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나뭇가지, 캔 따개, 코르크 마개… 보통 사람 눈에는 처치 곤란한 쓰레기로 보이지만 귀인을 만나면 세상에 유일무이한 물건으로 부활합니다. 버려진 가구를 리폼하거나 폐목재를 활용한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업사이클링 업체 메리우드협동조합을 소개합니다.
업사이클링의 메카로 등장한 서울새활용플라자. 아침부터 목공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수업은 걸개 만들기. 재료는 나무토막과 코르크 마개, 캔 따개 등입니다. 사포로 문지르고 전동드라이버에 힘을 주다 보니 어느덧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 아닌 세상 하나뿐인 소품이 만들어졌습니다.
“개성이 중시되고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면서 나만의 것을 만들고 이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업사이클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폐목재를 활용한 인테리어가 인기입니다.”
- 김영애 메리우드협동조합 대표
‘단 하나뿐인 물건이라 더 소중해요
청평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엄정용 씨도 얼마 전 폐목재를 활용해 카페를 새로 단장했습니다. 폐목재를 활용한 아트월과 장식장으로 빈티지풍의 느낌을 살렸습니다.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 나도록 가게를 꾸미고 싶었습니다. 나무가 주는 따뜻한 이미지에다 재활용 문화를 덧대고 나니 의미가 더 깊어졌죠. 남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저만의 것이라 더 애착이 갑니다.”
- 엄종용 리아트 카페 대표
엄 씨는 지난해 우연히 청계광장에서 열린 사회적 경제 장터에 갔다가 메리우드와 인연을 맺고 업사이클 인테리어를 의뢰했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워요. 다른 분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폐목재를 활용한 인테리어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국비지원 수강생에서 협동조합까지
메리우드협동조합은 손으로 무엇이든 뚝딱 만드는 걸 좋아하는 30-50대 여성 6인이 만든 협동조합입니다. 폐자재를 줄이고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 인테리어를 비롯해 목공예품 판매, 그리고 목공 교육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미션입니다.
이들은 2014년 서대문 여성인력개발센터의 경력단절 여성 국비지원 프로그램인 ‘eco-DIY 인테리어 디자인 전문가 과정’에서 만났습니다. 생활 목공을 배우고 목공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입니다. 이들은 수료 직후 운 좋게도 서울시가 지원하는 마을학교 사업에 당선돼 서대문구에서 ‘목(木) 좋은 동네’라는 프로그램을 6개월간 진행하며 호흡을 맞췄습니다.
이들은 버려진 가구를 리폼하고 폐냉장고를 활용한 공유 서가를 공원에 만드는 등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사업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주관한 서울 여성 공예창업대전에서 동상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당선이 되자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이 열리는 듯했어요.”
마을학교 사업을 함께 했던 10명 중 유달리 찰떡궁합인 6명이 손을 잡고 2015년 ‘나무와 함께하는 즐거운 세상’ 이란 의미의 메리우드협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처음엔 창업을 고려했지만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일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손을 놓긴 더 싫었지요. 배운 것을 사장시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땐 협동조합이 뭔지도 잘 몰랐는데 마음만 맞으면 된다기에 덜컥 시작했습니다.”
식비·커피값 아껴 공방 마련
메리우드협동조합은 아주 작은 공간에서 출발했습니다.
“매일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것을 아껴서 공방을 만들기로 했어요. 10만 원씩만 모아도 6명이니까 60만 원은 되잖아요.”
그렇게 십시일반 모아 서대문구 홍은동에 20㎡짜리 공방을 마련했습니다. 소소한 일거리가 생기면서 공간이 부족해지자 2년여 만에 처음 크기의 4배인 82㎡ 공간으로 확장 이전했습니다. 메리우드가 성공사례로 입소문이 나면서 서대문구에서는 목공예 협동조합이 잇달아 생겨났습니다.
