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대학원 입시 전략 특강을 진행한지도 이제 7~8개월이 다 되어가는 듯하다. 이 특강을 이어 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심리학 대학원에 대한 수요가 정말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심리학 대학원 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심리학 대학원은 늘 경쟁률이 높다고, 막연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몸소 경험하고 나니 그 치열함과 간절함은 실로 대단했다. 사실 나는 심리학 대학원 입시 전문가로 활동하기 위해 사회로 나온 것은 아니다. 심리학 작가이자 강사로서, 심리학과 관련된 각종 유익하고 흥미로운 연구들을 널리 소개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게 오는 심리학 관련 문의 메일 중 십중팔구는 심리학 대학원 입시에 대한 것이었다. ‘심리학 대학원 어떻게 가야 하나요?’, ‘심리학 대학원 나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나요?’, ‘심리학 대학원 합격할 당시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심리학 대학원에 대한 설명회나 워크숍은 안 하시나요?’ 등등. 여전히, 이러한 메일들은 하루 동안 내 메일함에 쌓이는 메일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대학원 추천 좀 해주세요!
오프라인 강연장에서든, 메일을 통해서든, SNS 메시지를 통해서든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문의 내용이 바로 저것이다. 심리학 대학원에 가고 싶은데 어디가 좋은 곳, 유명한 곳인지 모르겠으니 추천을 좀 해 달라는 것이다.
그 마음 이해한다. 일반대학원, 특수/전문/교육대학원을 아우르자면 심리학 대학원의 수는 무척 많다. 그런데 대학원 홈페이지에 가보면 각 대학원 간 차이를 확인시켜줄 만한 정보들은 부족하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학교 간판이나, 언론이나 책 등에서 본 적이 있는 유명 심리학 교수님의 이름뿐. 인터넷에 ‘심리학 대학원’을 검색해보는 것도 잠깐이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 잘 모르겠으니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봐야겠다. 심리학 대학원 추천 좀 부탁드려요.’
참으로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나는 대학원 추천을 거의 해드리지 않는다. 대학원(Graduate school)이라는 곳은 단지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결정해도 되는, 그런 만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원 생활은 무척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난이도가 낮은가, 하면 절대 그렇지도 않다. 읽어야 할 논문들은 수두룩 빽빽하고 새로운 연구 주제 고민하느라 연일 머리가 아프다.
이 힘든 상황에서 대학원생을 버티게 하는 것은 바로, 대학원 입학 당시 가지고 들어왔던 열정이다(그동안 낸 등록금과 투자한 시간이 아까운 것도 좀 있다). 대학원에 대한 간절함과 절박함, 그리고 내 진로에 관한 아름다운 비전, 그리고 내가 꼭 시간을 들여 공부/연구해보고 싶었던 주제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입시 당시 가지고 들어온 생각들’이 꼿꼿했던 사람들이 험난한 대학원 과정에서 끈질기게 잘 버티며 실적도 잘 내고, 실력도 좋으며, 학위 논문도 무사히 잘 통과시키고, 취업도 좋은 곳으로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대학원 입시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심리학 대학원에 관심이 있는 당신,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가? 희망하는 세부 분야는 명확한가? 공부/연구하고 싶은 주제는 확실한가? 그것들이 아니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에 답을 세우기 위해 과연 얼마의 시간 동안 심사숙고를 거듭했는가? 관심 주제에 대한 논문은 얼마나 들춰보고 오셨는가?
고민이 잘 되어 있는 지원자일수록 ‘대학원 추천’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가서 땀 흘려 공부하고 연구할 그 대학원을 선택하는 데 있어 남에게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목표는 확실한데, 다만 그 대학원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세부 전략들을 몰라 어려움을 겪을 때에서야 입시 전문가를 찾는다.
그러나 위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학교 간판이나 교수님 이름과 같은, 겉으로 보이는 정보들에 잘 휘둘린다. 소위 ‘있어 보이는 대학원’을 추천해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대학원 목록’ 제시하고 이 가운데 몇 곳만 찍어달라는 요청이 그래서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껏 추천드려도 경험상 별 소용은 없다. 어디에서인가 들은 ‘카더라’ 몇 가지만으로도 쉽게 대학원에 대한 호불호를 바꾸실 테니.
확실히 정해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유명한 학교? 안 유명한 학교? 그런 것 따지지 않는다. 내가 꼭 공부/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나보다 월등한 스승님이 그곳에 계신다면 죽어도 그곳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대학원 추천? 이런 분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다. ‘됐고, 어떻게 하면 학업(연구)계획서 잘 쓸지에 대해서나 알려줘 봐요.’ 하실 뿐이다. 그런 분들께 조언을 드릴 때는 나 역시도 덩달아 비장해지곤 한다. 정말 제대로 알려드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솟구친다.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대학원을 ‘추천’받는다는 개념은 접어두길 바란다. 가고 싶은 대학원, 하고 싶은 연구, 모시고 싶은 스승님 찾는 것부터가 고스란히 내 경쟁력이 된다. 이건 남에게 해달라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결국,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내게 맞는 대학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의미다. 그에 반해 대학원 추천 문의를 받은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특히 본인의 관심 분야/주제에 대한 한 줄의 언급도 없이 그저 추천해달라고 메일을 주신다면 더더욱 할 말이 없다.
그저 먼저 대학원에 꼭 가야 하는지, 가실 거라면 무엇을 공부/연구할 것인지,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 등의 문제부터 충분히 고민하신 후, 그렇게 생겨난 니즈(needs)를 바탕으로 자신과 꼭 맞을 것 같은 대학원을 몇 군데 추려보라고 제안드릴 수 있을 따름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