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뒹구는 거리를 반팔 차림으로 걷는다. 칼바람도 아이스 버킷 챌린지도 그를 춥게 만들 수 없다. 그를 시원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콜라다. 오늘도 그는 새로 나온 콜라를 검거하러 떠난다. 군고구마 장수는 손을 데며 외친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코카콜라의 눈을 피해 세계콜라를 지켜라
오랜만에 방문한 이마트. 단골 의뢰인인 음료코너 아주머니는 나의 손을 낚아챈다. 그녀가 말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견제에 밀려 한국에 대피한 유럽의 콜라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역할은 이 녀석들을 지키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이 콜라의 사연을 알리는 경호업무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이 임무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우리는 과거에 815 콜라의 콜라 독립운동 실패를 보았다. 게다가 나는 1일 1콜라를 할 정도로 코크와 펩시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크와 펩시에게 이 녀석들은 반란군 같은 녀석이다. 발각이라도 되는 순간 이들은 물론이고 나의 탄산 인생도 종칠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들. 파리콜라와 아프리콜라를 보는 순간 의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독립 의지 가득한 이 콜라들의 외관이 (아마도) 독립운동가의 자손인 나의 피를 끓게 했다. 그래서 얼마죠? (파리 콜라는 1병에 약 3,000원, 아프리 콜라는 1병에 약 2500원, 1캔에 약 1,400원) 비싸! 망해라 유럽연합!
#파리콜라, 프랑스의 콜라 떼루아 전쟁
중대한 임무를 맡았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파리콜라’때문이었다. 예술의 도시다운 맵시 있는 디자인. 에펠탑 이미지와 파리라는 이름만으로도 한낱 콜라를 와인처럼 느껴지게 만들다니.
관광객보다 파리지앵을 위해 만들어진 파리콜라는 프랑스에서 코카콜라와 떼루아 전쟁을 벌였다. 토양을 뜻하는 떼루아(Terroir)는 그 지역 땅에서 난 생산물을 말하는데. 음식의 나라이기도 한 프랑스는 콜라를 프랑스화 시키기 원했고 30개가 넘는 지역콜라를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난 사탕무로 만든 파리콜라를 마셔본다. 탄산이 자잘하고, 단맛이 조금 덜 한 콜라의 맛이다. 콜라의 기준이 된 코카콜라의 입장에서는 부족해 보이는 맛. 실제 코카콜라 프랑스 마케팅 대표는 “지역콜라의 문제점은 라벨을 넘지 못하는 것”이라는 일침을 놓은 적이 있다.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맛을 따라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확실히 톡 쏘는 맛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는 맛. 하지만 오히려 콜라의 강함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나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병까지 보여준다면 금상첨화. 이것이 바로 파리의 감성인가.
#아프리콜라, 코카콜라보다 검은 콜라
검은 디자인에 야자수 그림. 잘못 보면 아프리카에서 온 콜라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콜라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제법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콜라다. 1931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올해로 86세를 맞이했다.
<코카콜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라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독일은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코카콜라를 소비하는 국가였다.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며 독일은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는 길이 사라졌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환타. 그리고 바로 이 아프리콜라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프리콜라는 맛의 정체성이 뚜렷하다. 코카콜라가 활달하고 캐주얼한 10대를 연상시킨다면, 아프리콜라는 조용하지만 독특한 방구석 예술가를 떠올리는 맛이다. 쏘는 맛은 적지만 단단한 맛이 난다. 콜라 치고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는 것도 특징. 뒷맛까지 깔끔하니 독특한 탄산음료를 마신 기분이 든다.
실제로도 독일에서는 대중적이기보다 힙한 음료라고 한다. 슈퍼마켓이나 마트보다는 카페나 클럽, 바에서 주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외관도 맛도 매력적이라서 한국에서도 팬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콜라의 다양성을 응원하다
파리콜라와 아프리콜라와 함께 한 나날들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세상에 콜라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만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 과거들. 하지만 콜라 역시 커피, 맥주, 와인처럼 다양한 맛과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너무 획일화 된 맛을 기준삼아 온 것은 아닌지…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은 소수만 알고 있다는 소문이 무색하게 많은 콜라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맛에 값싼 가격을 자랑해서는 절대 코카콜라라는 거대한 제국을 이길 수 없다. 다양한 감성과 맛의 차별화만이 콜라의 세계를 넓혀주겠지. 마시즘은 옷깃을 여미며 갈 길을 떠난다. 앞으로 더 많은 파리콜라와 아프리콜라가 나타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