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는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심리학과 자기계발의 만남이 유발하는 두 번째 효과는 자아에 대한 관점과 방향을 바꾸어놓는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자아를 치유한다기보다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스스로 자아를 조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조형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이는 첫 번째 효과보다 더욱 심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자아의 재창조 가능성과 당위성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령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자기책임론의 기반을 제공해주는 식이다. 빈곤과 풍요는 결국 나 자신에 달린 것이고, 내가 원한다면 풍요한 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되는 것은 가정에서 국가, 나아가 국제 정세까지 포괄하는 사회적 측면이다. 자아를 구성하는 여러 측면 중에는 사회적 층위 또한 당연히 들어간다. 그러나 ‘자아의 재창조’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성원이 아니라 심리적 개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픽업아티스트: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탁월한 유혹자가 되라
흥미롭게도 자아 재구성의 과업은 연애의 영역에서 특히 더 요청되는 것 같다. 이른바 픽업아티스트(Pickup Artist)는 자기계발 시대의 연애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클럽이나 거리 등에서 여자를 유혹해 단기간에 스킨십의 모든 단계를 진행하는 것에 인생을 거는 이들이다.
이게 과장으로 느껴진다면, 그들의 세계를 진솔하게 서술한 닐 스트라우스의 『THE GAME』을 보라. 취재차 잠입했다가 결국 그 세계의 정상에 올라서고만 주인공의 이야기가 대단히 흥미롭게 진행된다(이 책의 목차는 곧 유혹 작업의 매뉴얼이기도 하다).
픽업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성에게 매력이 없는 과거의 자기 자아를 삭제하고, 이성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자아로 새로이 자신을 조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긍정심리학이나 진화심리학 등 온갖 담론을 학습하고, NLP나 대화최면 등의 여러 기술을 활용한다. 이미 나름의 이론체계도 수립하고 있으며, 많은 교재와 교육프로그램이 난립하고 있다(심지어 고가로 판매된다).
픽업아티스트의 말로가 보여주는 ‘자아 재구성’의 한계
『THE GAME』은 주인공 닐의 스승이자 친구인 ‘미스터리’가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심지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연인들과의 관계도 매번 파괴적으로 진행된다. 미스터리가 누군가. 픽업아티스트의 세계를 열어젖힌 이는 로스 제프리스지만, 미스터리는 이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여자에게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접근 공포증이 심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숱한 여성들을 유혹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로서 거듭난 그가 펴낸 『미스터리 메써드』는 픽업아티스트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애초에 이성에게 매력이 없었던 원인은 그가 나고 자란 가정이 제대로 된 가정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적 외상의 치료였건만, 그는 정작 새로운 자아 형성을 선택했다. 즉 그의 새로운 자아 구성은 기존의 자아를 외면(억압)한 결과였다.
그러나 억압된 것은 수시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상황은 매번 더욱 악화되었다. 그야말로 자기계발이 주장하는 자아 재구성의 피상성과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THE GAME』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듯이 비단 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는 거의 모든 픽업아티스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상담과 코칭: 치유와 억압
과거의 자아를 배제하고,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라는 이러한 강박적 요구는 다른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된다. 가령 코칭이 상담을 대체하고 있는 상황을 보자. 상담은 내담자의 과거에 집중하고, 코칭은 내담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상담에서 과거는 해결돼야 할 문제로 등장하고, 코칭에서 미래는 실현해야 할 과업으로 대두된다. 상담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기억의 치유를 통해 자아의 건강을 도모한다.
반면 코칭은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희망을 주목하고, 이의 구현을 위한 자원과 능력의 활용에만 관심을 둔다. 즉 치료의 대상으로서의 부정적 과거에서 성취의 대상으로서의 긍정적 미래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보통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그러므로 코칭의 목표는 실행이다. 과업의 능동적 실행을 위해 코치는 내담자를 위한 동기부여자가 된다. 어떤 특정한 문제에 봉착할 경우, 내담자가 스스로 답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즉 내담자가 자기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자기 내면의 역량을 발현하도록 코칭해주는 것이다.
자기계발의 사회: 긍정 강박, 모방 강박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심리학과 자기계발의 만남은 자기계발 사회를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강박적 모델, 즉 행복(긍정) 강박과 모방(매뉴얼) 강박 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른 한 면으로 보면 그 자체로도 이미 현대사회 안에서 상당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소극적으로는 자아를 치료하고, 적극적으로는 자아를 재구성한다.
이렇게 자기계발은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적극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진화 양태는 자기계발 시장의 다변화와 상품(모델)의 다양화로 드러난다.
위의 글은 이원석의 신간 <거대한 사기극: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의 2장 ‘자기계발의 담론’ 중 ‘자기계발과 심리학: 힐링 강박과 자아의 재구성’을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