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가 다른 권력구조와 비교할 때 거의 유일하게 갖는 장점은 보다 직접적인 책임정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장점이 발휘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은 <대통령의 책임>이다. 바꿔 말해 대통령이 국정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제는 사실상 왕정처럼 작동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의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과 무한 면책권을 동시에 가진 자, 즉 ‘왕’이다.
도마뱀 같은 정권, 대통령은 어디있나?
진 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25일 사우디에서 귀국하는 대로 사의를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에 따르면 진 장관이 사퇴를 결심한 이유는 자신이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기초연금 공약 수립에 중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공약설계자로서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해당부처 장관이 대통령의 공약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다. 한가지 의문이 든다.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신상필벌이 분명한 정부였나? 아니다. 같은 기준을 모든 부처에 적용한다면 한국정부는 당장에 모든 장관을 잃게 될 거다.
이번 문책성 사임의 성격이 정확히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것이 애초에 공약을 잘못 만든 것에 대한 문책인지, 공약을 실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문책인지 말이다. 전자라면 장관 사퇴와는 별개로 납득할만한 해명과 대통령의 정중한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후임인선을 서두르고 보다 강력한 공약 실천의지를 밝히면 될 것이다.
불행히도 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는 26일 기초연금 도입을 위한 정부의 최종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알려진 정부 최종안은 65세 이상 노인의 70%~80%만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경제형편을 고려해 최고 20만원 한도에서 차등 지급한다는 방안으로, 65세 이상 인구 모두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던 대선 공약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최종안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은 취임 8개월만에 완전히 폐기된 셈이다. 결국 진 장관의 사퇴는 애초에 ‘공약을 잘 못 만든 것’에 대한 문책이다. 그렇다면 장관 사퇴와 별개로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공약을 내걸었던 대통령의 사과다. 과연 이번에는 대통령이 사과를 할까?
박근혜의 계속되는 말 바꾸기와 꼬리자르기
작년 대선기간 후보 3인은 저마다의 장미빛 복지공약을 들고 나왔다. 재원마련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달랐다. 이정희 후보는 증세의 당위를 주장했고, 문재인 후보는 증세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TV토론에 나와 “증세는 필요없다”고 단언했다. 박근혜 후보의 지하경제 양성화, 탈세방지 같은 재원마련 대책들은 이미 1년 전부터 각 후보와 경제학자들에게 난타 당했던 것들이다.
박근혜 후보 복지공약의 핵심이었던 기초연금 공약은 인수위시절부터 말바꾸기 논란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은 1월 당선자 시절 “(기초연금 20만원은) 다 주는 것이 아니라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기초부분에다가 20만원이 안 되는 부분만큼 채워주는 방식”이라 말한 바 있다. 물론 당시 말바꾸기의 원인도 재원부족이었다.
진 영 장관이 임명된 것은 3월 11일이다. 이상하다.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기초연금 공약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공약의 설계자를 주무부처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갑자기 ‘공약에 문제가 있었다’며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증세없는 복지’가 공수표였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대통령이 이제와서 공약을 잘 못 만들었다며 장관을 잘라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작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극우 폴리널리스트 윤창중 씨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새누리당까지 온 나라가 그의 임명을 반대했지만 대통령은 무슨 계시라도 받았는지 윤창중의 임명을 강행했다. 얼마 뒤 대통령의 방미일정 중 그 유명한 ‘엉덩이사건’이 터졌고, 그는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다. 사건이 벌어진 뒤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굉장히 실망스럽고 ‘그런 인물이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윤창중이 엉덩이를 만진 것에 대한 책임은 그를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이남기 홍보수석이 져야 했다. 윤창중 사태 당시에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대통령은 끝까지 뒷짐을 졌고, 심지어 “이것을 계기로 청와대는 물론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완벽하게 제3자로 빙의했다.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했던 대통령은 기이하게도 물러나는 이남기 홍보수석에게 사과를 ‘받았다’.
이번 진 영 장관의 사퇴방식은 그때의 판박이다. 대통령의 과오로 인해 엉뚱한 아랫사람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상황. ‘도의적 책임’이란 본디 웃사람의 몫이다. 아랫사람이 웃사람의 책임을 떠안는 것은 ‘도의적 책임’이 아닌 전가(轉嫁)라 한다. 민망스럽다. 저런 지도자에게 어떤 관료가 진심으로 충성할 지 의문이다.
책임을 져야 하는 건 공약을 ‘만든’ 장관이 아닌 ‘채택한’ 대통령
금과옥조와도 같은 대선공약이 휴지통에 던져졌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실패한 공약에 대한 책임은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닌 ‘누가 채택했는가’에서 찾아야 한다. 공약의 판권은 ‘제작자’가 아닌 ‘판매자’에게 있다. 공약이 지켜져야 할 이유는 대통령이 그것을 공식적으로 채택-공포하고 그것을 지키겠다 국민 앞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누가 만들었는가’ 따위의 문제는 공약의 당위와는 무관한 주변적인 문제일 뿐이다.
공약폐기의 책임을 그것으로 표를 얻어 당선된 사람이 아닌, 공약을 만든 사람이 진다? 정부는 이 요상한 책임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중은 공약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국민은 공약이 지켜지는가에 대해서만 알면 된다. 이남기 수석을 잘라냈다고 해서 윤창중을 임명했던 대통령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공약을 만든 장관을 잘라낸다고 해서 공약을 폐기한 대통령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식의 꼬리자르기는 효과도 없을 뿐더러 대통령의 봉건적 이미지만 각인시킬 뿐이다.
국정원이 자신을 돕기 위해 불법공작을 벌여도, 자신이 고집스럽게 임명한 대변인이 국제적 사고를 쳐도, 대선공약이 휴지통에 들어가도 우리의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다. 대통령 곁에 충언을 할 줄 아는 자가 있다면 하루빨리 대통령의 목에서 깁스를 풀어줘야 한다.
왕은 백성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그렇지가 않다. 대통령은 사과와 함께 이번과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할 책임이 있다. 정부의 약속들이 언제고 잘려나갈지 모르는 도마뱀 꼬리 같은 것이라면 어떤 국민이 이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