭐긴, 손님이지.
하긴 올해만 100번 넘게 방문한 편의점에서 매번 다른 음료수를 사 갔으니 놀랄만하다. 엄마, 아빠도 모르는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는 국내 유일의 음료 전문 미디어. 마시즘이다. 어느덧 100편.
“그 많은 음료수는 어디에서 왔는가?”
<벚꽃이 피면 만나요>에서 시작한 마시즘이 첫눈을 맞으며 감상에 빠진다. 100편의 글을 올리기까지 283개의 음료수와 3개의 빨대. 그리고 10개의 캔을 발로 밟았다.
마시즘을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게 다 구할 수 있는 음료수인가요?”였다. 당연하다. 오늘은 음료수 리뷰를 하는 사람. 마시즘을 리뷰해보자.
1. 편의점, 새로운 음료의 런웨이
마시즘은 3면이 편의점(GS25, CU, 세븐일레븐)이 편의점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때문의 그의 일과는 편의점을 순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편의점은 현시대에 가장 많은 음료수가 놓이고, 사라지는 곳이다.
사람들은 편의점 신상이면 어느 편의점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편의점마다 놓여있는 음료수가 다르다. 편의점마다 추구하는 음료수의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CU : 퀄리티(독특하진 않아도 맛있음)
GS25 : 트렌디(계절별 음료처럼 소장욕구)
세븐일레븐 : 엽기(그래서 제일 사랑합니다)
같은 편의점이어도 한적한 동네 편의점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새로운 음료수가 많다. 또한 직장 근처보다는 대학가에 새로운 음료수가 있을 확률이 크다. 직장인, 그들은 야근을 위한 맥스나 핫식스만 마시니까.
이처럼 편의점마다 놓인 음료수가 다른 것은 발주 시스템 때문이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장은 새로 나온(이라고 쓰고 인지도가 없다고 말한다) 음료수보다 많이 팔릴 음료수를 원한다. 하지만 본사에서는 새로 나온 음료수를 쓱 들이민다. 받았으면 팔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둘까?
유통기한이 짧은 삼각김밥, 도시락, 유제품이 있는 밝은 매대다. 이곳에 있는 제품들은 손님들이 많이 사가서 놓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발 빨리 사주세요’하는 편의점 사장님의 소망이 담긴 구간이다. 아직도 GS25에서 야생 코코넛을 샀을 때 기뻐하던 사장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밝은 얼굴로 지코맛 음료를 주실 줄이야.
2. 야쿠르트, 밀거래하듯 음료수 구하기
야쿠르트에서 나오는 음료수는 특별하다. 길가에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만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야쿠르트에서 히트작이라도 나오면 사람들은 포켓몬GO를 하다 망나뇽을 만난 듯 아줌마를 쫓아다닌다.
하지만 여기 야쿠르트GO… 아니 ‘한국야쿠르트 앱‘을 이용하면 야쿠르트 아줌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내 근처에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를 찾은 후 전화를 건다. 놀랍게 떨리는 순간이다.
“OO은행 앞에서 5분 뒤에 만나요.”
이렇게 통화를 하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면, 야쿠르트 아줌마는 신상을 쓱 건넨다. 마치 갱스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리에서 밀거래를 하는 기분이 난다고. 물론 내 외모 때문에.
3. 대형마트, 초보 맥덕의 성지여
새로 나온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사치다. 아직 못 마셔본 맥주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맥주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대형마트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게 필요한 맥주가 이곳에 다 있다. 물론 필요하지 않은데 사게 되는 맥주도 이곳에 다 있다.
대형마트에 갈 때는 어떤 맥주를 마실 것인지 정해놓고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품이 아니라면 맥주 스타일이나 브랜드를 정하는 것도 좋다. 그것이 프로의 길이다. 물론 마시즘은 어제 전용잔을 준다길래 맥주 세트를 하나 더 샀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덕력이 생긴다면 바틀숍을 이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마시즘 역시 할로윈데이 펌킨에일을 찾다가 마트를 돌고, 돌아 바틀샵에 들린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고퀄리티 맥주와 마스터의 설명에 지름신이 내렸지만, 어제의 내가 지갑에 구멍을 내준 덕분에 한 병만 겨우 사서 나올 수 있었다.
“새로 나온 음료수가 뭐길래”
음료수를 마셔야만 수분보충을 하던 시대는 끝났다. 음료수를 맛으로 마시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곧 끝이 날 것이다. 이제 취향의 시대다.
여러 음료수를 마시는 일은 스스의 취향을 찾는 과정이자 추억을 기록하는 일이다.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음료수는 심장을 떨리게 만든다. 이 음료수를 가장 맛있는 시기에, 맛있는 장소에서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맛이 없더라도 나름의 의미나 추억은 있을 거니까.
그렇게 오늘도 그는 새로 나온 음료수를 찾아 헤멘다. 인파로 가득한 거리를 혼자 걸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