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필자의 「시니어 개발자 해외 취업기」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링크를 통해서 첫 번째 글과 목차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세 곳의 스타트업을 다녔다. 4년 전 개발자로 경력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내 목표는 예전부터 항상 ‘원하는 서비스가 있을 때 처음부터 만들 수 있는’ 개발자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주 초기 단계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창업동아리 활동을 했던 나에게 스타트업은 젊음이고 도전이고 패기, 그 자체였다.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정해진 업무 범위가 존재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는 이런 불확실성과 체계 없음이 불편하게 다가오겠지만, 나에게는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 개발에 관련된 거라면 시스템 관리, 웹, 데이터베이스, 모바일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빨아들였다. 심지어 나는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개발 분야 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서비스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을 하기도 하고, 직접 페이스북 등 광고 채널에 광고를 집행하며 다양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한국 스타트업의 실상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한국에서 했던 스타트업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끔찍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스타트업의 대표는 굉장히 독단적인 경우가 많았다. ‘스타트업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생명 아닌가요?’라며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서 근무하기 위해 스타트업 근무를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일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다니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자유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국내에서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한 번도 반바지나 슬리퍼를 신고 회사에 오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한 적이 없고, 출퇴근 시간도 근무 시간만 채우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말하는 대표의 독단성이란 기업의 방향성이나 세부 실행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어떻게 대표 외에 조직 구성원의 의견이 묵살되는 가에 대한 것이다.
물론 속도가 중요한 스타트업의 특성상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구성원과 논의를 거친 후 내려진 결정인지 혹은 대표가 원하는 대로만 이끌고 가는지는 차이가 크다. 물론 대다수에 한국인이 토론을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보니, 대표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특히 이런 기업들이 조금만 투자를 받고 규모가 커지면, 금방 한국 대기업 놀이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서, 각 팀마다 매니저를 늘리고 보고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지간한 스타트업에서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런 투입에 비해 명확한 보상을 제공해주는 것은 정말 찾기가 힘들다.
“저희 회사는 돈 욕심 있는 사람 없어요.”
“지금 단계에서는 스톡옵션 같은 걸 발행해도 큰 의미가 없어서요.”
이 두 문장은 실제로 국내에서 잘나가는 스타트업 두 곳의 대표님이 실제로 말했던 말들이다.
스타트업은 뜻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회사와 서비스를 단기간에 키우겠다고 모인 곳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돈 욕심’이 없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비영리 단체라는 말인가?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회사나 대표가 돈 욕심이 많을 가능성이 많다. ‘나는 돈 욕심이 많으니 너한테는 못 나눠주겠다. 그러니 욕심내지 마라.’ 정도의 문장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그리고 회사에서 가뜩이나 연봉으로 제대로 보상도 못 해주면서 스톡옵션조차 주지 않는 건 정말 건강한 회사라고 보기 힘들다. 물론 스톡옵션은 구성원이 회사에 기여하는 만큼 제시를 받는 것이 맞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자와 비 기술자에 대한 스톡옵션 차이가 심하다고 한다.) 다른 글에서 계약서 작성과 스톡옵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하겠지만, 사실상 일반 기업 수준의 연봉을 맞춰주기 힘든 스타트업에서 구성원을 동기 부여 하는 방법은 스톡옵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스톡옵션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네가 고생은 많이 할 텐데, 잘되면 그 공은 내가 다 가져갈게.’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안정적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이직도 잦은 편이고, 제대로 된 성과 없이 이 스타트업, 저 스타트업 떠돌다 보면 특히 비 기술직인 경우에는 경력을 인정받거나 연봉을 올리기도 정말 쉽지 않게 된다.
싱가폴에서, 네 번째 스타트업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StashAway라는 회사다. 이제 싱가폴에서 설립한 지 겨우 1년 남짓 되었다. 기존에 증권사들에서 펀드 매니저들이 하던 업무를 알고리즘 기반의 투자 자동화를 하는 로보 어드바이저(Robo Advisor)라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현재 싱가폴에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회사가 1년도 채 안 됐는데 수십억 대 투자를 받았고, 내년에 Series A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EO는 매킨지 출신으로 동남아에서 유명한 자롤라(Zalora)라는 이커머스 대표를 역임했던 이탈리아인이고, CTO도 여러 스타트업에서 CTO 경험이 있는 독일인이다. 그리고 동료 개발자들은 골드만 삭스 출신 등 정말 각자 최고의 경력을 달리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나가고 있는 서비스다. 무려 개발팀이 꾸려지고 3개월 만에 첫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고, 3~4개월 전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출시해서 현재 폭발적으로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는 상태다.
각자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회사다 보니 “스타트업이니 연봉을 후려치자.” 같은 헛소리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똑똑한 인재를 모으니, 회사는 점점 더 함께하고 싶은 곳이 된다.
그리고 계약서를 사인하면서 스톡옵션도 제시받았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스톡옵션에는 vesting 등 다양한 조건이 걸려있기 때문에 스톡옵션을 받는다고 해서 바로 지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제도가 회사 입장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구성원에게 지분을 나눠주지 않는 방어 장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스톡옵션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이 회사가 지금 가치 대비 이 정도 성장했을 때,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인지 정확히 계산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관리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라고 떠드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의 성공을 함께 나누겠다는 그 신호가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것 같다.
마치며
한국에서부터 이번 싱가폴 스타트업까지 사실 매번 스타트업에서 제시하는 조건과 회사 그 자체의 상태도 더 나아지고 있다. 이건 국내외 할 것 없이 개발자로서의 내 실력이 늘면서 내가 갈 수 있는 회사의 실력도 는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결국 회사도 사람도 끼리끼리 모이게 되는 건가 보다.
그럼에도 국내 스타트업 문화는 정말 앞으로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스타트업은 대부분이 대학교 동아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대학생 4~5명이서 뚜렷한 각자의 전문 분야 없이 스타트업을 차렸는데 대표부터 이사까지 한 자리씩 다 나눠 가져 가거나, 자기 일에는 전문성 없는 대표가 구성원들을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든다든지 하는 경우는 정말 흔하다. 특히 “우리는 스타트업이니 적은 연봉도 감수하라”면서, 성공했을 때 최소한의 보상인 스톡옵션까지 약속하지 않는 스타트업은 과감히 돌아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원문: 마르코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