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이 90%에 육박하는 동네들도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최근 50~60%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의 차이
투표율이 올라가면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정당이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 어디 없을까요? “투표 하라고~” 하라고 사람들을 귀찮게 만드는 고전적인 방법도 있겠지만 이보다 더 간편하면서 효과적인 듯한 방법이 있어 소개합니다 🙂
이 방법의 비밀은 ‘시점(perspective)’에 있습니다. 게임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 같은데 우리가 세상에 대해 머릿속에 이미지화 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1인칭시점(first-person perspective)이고 다른 하나는 3인칭시점(third-person perspective)입니다.
1인칭 시점은 아래 그림처럼 내 눈 앞에서 바로 사건이 일어나듯이 생생하게 연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게 우리가 세상을 바라 볼 때 실제로 체험하게 되는 ‘기본’, 자연스러운 시점입니다. 내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내 눈 앞에 펼쳐진 것들만 보이게 되겠지요.
반면 3인칭 시점은 제 3자의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입니다. 멀리서 자신의 모습을 전부 담고 있는 카메라가 있는 것처럼 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인데요, 아바타를 자신의 분신으로 삼고 게임을 하는 경우에서와 같이 이 경우에는 내 얼굴표정, 옷차림 등이 구체적으로 보이겠지요?
시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
잠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어제 일어난 일도 괜찮고 꿈에서 본 장면들도 괜찮습니다. 머리 속으로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세요. 만약 눈 앞에서 일어난 상황들뿐 아니라 자신의 얼굴과 동작들이 보인다면 여러분은 3인칭으로 연상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사람들마다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시점에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요. 예를 들어 3인칭 시점의 경우 남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한다고 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할 경우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지?? 괜찮게 보이고 있나??”라는 게 큰 이슈입니다. 그래서 타인들의 눈(제 3자의 눈)을 빌려 자신을 바라보려고 하는 게 습관화 되어, 평소에 그리고 과거를 회상할 때에도 1인칭보다 3인칭으로, 마치 모니터링 하듯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시점이 바뀌는 ‘원인’에 대한 연구들이 많았는데요 ‘이 시점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 연구자들이 있었습니다 (Libby et al., 2007). 어떤 귀찮은 일을 해야 할 때, 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1인칭 또는 3인칭 시점으로 상상하게 하면 실제로 얼마나 하게 되는가에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죠.
연구자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는 사람들이 ‘귀인(attribution)’ 즉 어떤 결과의 원인을 무엇의 탓으로 돌릴지 결정할 때 그 사건과 관련되어 ‘눈에 띄는 무언가(focal object)’를 탓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실제로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도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오게 되면 ‘오잉! 까마귀 녀석이 배를 떨어뜨렸구나!!’ 라고 생각하기 매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의’는 제한된 정보를 선택하기 때문에 결국 제한된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게 되는 데 그 중 그나마 가장 ‘그 사건과 관련되어 눈에 띄는 무언가에’ 이 일은 니 탓이다!! 라고 하게 되어있다는 것이지요
즉, 같은 행동이라도 1인칭보다 3인칭으로 그 행동을 하는 자신을 상상할 때 그 장면 속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 눈에 띄는 주체로 뚜렷이 그려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아 이 행동이 나의 의지에 의해서 된, 나와 관련된 행동이구나’라고 인지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3인칭으로 생각해서 투표율 높이기!
불륜 장면을 덮치거나 할 때 그 행동을 하는 당사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내미는 것만큼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3인칭 시점이 바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어떤 행동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는 시점이니까요.
바로 3인칭 시점의 이런 효과를 이용해 사람들을 더 투표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에게 투표하는 자신의 모습을 3인칭으로 상상하게 하면 1인칭으로 상상했을 때보다 더 ㄱ) ‘투표 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고 결국 ㄴ) 실제로 투표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일 전, 온라인 설문을 통해 한 조건의 사람들은 1인칭으로 자신이 투표하는 모습을 상세히 상상하게 하고 다른 조건의 사람들은 3인칭으로 자신의 투표하는 모습을 자세히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투표에 대한 태도(실제로 얼마나 투표 할 것 같은지, 투표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투표 안 하면 얼마나 후회할지 등)에 대해서도 응답하게 했습니다.
2004년 미국 대선이 끝난 후 ‘얼마 전 대통령 선거에 투표 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거짓 응답을 줄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등록되지 않거나 아파서 투표를 못했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투표 하셨나요?”라며 소극적으로 물었다고 하는군요. ㅎ
그 결과 1인칭(72%)보다 3인칭(90%)으로 자신이 투표하는 모습을 상상한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 참여율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투표하는 자신의 모습을 3인칭으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 투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긍정적이게 만드는 효과(자신의 의지와 투표행위를 가깝게 연결짓는 현상)가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단순히 3인칭으로 투표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을 뿐인데, 이가 투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고 투표율 또한 18%나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나요?ㅎ 투표율을 높이는데 사람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투표하라고 설득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주변에 투표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투표하는 모습을 3인칭으로 떠올려 보도록 잘 어떻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