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SS가 전직 조선업체 종사자 하암(가명)씨와 모처에서 만나 조선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키코 문제와 중국 업체의 진입으로 위기를 맞은 한국 조선소들, 지난 글 ‘그들은 왜 망했는가?’ 에 이어 그들이 어떻게 망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북한 경협부터 서해 진출까지, ‘안 되는 일’의 연속
레드: 엄청나게 아마추어 돋는 얘긴데요.
하암: 그럼 B 조선소로 넘어가죠. 여긴 원래 북한에서 배를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좋은 계획이죠. 정부도 경협에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은 임금이 쌉니다. 중국과는 달리 근면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언어의 장벽도 거의 없습니다. 북한 정부 쪽과 선이 닿아있는 해외동포를 섭외했습니다. 북한과 계약하기 직전에 그는 자기 연봉을 더 달라고 했는데, 회장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안 준다고 하자 떠났고, 이에 회사 대 회사의 계약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인을 보고 사업을 하는 북한이 이 계약 자체를 깼다고 합니다.
사실 이게 계약되어도 북한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안됐을 가능성이 많고, 되었다고 해도 장난이 아닌 일이 될 겁니다. 선박에 들어가는 주요 장비들을 북한으로 반출하는 것을 미국이 허가하지 않을 것이고, 조건부 허가를 한다고 해도 전략물자 신고를 개개 부품별로 다 해야되는데 도면보다 전략물자 신고서류가 더 많을 겁니다.
여기서 조선소의 꿈을 접으면 될 터인데, 조국을 조선 강국으로 만들어 산업 보국할 의지가 남아있던 탓인지 목포에 있던 거주구 제작공장을 인수합니다. 여기서 거주구는 영어로는 Deck House, 배에서 사람이 사는 구역을 말합니다.
참고로 이 부지는 거주구 제작처일 때 제가 가봤던 곳입니다. 그리고 방문했던 사람들 모두 이 장소는 거주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했죠. 목포는 서해죠. 서해는 조석 간만의 차가 큽니다. 썰물이 되니 안벽 옆 바다였던 곳이 다 뻘이 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배를 건조하던 중, 일반 의장재를 납품받아서 한곳에 모아놓았는데, 지반이 꺼지기 시작합니다. 의장품도 못 버티는 땅이 블록을 버틸 수 있을까요?
직원 문제부터 외부 요인까지
레드: 첩첩산중이네요. 아직 더 있나요?
하암: 그럼요. C사는 건설사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조선소가 떼돈을 번다는 풍문에 조선소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놈의 조선 구매를 보면 복장이 터집니다. 자꾸 핑계를 대면서 기자재 발주를 계약하자마자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장비 도면이 와야 설계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설계까지 쫓아와서 이야기를 하니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품의서를 받아드니 너무 황당합니다. 보일러를 산다고 품의서(계획서)를 들고 왔는데 몇억이랍니다. 내가 건설만 했다고 내 등을 쳐서 구매 직원들과 설계 직원들이 크게 한탕 하려고 작정을 했나 봅니다. 내가 건설을 해봐서 아는데, 귀뚜라미 보일러 아무리 비싼 것도 몇백이면 떡을 칩니다. 빌딩 하나에 넣어도 몇천이면 됩니다. 이놈들이 날 뭐로 보고. 다시는 구매품의서 올리지 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갑자기 구매 직원들이 회사를 떠납니다. 어차피 상관없습니다. 도둑놈들이 나간 것이니까요.
D 조선소도 있습니다. 여긴 신생조선소의 군계일학이었습니다. 어떤 조선소는 수주량은 많지만 수주할 때마다 다른 선종(배종류)이라서 매번 설계를 새로 해야 합니다. 그게 싫으면 일부 선종만 타겟으로 잡고 영업을 하면 되는데, 사실 이러면 별로 수주를 못 하죠. 그러나 D 조선소는 달랐습니다. 단 두 개의 선종으로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수십척을 수주했습니다. 같은 걸 계속 만든다는 것이 생산성과 원가절감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이 회사는 직원을 대량으로 뽑았습니다. 직원들은 모두 이전에 다니던 회사 연봉에 플러스 천 만원 안팎을 주고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많은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서 조선소 추가 건설 계획도 세웁니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리먼 사태가 일어납니다. 키코 사태도 맞습니다. 정신없이 선박을 수주하다 보니 선수금도 제대로 못받았습니다. 선주에게 요청을 하니, 선수금 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들도 이제 대출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수십 척 수주하던 게 10척도 안 되게 바뀌었습니다. 건조 중인 선박도 인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릅니다.
