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SS가 전직 조선업체 종사자 하암(가명)씨와 모처에서 만나 조선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현직이 아니라 자료를 구하기 힘든 만큼 정확한 숫자를 제시하시지 못한다는 점이 유감스럽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실, 알아도 못 써요.”하고 웃는 하암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조선소들이 망했다고?
PPSS 레드 팀(이하 레드): 저는 주식도 안 하고 배 살 돈도 없어서 몰랐는데(해맑), 조선소들이 망했나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조선소 취업하면 동네잔치 했는데요.
하암: (한숨을 쉬며)일단 흥하던 시절부터 설명을 해야겠군요. 그린피스의 캠페인이 성공한 덕에 2004년 선박 수명이 30년에서 20년으로 단축되면서 이로 인해 선박의 필요가 엄청나게 늘었죠. 당시 존재하던 조선소들이 단기적으로는 행복해할 만한 수주가 들어왔습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조선소 호황 주기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 호황이 덧붙여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제조/가공산업이 크게 발달한 나랍니다. 이로인해 중국으로 들어가야 하는 반제품이 많아지고, 중국에서 나와야 하는 제품이 늘었죠. 그냥 늘었다고 설명할 수 없죠.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매년 두 자리 %씩 꾸준히 는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많은 이들이 행복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레드: 그런데 수요가 늘어난다는 건 예상이고, 실제로 누군가가 배를 주문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하암: 그렇죠. 여기서 문제는 누가 그 많은 선박 발주를 낼 것인가였습니다. 아무리 선사들이 돈이 많더라도 그 많은 배를 발주낼 수는 없는 노릇이죠. 특히 회사 규모가 크면 클수록 신규투자는 보수적으로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때 은행이 등장합니다. 선박금융을 일으킨거죠. 배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아주 낮은 문턱으로 돈을 빌려줘서 발주를 낼 수 있게 했어요.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럼 배는 무슨 돈으로 짓는가?’라는 것이죠. 이것도 은행이 해결합니다. 조선금융이 바로 그것이죠.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배를 발주 내고 또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배를 짓는 행복한 나날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행복한 날은 리먼 사태라는 전세계적 금융위기로 끝이 납니다. 은행이 주머니를 죄기 시작한 것이죠. 이로 인해 새로 배를 발주하는 것만 멈추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짓고 있는 배도 중도금을 선주가 내지 못하면서 조선소가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조선소가 새로 수주를 받아도 은행에서 Refund Guarantee(이하 RG)를 해주지 않는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선수금 환급보증말입니다. 선주가 준 선급금에 대해서 은행이 보증을 서주는 것이죠.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선주는 선급금을 주지 않고, 계약은 성사되지 못합니다. 결국, 은행으로 흥한 조선업계가 조선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레드: 은행으로 흥했다가 은행 때문에 어려워진 게 아니고요?
하암: 은행 탓을 할 수는 없죠. 그 좋은 세월을 허공에 날려보낸 조선소들과 선사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뭐든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잊고 있었던 것이죠. 한국은 거기에 키코와 중국까지 가세해 일을 키웠어요. 키코는 신문에서 많이 나서 아시는 분은 아시겠죠?
요약 : 선박 수주 활성화되는데 선주는 배를 살 돈이 없고, 조선소는 지을 돈이 없음. 은행이 빌려줘서 일거에 해결됨. 그런데 미국에서 금융위기 터짐. 그래서 돈 잘 안 빌려줌. 우왕망함ㅋ
키코와 중국, 엎친 데 덮친 격
레드: 그런데 아저씨, 키코가 뭐에요? (해맑)
키코(KIKO):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 환율변동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파생금융상품의 일종이다. 환율구간 및 약정환율을 미리 정해놓고 환율이 그 구간 내에서 바뀔 경우 실제 환율 대신 약정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게 해 준다. 단, 환율이 하한선 밑으로 떨어질 경우 계약은 무효가 되며, 상한선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약정액의 1~2배를 실제환율로 매수하여 약정환율로 은행에 매도해야 한다.
