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고등학교 1학년 영헌이는 자전거 광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전거 대회에 출전하고 자전거를 튜닝(개조) 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지난 5일 동안 5교시가 끝나면 그는 부리나케 동네 자전거 점포로 달려갔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여전히 6, 7교시 수업을 듣고 있는데 말이죠. 빠진 수업시간은 공결로 처리됐습니다.
영헌이는 왜 정규수업 시간에 5일 연속 자전거 점포로 달려간 걸까요? 해답은 인턴십을 통한 직업체험 프로그램인 이른바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에 있습니다.
“자전거란 단어만 듣고도 가슴이 뛰어 LTI직업체험을 신청했습니다.”
영헌이는 동네 자전거 점포에서 자전거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에 대한 세부 지식을 익혔습니다. 웬만한 자전거 지식은 이미 꿰차고 있었지만 현장 체험을 통해 브레이크 방식이나 케이블 교체 기술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얻었습니다.
“제 꿈은요… 자전거 점포를 차리는 겁니다.”
5일 연속 몰입, 생생한 정보 취득
LTI 프로젝트는 서울시 성동광진교육지원청이 야심 차게 준비한 새로운 직업체험 모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두 사회적 협동조합이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광진아이누리애’와 교육전문기관 ‘해오름’ 입니다. 대상자는 성동구와 광진구 관내 중학교 3학년 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총 150명입니다.
참가 학생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신기술 및 메이커 교육 그리고 창업 프로그램 등 3분야에서 9개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체험은 5일 동안 2시간씩 5명 내외의 소규모로 이뤄집니다. 참가 학생들은 큰 강당에서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거나 직장을 찾아가도 일회성에 그치는 진로 체험과는 큰 차별성이 있다는 반응입니다.
뉴미디어 1인 프로듀서 과정을 듣고 있는 김정현(중3) 군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입니다.
“이 분야에서 쓰는 전문 용어들을 배워서 유익했어요. 궁금할 때마다 바로바로 질문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학생들을 지도하는 강사는 그 분야의 현업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김새샘 서울정보디자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스스로 지원해서 온 학생들이라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에요. 하나를 던져주면 5개의 아이디어를 내면서 빨리 터득합니다”라고 수업 분위기를 요약했습니다.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꼭 갖춰야 할 기본 지식과 소양을 5일 동안 가르칩니다.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촬영해보고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해 영상물을 만들어 발표할 예정입니다.”
LTI 프로그램에는 데이터 디자이너, 비주얼 커뮤니케이터, 3D 프린팅 전문가 등 신 기술업종을 비롯해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 전문가, 소셜벤처 창업가, 지역 정보 전문가 등 환경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다양한 직업 체험 교실이 준비돼 있습니다.
높은 진입 장벽 해결사…공공구매지원단
LTI 프로그램을 위탁운영하고 있는 광진아이누리애와 해오름 사회적협동조합은 광진협동사회적경제네트워크(광사넷)의 회원사들입니다. 김현주 해오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광사넷의 도움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며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에서 교육청과 직접 접촉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광사넷 공공구매지원단이 저희에게 서울시 성동광진교육지원청이 LTI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주셨어요. 동시에 교육청에는 지역의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고요. 다리를 놓아주신 셈이죠. 저희는 열심히 준비했고 경쟁에서 최종 발탁이 된 겁니다.”
광진아이누리애 서울정보디자인연구소 신태호 소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사회적경제에 대한 편견을 덜어내는데 큰 몫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습니다. 서로를 좋게 바라보고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입니다.
“일부에서는 사회적기업들의 행보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교육이란 부분에서는 ‘잘할 수 있겠어?’ ‘더 잘하는 일반 기업들도 많은데 굳이 왜?’라는 불신이 있어요. 이 프로젝트를 우리가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앞으로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진로 탐색 등 교육 분야에서 사회적경제 주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마을이 책임진다
LTI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체험교육기관은 성동, 광진구에 있는 기업들로 모두 8곳입니다. 자활기업인 광진우리동네자전거포 협동조합을 비롯해 ㈜희망공장 커뮤니케이션, 사회적기업 젠니클로젯 등 다양합니다. 김 이사장은 “진행비가 실비 수준이라 이윤만 생각했다면 기업들이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마을의 아이들은 우리가 키운다는 책임의식의 발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 회사의 모토가 교육, 나눔, 행복입니다. 교육을 나눠서 서로에게 행복하자는 것이죠. 며칠 전 강사 한 분이 지역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점에 대해 “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참 가슴에 와닿았어요. 마을에 있는 기업들이 학교와 연결됐을 때 교육뿐 아니라 인성까지도 챙겨줄 수 있으니까요. 강사도 늘 자기 몸가짐을 단정히 할 것이고 아이들은 길에서 수시로 선생님을 마주치니 친근하면서도 조심스러워하는 부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 김현주 이사장
신 소장은 이어 접근성의 용이함을 강점으로 꼽았습니다.
“저희 사무실 가까운 곳에 동대부여고가 있어요. 진로탐색이나 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달려와 물어볼 수 있겠죠. 5일 동안 함께 하면 무척 친해집니다. 아무리 관심이 높다고 해서 학생들이 무턱대고 직장을 찾아가는 건 힘들잖아요. LTI는 교육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마음이 굴뚝같아도 멀면 가기 힘들잖아요.”
풀어야 할 과제…학교와 학부모·지역이 손잡아야 성공
지난 9월 첫 삽을 뜬 LTI는 초기에 학생 모집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50명 모집에 단 1명만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고 접수를 받았습니다. 연구소에서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융합형 데이터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페이스북에만 공지해도 5배수가 몰려 인터뷰를 통해 선발해야 했거든요. 그만큼 요즘 핫한 교육이라 지원자들이 넘쳐날 줄 알았죠. 그런데 2주 동안 딱 1명만 신청한 거예요.”
신 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며 헛웃음을 쳤지만 곧 그럴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교육지원청을 통해 학교에 공문을 보내 알리는 형태로 모집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학생이 절실히 원한다고 해서 쉽게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학교 정규 수업시간대에 이뤄지다 보니 학교와 학부모들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LTI 프로그램은 성동구, 광진구 관내 학교 150여 개 가운데 20여 개 교가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10여 명 남짓의 학생을 보낸 덕수고등학교 김영미 진로담당교사는 “학교에서 직접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체험장을 섭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LTI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5일 동안 집중적으로 몰입해 직업체험을 해보는 과정은 처음이라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애들한테 권유하려면 제가 먼저 확신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요즘 현장을 둘러보러 다닙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애들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거든요. 아이들 반응이 좋으면 그때는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입니다.”
— 김영미 덕수고등학교 진로담당교사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선생님, 지역의 아이들을 내 아이들처럼 키우겠다는 어른들이 함께 한다면 마을이야말로 현장감 넘치는 가장 훌륭한 학교가 되지 않을까요?
원문: 이로운넷 / 글: 백선기(이로운넷 에디터) / 사진: 이우기(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