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의 집무실이자 작업공간은 우리가 꿈꾸는 4차 산업혁명의 화려하고 다양한 기술이 총집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비스라는 인공지능을 통해 말 한마디면 알아서 척척 움직여주는 로봇, 홀로그램으로 표현하는 자동차나 기계의 설계도, 필요 없는 자료는 종이를 구기듯 던져버리는 행위는 가상현실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아이언맨 슈트는 토니 스타크의 신체 리듬을 읽으며 눈앞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슈트를 입지 않아도 아바타처럼 움직이니 이만하면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과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의 신비하고도 놀라운 고도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지만 말이다.
지금은 묵직한 고글에 휴대폰을 탑재해야 겨우 증강현실의 단순한 맛보기만 경험해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린 곧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아주 쉽고 편리하고 다양하게 체험할 것이다.
증강현실의 진화
지난해 7월 6일 출시한, 증강현실을 이용한 AR 게임 ‘포켓몬 GO’는 전 세계 스마트폰 유저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당시 필자도 이 게임을 다운로드해봤지만 국내에서는 최적화되어 있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포켓몬 고의 개발사인 나이언틱(niantic)이 올해 1월 한국 진출을 공식 발표했다. 국내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본 게임을 포함해 관련 앱들이 구글 스토어나 아이폰 앱 스토어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증강현실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실제 세계에 3차원 가상의 물체를 입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신기술이다. 1990년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보잉(Boeing)의 연구원이었던 톰 코델(Tom Caudell)이 비행기를 조립하던 과정에서 수많은 전선을 잇고 연결하는 작업을 하다가 오로지 ‘배선도’를 위한 과정에 가상의 이미지를 첨가하면서부터 ‘증강현실’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졌다.
‘Augment’라 하면 ‘늘리거나 증가시킨다’는 의미인데 일본에서는 이 단어를 ‘증강’이라고 표현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실 세계와 가상의 물체가 합쳐져 하나의 화면으로 구성되는데 이를 ‘혼합 현실(Mixed Reality)’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SK텔레콤이 AR 기술을 응용한 지역 검색 서비스 ‘오브제(Ovjet)’를 선보인 바 있다. 휴대폰을 들고 주변을 비추면 스크린 위로 몇 미터 거리에 어떠한 장소가 있는지 나타나고 부가 정보도 함께 표출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했지만 당시엔 꽤 흥미로웠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에서도 사이어인이 들고 나타나는 ‘스카우터’ 역시 증강현실의 사례라며 많이 언급되곤 한다. 〈아이언맨 3〉에서도 토니 스타크가 이와 유사한 장비를 장착하며 아이언맨을 움직였고 많은 사람을 구출하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오브제와 같이 AR을 이용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의 한계는 분명했다. 단순하게 말해 신기한 기술일 뿐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인기를 끌 만한 킬러 콘텐츠가 없으니 초반에 신기함을 경험해버리고 나면 이내 지루하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포켓몬 고의 글로벌 매출만 1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하니 AR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 재미까지 더한 성공 사례도 흔치 않을 것이다.
AR 분야에는 몇 가지 사례가 더 있다. 글로벌 가구 기업인 스웨덴의 이케아(IKEA)도 AR 기술을 접목해 활용도 높은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실제 거실 앞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서면 이케아에서 제작된 의자나 소파, 테이블 등 가구들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방 크기에는 적당하게 맞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AR과 실생활의 결합은 이케아뿐이 아니었다. 하이마트 역시 가전제품을 가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앱이 존재하고 BMW에서도 증강현실을 이용한 앱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증강현실은 점차 대중화되었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구글의 AR 기술 역시 일찌감치 개발에 나섰고 진화된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의 디바이스에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해 AR 기술을 선보이는데,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탱고(Tango)’라 한다.