최근 대법원은 이 상품을 판매한 은행에 무죄를 선고하였다.
하암: 키코는 저런 건데… 제가 다니던 회사는 위 상황에 따라 기본적인 손실에 건조지연에 따른 손실까지 뒤집어써야 했죠. 건조지연에 따른 손실을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2011년에 선박을 계약하면서 $1=1000원에 2013년 1월 3일 만기로 $100을 계약을 한다 쳐요. 제대로 되었다면 $1당 1000원에 바꾸면 되죠. 그런데 여러가지 이유로 1월 3일까지 선박이 인도가 안 됩니다. 그러면 키코에 일단 돈을 물어야 합니다. 1월 3일에 달러를 사야 된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1월 3일에 $1당 1200원이 되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실제로도 환율이 올랐었습니다.) 그러면 은행으로부터 12만 원을 들여 $100를 사서 다시 은행에 되팔아 10만 원을 받게 되죠. 2만원의 손실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작은 돈으로 예를 들었지만, 이것이 9천만 불짜리 계약이면 어떻게 될까요? 순간 180억이 날아갑니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뒤집어지죠. 그런 계약이 수십 개라면? 안 망하는 것이 신기한 일이 됩니다.
레드: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요-공급 관계가 있으면 어떻게든 회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하암: 조선 호황의 알파와 오메가인 중국이 조선소를 미친 듯이 지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선박금융과 조선금융은 국가에서 지원하고요. 정말 우후죽순으로 조선소가 들어섭니다. 다국적기업 R사 아시아영업팀장과 미팅했을 때, 고객사 정리를 위해 아시아 조선소 조사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한국은 조선소 숫자가 제법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뻔한데, 중국은 저랑 미팅할 당시(2011년) 1,000개 가까이 되었으며, 조사하면 할수록 계속 나와서 짜증이 났다고 하더군요. 계속 조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1,000개의 조선소가 전부 배를 제대로 지을 리는 없겠지만…. 일 년에 1척씩만 짓는다고 해도 1,000대의 배가 시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충격과 공포죠. 한국에서 짓던 상선은 물론 품질면에서 중국이 따라오려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싼값에 그럭저럭 쓸만한 배가 나온다는 점에서 신생 조선소에게는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A 조선소의 경우1 – 갑질이 더러워서 내가 직접 배 만든다
레드: 조선소들은 다 그런 비슷한 이유로 망한 건가요?
하암: 케바케인데요… 일단 A 조선소부터. 여기는 원래 삼성중공업의 선박구성품을 납품하는 회사였습니다. 처음에는 품질이 안 좋아서 현대미포조선에 거래중지가 되는 등 많은 고생을 했지만;;;; 세월이 지나서 훌륭한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이야기를 더 들으시려면 약간의 조선 상식이 필요한데요. 배를 만드는 것은 철판을 죽 이어붙이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부분 부분을 만들고, 그걸 합치고, 또 합치고, 또 합쳐서 만듭니다. 이런 부분을 블록이라고 하는데요. 이게 배 옆면이고요, 이건 메가블록이라고 하는데, 이걸 몇 개 붙이면 배가 돼요.
이 회사는 메가블록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거예요. “우리가 이 어려운 걸 만드는데 조선소는 그냥 이거 가져다가 이어붙여서 배를 만들고, 조선소라고 칭찬받고, 업체에는 갑질을 하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더니. 못 해먹겠네. 나도 배 만들란다.”
레드: 그렇네여. 우리도 배 만들어야겠어요.