생활 목공에서 업사이클링 전문 기업으로의 변신
“이러다가 살아남지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왔어요. 차별성을 고민할 때 업사이클링 목공예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주부들이라 원래 버려지는 가구가 너무 아까웠고 이를 어떻게 쓸모 있게 쓸까 고민을 하다가 목공에 입문했거든요. 초심을 살려 버려지는 자원을 되살리는 업사이클링 목공예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서울새활용 플라자에 입주한 메리우드협동조합 공방에 가면 페파레트를 이용한 아트월, 액자, 코르크마개를 활용한 화분 등 다양한 제품이 눈에 띕니다. 올해 9월 문을 연 새활용플라자에는 현재 32개 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메리우드는 지원자 평가 점수에서 고득점을 얻어 제일 넓은 공간을 차지했습니다. 올해 4월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습니다.
마음을 열고 온기를 나누는 목공교육
메리우드의 주요 사업은 교육입니다. 조합원들이 목공 DIY 교육사 자격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강의에 나설 수 있지요. 올해는 3개월 동안 서대문구청소년지원센터,서대문청소년수련관과 연계해 학교 밖 청소년 20여 명을 대상으로 목공교육사 2급 자격증 취득과정을 운영했습니다.
“목공의 성격상 대부분 협업을 해야 합니다. 모서리를 잡아주고 망치질을 하거나 경첩을 달 때 서로 붙잡아줘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저희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친해집니다.”
수업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아리를 만들고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아리 결성 소식에 선생님들이 놀라시더라고요. 학교 밖 친구들은 노출을 꺼려 해 센터에서 마주쳐도 서로 아는 척하지 않는 경우가 많대요. 협업의 과정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많이 하고 소통을 하니 친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공방을 거쳐 간 교육생은 약 300여 명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는 재능을 기부로 풀어내거나 제2의 직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있어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영선 씨는 신촌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목공 예비 선생님으로 활약했습니다.
“작은 재능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어 기쁩니다. 나무를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요. 제 손길이 들어간 소품을 만들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재미도 있고요.”
지역 학교에 월 1회 이상 직업체험 장소 제공
메리우드는 또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체험의 장소로 공방을 개방합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직업체험을 원하지만 공방이란 것이 생계유지 수단이다 보니 시간을 내어주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방하는 곳이 거의 없어요. 저희는 여성이고 교육 쪽에 일을 하다 보니 엄마의 마음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메리우드는 또 두리홈이라는 구세군 미혼모 센터 입소 대상자들에게 원목 수납장 8개와 좌탁 8개를 만들어 기증했고 취약계층의 아동들을 위한 시설에 목공예품을 전달하는 등 지역과 나눔의 장을 계속 펼쳐가고 있습니다.
오기를 자극제로 어려움을 넘다
남들은 성공사례라고 추켜세우지만 김 대표를 포함해 메리우드 협동조합원들에게도 가슴 시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여성이 뭔가 한다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습니다. 심지어 공무원도 ‘집에 밥은 누가 하느냐, 애는 누가 보느냐’ 하는 분이 있어요. 나라도 구하지 못한 일자리를 우리 스스로 창출한 건데 격려는 못 할망정 어떻게 여성비하의 말을 하는가 싶었죠.”
김 대표는 그럴 때마다 너무 화가 나서 울기도 했지만 조합원들끼리 더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보란 듯이 잘해보겠다’는 오기가 생겼고 결국 메리우드가 성장하는 자극제가 됐다고 합니다.
‘지켜보자’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된 가족들
메리우드는 조합의 큰 행사 때마다 남편들을 초청해 도움을 청하고 조합원 가족 간에 우의를 다집니다.
“협동조합을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 남편은 녹록치 않은 세상에 여자들끼리 모여 얼마나 갈까 ‘지켜보자’는 반응이었어요.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집에 있는 돈 끌어다 쓰지 않고 소소하게 벌면서 가정경제에 보탬도 되다 보니 든든한 지원군으로 바뀌었어요. 저희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걸 느낍니다.”
그는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사회에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것이 평생직업으로서의 매력이라고 합니다.
“주춤거리지 말고 너무 재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사실 저희는 마음 맞는 것 하나만 보고 시작했어요. 실패를 두려워 말고 멈추지 않고 계속 가다 보면 의외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잖아요.”
원문: 이로운넷 / 필자: 백선기 / 사진: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