속을 파보면 굉장히 복잡하겠지만 겉으로만 보면 원리는 간단하다. 아니 간단해 보인다. 탱고의 카메라가 실제 환경을 분석하고 현실과 사물의 심도를 파악, 모션 트래킹까지 인식해 AR을 선보이는 것. 이미 관련 게임이 등장하기도 했고 측정도구 앱이 출시되기도 했다.
더구나 AR을 지원하는 스마트폰이 레노버(Lenovo)사에서 ‘팹 2 프로(Phab 2 pro)’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바 있다. 공간학습이 가능한 센서와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어 주변에 존재하는 물건과 공간을 3D로 볼 수 있는 기능이 존재한다.
아직까지 관련 앱이 많지 않은 점, 크기가 크다는 점, 3D가 구현되기에 다소 느리다는 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증강현실에서는 빠지지 않는 디바이스다. 탱고 프로젝트와 관련 앱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가상현실의 기술, 그 현주소는?
역시 영화 속에서 연출한 케이스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993년에 제작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데몰리션 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스파르탄은 냉동 감옥에 갇혀 70년간 ‘냉동인간’이 되었고 2032년 깨어나 헉슬리(산드라 블록)와 만난다.
신체접촉이 금지된 미래 시대에서 이들의 성관계는 가상현실을 응용해 표현했다. 두 사람의 신체와 가상현실을 이용한 의식은 몸 하나 닿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일종의 ‘플라토닉’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과거에 살았던 스파르탄에게는 해괴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2032년이었지만, 가상현실의 세계는 더욱 가까이 와있다.
가상현실은 1989년 컴퓨터 공학자인 재론 래니어(Jaron Lanier)에 의해 지칭된 개념으로 잘 알려졌는데 사실 1938년 프랑스의 극작가 앙토넹 아르토(Antonin Artaud)가 가장 처음 언급한 표현이라고 한다. 당시 그가 그의 수필에서 ‘La Realite Virtelle’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니 비록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이미 이때부터 가상 세계에 대한 상상이 펼쳐졌던 모양이다.
이용자가 현실과 유사하고 비슷한 3차원 상황 속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실제로 다른 세계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가상현실’이다. 사실 두 단어가 합쳐진 ‘가상현실’이라는 키워드는 아이러니 그 자체다. 가상(假想)과 현실(現實), 가짜와 진짜가 합쳐진 단어니 말이다. 그런 가상현실은 오락, 의료, 영화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되어 실생활에 침투하고 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상상의 세계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소비자 가전박람회 CES(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는 가상현실 세계에 대한 삼성전자의 키노트(keynote)와 소개가 있었다. 가상현실을 경험하려면 헤드셋이 필요한데 삼성전자는 자사의 ‘기어 VR’에 특화된 콘텐츠를 ‘밀크 VR(MILK VR)’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였다.
삼성전자 뉴스룸을 그대로 인용하면 “미국 인기 드라마 〈워킹데드〉가 밀크 VR을 통해 감상할 수 있도록 영상을 제작하겠다고 언급했고, 향후에는 단순히 보는 것(to see)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어 경험할 수 있도록(to experience) 진화할 것”이라 했다. 삼성 측은 밀크 VR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으나 이후 ‘삼성 VR’로 타이틀을 변경했다. 밀크보다는 삼성이라는 이름이 더욱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2014년 말에는 글로벌 SNS 기업인 페이스북이 VR 전문기업 오큘러스(Oculus)를 20억 달러(한화로 약 2조 3,00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CEO인 마크 주커버그는 전 세계인들이 VR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변화를 꾀했다.
VR 헤드셋인 ‘오큘러스 고(Oculus GO)’를 공개했고 2018년 초에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가격은 199달러며 기존처럼 스마트폰 연결도 필요 없고 케이블이 없어도 된다고 하니 더욱 대중적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VR기기로 게임하면 재미있겠는데?”
“그럼 VR 게임방을 만들어볼까?”