하암: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닌 게, 조선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쉬운 블록은 직접 만들고 외주로 어려운 블록을 줍니다. 쉽다는 것은 평평하고 의장품(파이프, 장비, 사다리 같은 것들)이 별로 안붙는 것들이고, 어렵다는 것은 굴곡이 있거나 의장재가 많이 붙는 거죠. 쉬운 것은 자동화 라인을 꾸릴 수가 있습니다. 적은 인력으로 장비 투자를 하면 많이 만들 수 있죠. 어려운 것은 인력도 많이 들어가고 장비 같은 거 별로 필요가 없죠. 그러니 비싼 조선소 인력을 쓰지 않고 값싼 업체 인력을 사용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 회사는 배를 직접 수주합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앞에서 말한 여러 호황 조건으로 인해 수주를 하게 되죠. 그런데 이게 왠걸? 정작 시작해보니 조선소에서 그냥 갑질을 하던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영업도 해야죠, 선주에게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밥도 사먹 이고 선물도 해줘야죠. 생산계획도 짜야죠. 자재도 사야죠. 설계도 해야죠. 이제까지 그냥 나오던 것들을 스스로 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요약 : 원래 배 만드는 과정은 더럽게 복잡함. 하청업체가 힘든 일을 하다가, 조선업 호황에 돈이 될 것 같으니 직접 수주를 함. 하지만 더럽게 어려워서 망하기 시작ㅋㅋ
A 조선소의 경우 2 – 막상 해보니 배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
레드: 막상 시작하니까, 갑질하는 조선소가 앉아서 놀던 게 아니었다…
하암: 그렇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이 사실 조선소의 잘 짜여진 시스템하에서 나왔던 것들이었습니다. 자재 중에 강재는 돈을 준대도 안 판다고 합니다.(결국 구하긴 했지만.) 거기에 더불어 치명적인 설계 문제도 생겼어요.
이 회사는 삼성의 사외 협력사를 이용해봅니다. 발주를 할 때 대충 계산을 해 보니 삼성중공업보다 10% 이상 비싼 가격을 지급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놈의 협력사가 딱 하나의 생산품을 만들더니 남은 것들은 안 만들겠다고 배 째랍니다. 안 남는답니다. 아니, 우리보다 싼 값을 낸 쪽이랑 수년을 거래하면서 찍소리도 안 하더니 왜 우리에게? 돈을 더 달라는 이야기인지 알고 이야기를 해봅니다. 더 못 준다고 대답이 돌아옵니다. 지금 돈의 두 배를 줘도 할까 말까 하다고. 일이 심각하다는 게 느껴지죠.
레드: 아니… 돈을 더 준다는데도 왜 안 만들겠다는 거죠?
하암: 공장장을 만나봅니다. 공장장이 삼성과 비교를 해서 설명을 합니다. 삼성이 제공한 도면으로 만들면 최대 35일, 무리하면 23일 만에 제품 하나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A사의 제품은 최소 60일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차이가 뭐냐고 물어보니, 삼성의 도면대로 짜르고 굽히고 붙이면 ‘당연히’ 딱 맞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A사의 도면대로 하면 ‘놀랍게도’ 전혀 안 맞는다고 합니다.
설계에 물어보니 절단을 하고 철판을 구부리고 용접을 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철판이 달궈졌다 식혀졌다 하는 과정이 일어나는데, 이게 얼마나 늘어나거나 줄어드는지 그런 자료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크게 그려놓고 현장에서 대보고 알아서 잘라서 붙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레드: 무려 두 배나 차이가 나다니… 설계 능력에 차이야 있겠지만 황당한 수준이네요.
하암: 황당하다고요? 이건 현대(계열사 포함), 삼성, 대우를 제외한 모든 한국 조선소의 문제입니다. 사업경력과 기술투자가 없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인건비 따먹는 업체가 두 배의 돈을 내도 할까 말까 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죠. 결국 계약이 깨집니다. 그러면서 자기 회사가 삼성 협력사일 때보다 지금 생산력이 줄어든 근본적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당연히 철판도 그런 회사들보다 훨씬 많이 사게 되는 것이죠. 이래저래 손해입니다.
요약: 기술력, 설계력의 차이로 외주를 맡다가 조선소를 차린 곳들은 채산성을 맞추지 못하고 우르르쿵쾅망함ㅋ
A 조선소의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키코와 중국 문제, 더불어 직원 문제부터 비용 문제까지, 내외의 온갖 우환으로 위기를 겪은 한국 조선업계의 이야기가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