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물가가 싸다지만, 사실 살다 보면 그렇게 싼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호찌민에 거주하시는 분과 주고받은 적이 있다. 다낭에서 3달 살기가 끝날 때쯤, 가계부를 들여다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싸다는 이유로 더 방탕(?)해져서 줄줄 쓰다 보면 뭐 이렇게 된다.
다낭 한 달 생활비
- 숙소 33만 원 (한 달 66만 원 / 나누기 2)
- 식비, 교통비, 통신비 몽땅 ATM에서 뽑아 쓴 것 60여만 원
- 코워킹 스페이스 약 6만 원
- 요가 한 달 수업 약 4만 원
= 총 약 90만 원
어째서지? 제주에서는 70만원 대, 치앙마이에서는 30만원 대로 살았는데 말이다. 이상하다? 하면서 계속 들여다보다가 답을 찾았다. 과정과 상황이 치앙마이 100만원 대였던 시절과 거의 정확하게 동일하다.
생활비는 결국 렌트비에서 결정된다
사실 삶의 질도 숙소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어있다. 베트남 다낭의 생활비가 제주도, 치앙마이를 뛰어넘은 것은 비싼 숙소를 얻은 이유가 매우 크다. 그리고 치앙마이에 비하여 정보가 적은 베트남에서 단기 거주를 선택하였기에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물론 살다 보니, 저렴한 옵션들이 당연히 가능하다는 것을 추후에 알게 되었음.
자. 어쩌다 다낭 생활비가 90만 원이 되었는지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렌트 30만 원대
→ 장기거주, 여행이 아닌 ‘3개월 기준’ 노마드의 경우, 숙소 가격은 비싸기 마련이다. 원래 세계 어디나 ‘집 구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인인 나도 제주 집을 찾기 어려웠는데 외국 사람이 찾으려고 하면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타지에서 언어가 안 통할수록,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국가일수록 어렵다.
베트남은 참 영어가 잘 안 통한다. 호찌민이나 하노이를 떠나는 순간 바로 그림으로 의사소통해야 하는 레벨로 떨어진다. 그나마 최소 6개월, 1년 이상 장기거주를 할 경우, 계약 기간이 길어지니까 찾을 수 있는 집 옵션도 많아질 텐데. 그러나 본인처럼 3개월~1개월 단위로 뛰어다니면 계약 기간이 짧고 그래서 집도 당연히 비싸지고, 찾을 수 있는 종류도 그다지 없다. 요약하면 이렇다.
- 원래 ‘살만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집 찾기는 어렵다.
- ‘외국인’이 집 찾으려면 더 어렵다. (특히 영어 안 통하는 국가의 경우)
- 외국인이 집을 ‘1~3개월만’ 거주하려고 찾으려면 드럽게 어렵다.
→ 결국 그냥저냥 한 집을 비싸게 계약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낭의 아파트를 무려! 한 달에 60여만원이나 주고 계약하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낭에서 집 구하기: 망한 실패의 기록」을 읽으시면 됩니다 ) 집이 좋으면 그래도 만족하겠는데 아침마다 공사판 소리를 들으면서 깬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2. 생활비 60만 원대
→ 집에서 밥해먹기 어려우면 삼시세끼 다 사 먹게 되어있다. 2015년, 치앙마이에 처음 한 달 거주했을 때 생활비가 거의 100만 원 가까이 나왔는데 그 이유는 바로 ‘집에 부엌이 없어서’였다. 하루 한 끼가 워낙 저렴 (1-2천 원대) 하다 보니까 매일 매끼를 사 먹는데 거리낌이 없어지게 되는데, 그것도 쌓이다 보면 교통비까지 합쳐지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이 되게 된다.
다낭 사는 집에 큰 불만을 갖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공사판 사운드도 있지만, 바로 집에서 해 먹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었다! 부엌이 있지만 너무 간소하고, 계란 하나 사고 싶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아앍) 그러니 자연스레 매 끼를 사 먹게 되었고, 자연스레 택시를 마구잡이로 타게 되는 것. 쩝.
이번을 계기로 큰 다짐을 했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확인 전에는 절대로 집 계약을 하지 않으리라.
살만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집, 체크리스트
- 인터넷 속도가 빠른가요?
- 치안, 저녁에 집에 걸어가도 되나요?
- 청결도! 바퀴벌레 체크하고, 쓰레기 처리 어떻게 하는지?
- 부엌/집에서 밥 해먹을 수 있나요?
- 주변 소음, 공사판 옆에 집은 구하지 말자.
- 빨래는 어디서 하고? 건조는 어떻게?
- 햇살! 집에 해가 들어오면 좋겠군요.
- 주변 레스토랑, 카페, 동네 분위기?
- 교통수단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면 좋겠네요.
쓰다 보니, 이런 집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런 집이라면 기꺼이 돈을 내겠어요.
3. 생활비 60만 원대
→ 집에서 일하기 어려우면, 카페를 전전하게 되어있다. 요즘은 집에서 자주 일하기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초반 공사판 사운드가 너무너무 심각하여 카페를 전전하거나 코워킹 스페이스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스피드만 체크했던 것이 실수!
아침에 울려오는 드릴 소리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어서 인근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한 달 멤버십을 등록하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는 했다. 물론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 일과 삶이 분리가 안되고,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무너져서 불편하기에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멀쩡한 집을 두고, 매번 시끄러워서 도망치듯 집을 떠나는 것은 정말로 노노였다. 쓰다 보니 자꾸 울컥하게 되는군.
그래서, 치앙마이 멋진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립니다. 후후. 아니면 정말이지 정착할 때가 되어서 이러는지도. 허허.
원문: Lynn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