증강현실은 가상현실과 더불어 정보통신기술의 핵심이고 4차 산업혁명의 화두이기도 하다. VR 게임방은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마니아층 사이에서 수도 없이 회자되었을 것이다. 사실 VR 업계는 비즈니스 모델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VR룸과 게임의 접목은 분명히 또 다른 화제가 될 것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VR을 이용한 탑승 기구의 사전 검사라든지, VR룸의 음식점 동시 입점이라든지, VR 게임물의 등급분류라든지, 사용자의 위험 요소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의 올바른 확보 등 이른바 ‘규제’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정부는 가상현실과 관련된 규제를 간소화하고 산업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분명히 VR 업계의 전망은 밝을 것이라고 본다. 게임에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교육이나 국방 등에서 충분히 응용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VR이 진화할수록 ‘가상’의 공간이 진짜 ‘현실’처럼 느껴질 것이다. 과거 16비트 컴퓨터에서 즐기던 아날로그 게임들이 사양이 좋아지고 시대가 변하면서 더욱 세밀하고 구체화된 디지털 게임으로 변모한 것을 생각해보면 VR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당장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많은 돈을 투자해 VR 게임을 개발해 출시하더라도 현재 시장에서 손익분기점(BEP)을 넘는다는 것은 ‘욕심’이다. 하드웨어 기술이나 헤드셋으로 연결되는 데이터의 전송 속도, 지금은 다소 무거운 기기들의 큰 변화와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11월 24일에는 국내 최초로 카카오와 제주 수목원테마파크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지역 상생 VR 콘텐츠 체험존이 문을 열기도 했다. 체험존 타이틀은 플레이박스(Play Box)로 11가지 다양한 어트랙션 체험이 가능하다. 플레이박스는 라스베가스, 바르셀로나, 베를린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관심을 보였던 곳으로 이미 해외 마켓에서 검증되었다고 한다. 플레이박스 컨소시엄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VR 콘텐츠 체험존 구축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AR과 VR, 체험하는 시대!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모두 온 국민이 편하고 가깝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사용자 입장에서 언제쯤 상용화되고 보급될지 손꼽아 기다리지만 조금은 인내가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신기술을 받아들이려면 제도적으로도 개선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나마 기술의 규제가 완화되고 산업 활성화로 이어져 결국엔 대중화가 될 것이지만 또 다른 개선도 필요하다. 정부나 학계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연구 및 개발하는 산업계 유수한 인력이 떠안은 과제가 하나씩 ‘잘’ 풀린다면 우린 곧 체험하는 시대를 영접할 것이다.
간혹 등산하면 이런 말들이 오간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요 앞이에요. 조금만 가면 돼요.”
(진실일 때도 있겠지만) 다 거짓말이다. 바로 앞이라고 하지만 심장은 쿵쿵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 분명히 정상이 눈앞에 보이지만 그곳에 닿기까지 왜 이리 힘든 것인지. 그러나 우린 모두 언젠가 정상에 다다른다. AR과 VR이 지배하는 세상. 대중화라고 하기엔 저 멀리 있지만 알고 보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 VR 기기를 통해 이어폰을 끼고 콘텐츠 하나를 본 적이 있다. 불과 5분 남짓 되는 영상물이었지만 어지러운 데다가 피로감마저 느껴졌다. 신기한 기술이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오래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콘텐츠가 가진 재미라는 요소의 부재, 그리고 딜레이 현상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느리다.
재미라는 측면은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지만 기기 내 탑재된 센서의 영상 처리 속도가 내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속도와 제대로 매칭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1:1’로 연동되지 않기 때문에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다. 더구나 안경을 쓰고 활동하는 필자가 다소 거추장스러운 VR 기기를 착용하는 것도 번거로운 편이다.
당장은 투박하고 불편하겠지만 이 역시 세련된 혁신이 찾아오지 않을까. 우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실생활 속에서 더욱 고도화된 AR과 VR의 차세대 혁명을 곧 맞이하게 될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원문: Pen 잡은 루이스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