탈법, 위법, 불법… 살아 보자니 그리 되었더라
하암: E 조선소는 돈이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은행 대출과 외부 투자가 자금원이죠. 외부 투자는 받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주권이 넘어갈 수도 있으니 실질적으론 은행 대출이 유일한 자금원입니다. 그러나 진짜 실적을 갖고 대출을 내려니 대출 자격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요.
은행 출신의 임원이 방법을 제시합니다. 자신이 은행에 있을 때 이대로 하면 대출이 나오더라 하는 일종의 써머리(Summary)를 줍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다른 자료를 생산해내는 거예요. 근거도 다 만듭니다. 현실과는 다른 회계장부가 나옵니다. 그리고 원장부는 폐기합니다. 이후에는 아예 원래 장부를 만들지 않습니다.
F 조선소 사주는 결제를 하다 보니 돈이 아깝습니다. 블록을 다른 회사에 발주를 주는데, 이건 우리 회사의 특기거든요. 왜 남에게 돈을 주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블록회사를 차리려고 하니 직원들이 반대합니다. 이 사람들이 업체랑 짜고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어차피 내가 사주고 내 돈이라는 생각에 맘대로 회사를 하나 차립니다. 가격이 다소 비싼 이 드는데, 좀 있으면 돈을 벌 생각을 하니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조선소에서 갖고 있던 작은 땅을 내놨습니다. 좋은 땅을 내놓은 그 회사 사주가 한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이걸 인수하려고 하니 또 직원들이 반대를 합니다. 도대체 뭘 하려고만 하면 반대하는 직원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월급쟁이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인수를 해요. 다른 회사에 주던 물량을 계열사로 다 돌립니다. 적자가 납니다. 처음에는 회사가 정리가 안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년이 넘어도 흑자로 전환이 안 됩니다. 계열사에 주는 돈만 올려주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런데 이건 공정거래법에 의거 심각한 위법사항이 됩니다. 계열사에 돈을 더 주면 다른 회사에도 돈을 더 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말 잘듣는 임원을 시켜서 단가는 움직이지 않고 돈만 더 줍니다. 결국 은행에 걸립니다. 나중에 계열사를 정리하려고 하니, 처음에 산 값의 반도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 만들어! vs. 못 만들어!
G 조선소는 계획한 물량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렇다 보니 고정비 지출 비율이 과도하고, 흑자를 낼 수가 없습니다. 신년 사업계획이 나오고, 새로운 선표가 나옵니다. 참고로 조선소의 생산일정은 대일정이라고도 불리는 선표, 그 밑에 중일정, 그 밑에 소일정이 나옵니다.
선표는 첫 철판을 자르는 날, 처음으로 블록을 독에 앉히는 날, 배를 물에 띄우는 날, 인도일로 나뉘며 각각의 시점마다 선주가 돈을 줍니다. 선표는 생산 총 책임자(공장장, 생산사장, 생산본부장 등등으로 불리는 사람)의 책임하에 작성되며, 재무팀장, 기획실장 같은 주요 경영임원의 합의를 거쳐 대표이사가 결정합니다.
기획실장이 받아보니 이 선표대로면 내년 적자는 불 보듯 뻔합니다. 생산사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최대한 더 짓자고요. 생산사장이 좀 더 많이 짓는 선표를 작성해서 줍니다. 하지만 이대로 해도 적자가 납니다. 기획실장이 생산사장에게 다시 전화를 합니다. 정확히 요구하는 내년 건조 척수를 이야기합니다. 생산사장은 G사의 능력으로는 지금 선표가 한계이며, 솔직히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올해 예상 건조 척수 대비 10%나 상승시킨 수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획실장이 외부 전문가에게 물어봤더니 올해 대비 20%나 더 만들 수 있고, 이게 안되는 것은 생산사장이 무능력하거나 직원들이 단체로 태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획실장이 결심을 했습니다. 선표 만든 담당 직원에게 원래 선표 만든 파일을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들어 대표이사 결재를 받고 생산사장에게 들이밉니다. 생산사장은 너무 화가 나서 태업을 선포하고 일을 안 하다가 3개월 후 사표를 씁니다.
