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질 듯 말 듯, 눈이 내릴 듯 말듯한 쌀쌀한 날씨다. 고요한 폭풍전야. 나의 몸은 본능적인 긴장상태로 스마트폰 액정만을 바라본다. 일을 하고 있는 누나도, 학생인 동생도 마찬지다. 뚜루루. 엄마의 전화가 울린다.
그렇다. 김장령. 이맘때쯤이면 다가오는 엄마의 가족 비상사태 공지다. 집의 김치냉장고에는 빈티지 와인처럼 매년 담근 김치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올해도 새로운 컬렉션을 추가해야 한다. 김장이라는 말만 들어도 팔이 쑤시고, 눈이 시큰한 엄살쟁이인 나는 생각한다. ‘김치가 차라리 음료수였다면!’
그런데 실제로 있다. 오늘 마시즘은 한국 사람들만 모르는 김치 음료수들을 소개한다. 엄마 보고 있나?
유산균 음료의 1선발 쿨피스. 거기에 김치가 더해지면 어떨까? 사진 한 장으로 ‘일본의 10대 엽기 음료수’에 랭크된 전설의 음료수다.
김치맛 쿨피스를 표현하자면 김장을 마친 김치의 국물을 그대로 마시는 맛이라고. 세상에 저런 걸 누가 마시겠냐고 충격을 받은 분들이 있겠다. 다행히도(혹은 당연히도) 합성이라고 한다. 세상에 김칫국물을 음료수로 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다. 김치 라이브 샷(Kimchi Live Shot)이라는 음료. 심지어 깐깐하기로 소문난 미국의 유기농 마켓 ‘홀푸드(Whole Foods Market)’에서 판매 중이다.
김치 라이브 샷은 50억 마리의 유산균을 자랑하는 건강식품으로 김치 본연의 맛을 잘 살렸다는 평가. 매운 고춧가루 맛은 물론 생강, 젓갈의 냄새까지도 잘 구현했다고 한다. 사실상 포장만 고급화되었을 뿐이지 미국판 ‘김치맛 쿨피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의 국민 사이다 ‘라무네’는 다양한 맛이 있어 마시즘에도 종종 소개가 되곤 한다. 그중 ‘김치 라무네’는 한국인으로서 반갑지만, 사고 싶지는 않은 공포의 라무네로 손꼽히기도 한다. “대체 저런 걸 왜 만드는 거야.”라고 물으신다면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서 만든다고 답할 수 있겠다. 라무네는 대단하다.
막상 마셔보면 생각보다 달콤 짭짤하다. 치킨무에 김치가 섞인 맛이랄까? 김치 라무네의 경우는 김치를 이용해서 만든 음료가 아닌 고추와 마늘향을 통해 적절히 맛을 흉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손에 안 잡히는 라무네 리스트에 항상 손꼽힌다.
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신 적은 있어도. 김치로 칵테일을 만들 줄은 몰랐다. 김치 마티니라고도 불리는 김치칵테일은 김치주스에 진(혹은 소주)을 섞어서 만든다. 취향에 따라 미리 다진 마늘을 넣기도 하는데, 마무리는 배추잎으로 데코를 하는 게 포인트다.
아직은 실험적인 음료로 몇몇 바에서 인터넷에 레시피를 올리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김치의 매운맛, 양배추의 단맛, 마늘의 뜨거운 맛이 알콜과 제법 잘 어울린다고. 아무리 그래도 김치의 원형을 아는 우리에게는 동치미에 소주 섞은 맛이겠지만.
한류의 무리수인가 김치의 로컬라이징인가
김치 음료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말이 ‘한류의 무리수’다. 하지만 김치 주스도 김치 칵테일도 모두 한국관광공사가 아닌 현지사람들이 자신들의 취향대로 만든 음료라는 게 반전. 나름의 로컬라이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모쪼록 나는 김치를 열심히 담글 테니, 너희들은 열심히 마시렴 ^^;;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