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올림픽은 옆 동네, 도쿄에서 개최된다. 한국 정서상 이 개최지 이슈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리는 것보다 국내에서 더 이슈가 된 사실은 야구가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된 것. 7년 뒤 한국 야구의 실력을 떠나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느꼈던 감동의 재현은 무기한 보류되었다.
야구의 올림픽 잔류를 위한 세 가지 과제
국제야구연맹(IBAF)은 올림픽 재진입을 위해 국제소프트연맹(ISF)과 통합하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을 만드는 등 (그다지 효과는 없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2005년 IOC 총회에서 야구의 올림픽 잔류를 위한 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도핑 테스트의 강화, 경기 시간의 단축, 메이저리거의 참가가 그것이다.
약물로 얼룩진 메이저리그지만, 도핑 테스트의 강화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약물과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시간의 단축은 승부치기의 도입으로 (여전히 경기 시간이 길지만) 성의는 보였다. 결국, 야구의 올림픽 재진입 실패는 메이저리거가 참가하지 않는 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메이저리거의 올림픽 참가, 불가능한가?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올림픽 동안 리그를 중단하는 사태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야구는 올스타전을 전후로 한 아주 잠시의 휴식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경기가 이뤄지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으로 리그를 중단한다면 짧게 잡아도 2주 이상 경기를 쉬게 된다. 즉,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추수감사절이 되도록 칠면조도 못 썰고 꼼짝없이 야구를 보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거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치러지는 WBC에서도 부상 선수가 발생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시즌 중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여름이면 한창 순위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올림픽 기간 중 핵심선수가 부상을 당하는 것은 그 선수의 통장에 찍히는 엄청난 액수의 금액도 아까울뿐더러 팀 전력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게다가 올림픽 기간인 8월엔 트레이드도 불가능하다. 혹시나 장기간 부상에 시달린다면 정작 중요한 포스트시즌 성적까지 좌우될 수 있다.
그리고 WBC가 있다. 이 대회 역시 부상에 대한 걱정 등으로 최고의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라는 가장 큰 의미가 조금은 퇴색된 느낌이 있지만, 현존하는 국제야구대회 중 가장 눈이 즐거운 대회인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주도하는 대회이다. 올림픽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참가하게 되면 WBC만의 경쟁력을 잃게 된다. 결국, 메이저리거가 올림픽에 출전해서 메이저리그가 얻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올림픽에서 야구를 보고 싶다면? 올림픽 축구를 모델로 삼자.
올림픽에서 야구와 축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야구는 가장 큰 시장인 메이저리그가 시즌 중이고 축구는 가장 큰 시장인 유럽축구가 아직 시즌 전이라는 점이다. 이는 생각보다 큰 차이점이지만, 올림픽 축구가 비시즌에 치러진다고 해서 유럽의 구단들이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의 부상은 물론이고 비시즌에 국제대회가 있는 경우에 선수들이 시즌 초반은 물론이고 시즌 전체를 치르면서 컨디션 난조를 겪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올림픽 축구는 잘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 축구는 월드컵과 확실한 차이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다. 올림픽 축구는 23세 이하 선수들만이 출전 가능하며 경기 질의 향상을 위해 24세 이상 선수의 출전을 3명까지 허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올림픽 축구는 FIFA가 주관하지는 않지만, ‘U-17 월드컵’과 ‘U-20 월드컵’의 연장선이 되어 자연스레 ‘U-23 월드컵’이 되었다.
올림픽 야구 역시 연령 제한을 두고 ‘예비스타들의 WBC’로 만드는 것이 올림픽에서 야구를 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다 하더라도 연령에 포함되는 트라웃이나 하퍼 같은 유명 메이저리거가 올림픽에서 뛰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렵게 되겠지만, 올림픽에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재진입할 수 있는 하나의 명분이 생기게 된다.
좀 더 다양한 야구, 아마추어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
그리고 스타성이 전혀 없는 트리플 A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미국 대표팀(2008 베이징 올림픽 미국 대표팀에는 대학 선수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선수는 스티브 스트라스버그다.)보다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돈다발을 들고 기다리는 유명 대학 유망주들, 이미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유명 마이너리거들로 구성된다면 훨씬 볼거리가 많지 않겠는가?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처럼 다른 종목에서 메달을 따기 쉽지 않은 국가들이 올림픽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국내 야구팬들이 올림픽에서 누릴 수 있는 볼거리는 줄어들 것이다. 만 23세 이하로 한국 대표팀을 구성한다면 메달은커녕 올림픽 출전조차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올림픽 때문에 리그를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것은 한국프로야구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고, (어디까지나 성적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한국 야구팬들이 대학 야구선수나 프로의 유망주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저런 대안을 내놓아도 야구가 올림픽에 재진입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다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더라도 메이저리그 사무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시 올림픽은 ‘그들만의 리그’가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미 WBC가 있는데 IOC가 메이저리거의 참가를 조건으로 밀어붙인다면 야구는 폴로처럼 올림픽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한 발짝 물러나야 상대방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신임 바흐 IOC 총재는 그런 밀당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