주인이 바뀌니 모든 게 바뀌었더라, 오너 리스크
H 조선소는 다른 회사와는 달리 신생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입니다. 업계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실이 튼튼한 회사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이 회사의 불행은 주인이 바뀌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진통을 겪으면서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직원들은 새로운 주인이 조선은 모르지만 그래도 중공업을 계속 했던 분이니 회사를 잘 이끌 수도 있다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서자마자 주수내역과 현재 영업하고 있는 내역을 확인하자고 합니다. 이미 예상했던 것이니 잘 준비된 자료를 보고합니다. 새로운 오너가 좋아합니다. 입이 찢어질까 봐 걱정될 정도로 좋아합니다.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러나 불행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납니다. 구매를 잘해서 이익을 많이 내자고 격려를 해줍니다. 그러나 이미 주요자재는 구매가 끝났습니다.
여기서 설명을 하자면, 조선구매는 원/부자재 구매, 기자재구매, 철의장 구매로 나뉩니다. 원/부자재의 대표적인 것들은 강재, 용접봉입니다. 기자재는 엔진, 크레인 같은 선박용 장비입니다. 철의장은 사다리, 핸드레일 같은 것들입니다. 이 중 강재와 용접봉은 조선소에서 가격을 결정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구매도 갑, 영업도 갑인 포스코가 있기 때문이죠. 철의장은 전체 가격에서 몇% 차지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가격 결정력이 가장 큰 것이 기자재인데, 기자재는 구매하는 장비에 맞게 설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선박을 계약하자마자 발주를 내죠. 그런데 이걸 샀다고 오너가 화를 냅니다. 이거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리고 블록 업체도 한번 거래한 업체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계속 계약을 합니다. 새로운 업체와 계약을 하면 서로 적응기를 겪는데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까지 걸립니다. 이때 발생하는 로스와 귀찮음이 장난이 아니죠. 그러니 계속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이걸 이해 못 하는 오너가 도둑놈이니 이러면서 욕을 해댑니다. 구매라인이 교체됩니다. 그리고 이미 계약한 것 중에 깰 수 있는 것은 계약을 깨기에 이릅니다. 이 계약을 깨면 설계가 지연이 되죠. 설계가 지연되면 설계 오작이 늘고, 오작이 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합니다.
H조선소는 다른 조선소와는 다르게 키코를 안 들었습니다. 계약당시보다 납품할 때 환율이 확 뛰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익이 상승할 요인이죠. 다른 조선소에서 부럽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돈이 없다고 난리입니다. 그 돈이 다 어디 갔을까요? 시간이 지나자 오너께서 TV에 나옵니다. 전방위 로비를 했다고 하네요.
I 조선소 직원들은 행복합니다. 타겟 선종이 수주가 많이 되었고, 호황으로 인해 선가도 많이 올랐습니다. 곧 연봉도 오르고, 잘하면 난생처음 성과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그런데 경영진이 하는 말은 다릅니다. 적자라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자재비와 인건비로 다 썼다고 합니다. 최근 자재비와 인건비가 엄청 상승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적자가 몇 %인지는 모릅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선가가 반 토막 났습니다. 열심히 원가절감을 했습니다. 그래도 적자라고 합니다.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경영진 중 한 명이 적자가 15%정도라고 합니다. 이상합니다. 선가가 반 토막 났고, 원가절감을 하면서 자재비는 30% 절감, 인건비는 15%를 절감했습니다. 그럼 원래 선가일 때는 왜 적자였을까요?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레드: 지인이 거제에 계시는데, 한의원이 그렇게 잘 된다면서요.
하암: 일이 고되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버티는 거죠. 그런데 해도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나빠지고 있습니다. 밖의 소식은, 가장 긍정적으로 봐야 내년에 좋아지고 최악에는 2024년이나 되야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사고 친 사람들은 다들 빠져나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은 정리해고를 하니 마니 그런 이야기가 들립니다. 정말 우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