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첫 취업을 했다. 이게 취업이 맞는지 모르겠다. 당시 나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나에게 큰 해를 가할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아주 크게 위축되었다. 면접 당시 느꼈던 회사의 분위기는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상한 걸 알았지만 그거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회사는 내 첫 출근 날부터 내가 얼마를 받을지 제시하지 않았고 나는 그냥 무작정 일을 했다. 물론 박봉일 건 예상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월급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얼마 받는지 알고 싶다고 했더니 팀장은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이후 사장은 팀장을 부른 뒤 나를 불렀다.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
“이건 나의 실책이다. 미안하다. 미리 이야기했었어야 했다. 팀장과 잘 이야기가 되지 않은 것 같다. 그 부분은 팀장에게 따로 지적했다. 하지만 너는 사회 초년생이고 수습 기간이니 월 100만 원을 주겠다. 3개월이 지나면 그때 다시 연봉협상을 하자.”
물론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당시엔 월급보다도 내 멘탈이 더 급했다.
회사는 3개월 뒤에 폐업했다. 많이 허탈했다. 겨우 끈을 잡고 있었는데 끈이 잘라진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개처럼 일했었다. 아침에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 출근했고 퇴근은 아홉 시 이전에 해본 적이 없었다. 퇴근 후에는 업무 외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술자리에 자주 불려 다녔고 영업 아닌 영업자리에 끌려나갔다. 회사는 ‘특수한 상황’이라며 주말 노동을 당연시했다. 한 달에 하루 정도 쉬어본 것 같았다.
내가 개처럼 일했던 덕택인지 사장은 폐업을 선언한 뒤에도 나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오만 정이 떨어진 상태였다. 나는 ‘연봉 3천을 주지 않으면 일할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줄 수 없다고 했다. 자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매주 내 월급보다 많이 나가는 ‘유흥업소 접대비’를 알고 있었다. 접대 상대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지만 나갈 때마다 내 월급 이상의 돈이 하루에 사라진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절반은 ‘홧김’으로 이 사장을 노동청에 고발했다.
내가 고발한 항목은 최저임금 미준수 및 계약서 미작성이었다. 계산을 얼추 해보았다. 9시부터 10시까지만 일한 걸로 했다. 하루에 열두 시간 근무에 그중 네 시간은 초과근무였다. 당시 최저임금이었던 5,210원에 8을 곱한 뒤 5,210원에 50%를 할증한 금액에 4를 곱해서 나온 하루 일당은 약 7만 3천 원. 이건 주중 분이었고 주말 분은 저기서 나온 금액에 또 50%를 할증해야 했다. 그래서 대략 계산했던 금액은 내 기준으로 230만 원 정도였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물론 나는 그때 주휴수당 같은 게 있는지 잘 몰랐다. 한때 서울 세관 앞에서 밤을 지새며 알바노조와 함께 최저임금 1만 원 쟁취투쟁을 같이했던 입장인데도 말이다.
석 달 분의 보상금액으로 300만 원을 청구했다. 월 100만 원씩이다. 근로감독관은 내가 초과근무한 부분을 내가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잠깐 걱정이 되었지만 이 부분은 우습게 해결되었다. 화가 난 사장은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면서 역정을 내다가 내가 그만큼 초과근무를 했다는 사실을 다 털어놨다. 근로감독관은 다시 한번 ‘이 사람이 그만큼 일한 게 맞습니까?’라고 물었고 사장은 ‘아니 맞긴 맞는데, 다 지가 열심히 한다고…’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혼자 가지 않았다. 허탈해하는 직원 몇을 선동했고 그 중 한 명은 나와 같이 신고했다. 나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내가 오기 몇달 전 그분은 임금 체불까지 당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분은 예전에 ‘수습’이 지났지만 급여는 나와 같았다. 내가 오기 전에는 나보다 더 적게 받았다고 했다. 나는 내 미지급 임금을 300만 원으로 책정했지만, 그 분에겐 체불임금 분까지 포함해 800만 원 정도를 계산하라고 말해줬다.
근로감독관은 그럼에도 초과근무시간이 정확히 계산되어야 정확한 금액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습 기간에는 최저임금의 90%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내가 청구한 금액을 받기는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한 거다. 그리고는 합의를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사장에게 의향이 있냐고 물었고 사장은 그렇다고 했다. 여기서 사장은 또 한 번 웃기는 짓을 했다. ‘남성’이며 ‘지랄하고 있는’ 나에게는 100만 원을 더 준다고 했고(월당 100이 아닌 총 100이다) 같이 와서 조용히 있던 그 여성 분에겐 50을 더 준다고 했다. 나는 어차피 다 받아내긴 힘들고 적당히 타협을 보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럴 순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잠깐 자리를 비워달라고 했다.
“XX씨 어떻게 할 거에요? 저는 XX씨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자라다 생각이 들면 더 싸워야 할 것 같아요.”
XX씨는 “저는 돈을 받을 생각도 못 했고, 조금이라도 받으면 감사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집 반대편, 서울 서쪽 끝에 있는 노동청까지 출석하며 그 인간 얼굴보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사장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저는 150, XX씨는 300 주세요. 체불임금도 있어요.”
결과는 둘 다 150씩 받고 끝냈다. 그 돈을 받고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사실 합리적으로 회사를 운영했다면 노동청에 신고도 하지 않고 끝냈을 거다. 나는 처음부터 확실히 요구하지 못했던 내 잘못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회사에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여기서 한 번 더 넘어지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우습긴 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제법 똑똑한 체를 하고 다니는 나였다. 사법시험을 준비한 시간도 있어서 제반 지식도 평균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그 모양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나중에 노동청에 신고할 때도 크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물론 나름의 준비를 한다고 했던 게 그 모양이다. 그때의 경험에 상상력을 덧붙여 만든 만화가 <비정규직 노동자 루돌프의 최후> 다.
요새 최저임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떠오른다. 나도 이야기를 몇 개 덧댔다. 그런데 그거 말고, 어떤 사람에겐 법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을 함부로 요구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다. 그게 무지해서든, 무력해서든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나 그런 상황은 점점 더 늘어날 거다.
지금 나오는 논의들,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법 밖에서 웅크려 앉아, 그게 ‘사회의 냉혹한 현실’이라고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원문: 백스프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