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 TV를 살 때다. 지난 3~4년 사이에 TV를 산 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새 TV를 사기 어려운 시기였다. 일단 너무 비쌌다. 그리고 차세대 UHD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에는 해상도는 UHD인데 색상 범위는 일반 수준인 제품도 있었다. 진정한 차세대 TV라기엔 모자란 제품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새 TV를 살만한 세상이다. LG전자 55인치 OLED TV는 미국 직구 가격이 1399달러까지 내려왔다. 삼성전자 55인치 QLED TV는 1490달러다. 두 제품 모두 초고해상도(UHD)에 광색역(HDR)을 지원한다. LG전자 55인치 OLED TV는 국내에서 사더라도 230만 원대(다나와 최저가 기준)에 살 수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보다 색상 표현력도 해상도도 떨어지는 TV가 비싸게 팔렸다.
그동안에는 볼 것도 없었다. 지금도 UHD 방송 표준은 중구난방이다. 한국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 그리고 EBS는 지난 5월 31일 UHD 지상파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했을 뿐이다. 볼 건 없다. MBC는 국내 최초 UHD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첫 UHD 드라마는 <별별 며느리>. 어떤 작품인지 알아보자.
… 그만 알아보자. 이렇듯 별로 볼 게 없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기존 UHD TV 구매자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비싼 돈 주고 사셔서 험한 꼴 다 보셨다. 하지만 여러분들 덕분에 지금의 가격이 이뤄졌으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말씀을 올리고 싶다.
이제 어두운 밤은 지나가고 밝은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 드디어 UHD를 편히 볼 수 있다. 일단 넷플릭스. UHD에 HDR만 아니라 상위 규격인 돌비 비전 지원 영상도 잔뜩 있다.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그리고 <아이언피스트>까지 마블 시리즈는 모두 돌비 비전으로 볼 수 있다. 마르코폴로, OA, 셰프 테이블 프랑스편 등도 돌비 비전을 지원한다. 아, 그리고 데이비드 핀처가 참여한 마인드 헌터도. 블루레이도 늘고 있다. 슈퍼배드, 매드맥스, 왓치맨, 스타트렉 등이 UHD에 HDR로 나왔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 미적대던 방송사들도 UHD 콘텐트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뭘 사야 할까. 성격 급한 분들을 위해 3줄 요약 먼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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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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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수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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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기술 대응
1. OLED
일단 미리 사과한다. OLED는 비싸다. 만약 OLED를 포기하고 LCD 기반으로 더 큰 크기 TV 제품을 선택한다 해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다.
하지만 LCD를 선택했다면, 절대로 비교 시사에는 가시지 않기를 권한다. 만에 하나 비교 시사에 갔다면, 절대로 깜깜한 방에서는 두 제품을 비교하지 않기를 권한다. 어두운 곳에서는 OLED와 LCD의 차이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OLED는 ‘리얼 블랙’을 표현한다. 화면에서 새까만 부분은 밝기가 ‘0’이다. 아무 빛도 색도 나지 않는다. 화면을 구성하는 소자(화소)가 제각기 빛을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LCD는 다르다. LCD는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화면 뒤에 빛을 내는 부품이 있다. BLU(Back Light Unit)라 부르는 이 부품은 점점 개별 화소 단위에 가깝게 빛을 켰다 껐다 하는 방향으로 발전 중이다. 하지만 아직은 빛이 다른 화소로도 새어 나온다. 이게, 어두운 곳에서는 참, 거슬린다. 밝은 곳에서는 별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덤으로 하나 더. 최근 넷플릭스 기술 시사를 2번 참석했는데, 2번 모두 주 상영 회면으로 OLED 제품만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자기네 콘텐트가 가장 멋지게 보일 환경을 고른 거다. 그게 지금은 OLED TV다. 마음먹고 지른다면, 일단 OLED TV를 선택해야 한다.
2. 한 치수 더 크게
한정된 예산 안에서라면 앞에서 한 얘기랑 상충되는 얘기지만, 한 치수 더 크게 사야 한다. 그래야 UHD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일단 앞에서 잔뜩 쓴 ‘UHD’를 풀어보자. ‘Ultra High Definiton’. 초고해상도란 의미다. 해상도란 전체 화면을 얼마나 잘게 쪼갰는지를 표현하는 수치다. UHD 표준에 맞는 TV는 기존 HD TV에 비해 가로세로 2배씩 더 많은 화소를 담고 있다. 같은 크기에 더 많은 화소가 있기 때문에 더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 흔히 방송가에서는 ‘피부 솜털까지 보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세밀한 걸 보려면, 더 가까이에서 봐야 한다. 국제 전기통신 연합(ITU)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만든 적정 시청 거리표를 보자.
ITU에 따르면 HD TV 시청자는 TV 화면 세로 길이의 3배 정도 거리를 띄고 앉아야 한다. 55인치 TV는 높이가 27인치니까, 81인치(약 206cm) 이상 떨어져서 보면 된다. 딱 우리가 아는 TV 시청 거리 수준이다.
하지만 UHD 시대에는 그 절반이면 된다. ITU 권장 수치는 TV 높이의 1.5배. 55인치 TV를 딱 1m 정도 거리에서 보란 얘기다. 물론 이 숫자는 일반적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거리는 아니다. 모든 화소를 꼼꼼히 보려면 이 정도가 적절하다는 권고다. 하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화면을 제대로 보려면 시청 거리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충고는 유효하다. 그렇다면 옵션은 다음과 같다. 거실에서 의자를 앞으로 당기든지. TV를 거실 한가운데에 놓든지. 더 큰 TV를 사든지.
3. 돌비 지원
돌비 규격 지원 제품을 사야 한다. 화면 규격인 ‘돌비 비전’과 음향 규격 ‘돌비 애트모스’ 대응 중에서는 돌비 비전을 우선시하는 게 낫다. 음향은 리시버와 스피커를 추가할 수 있다. 또, 기존 사운드바가 펌웨어 업데이트로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화면은 웬만해선 못 바꾼다. 오래된 말을 다시 꺼내 표현하자면 ‘WYBIWYG(WHAT YOU BUY IS WHAT YOU GET)’이다.
돌비 비전은 일종의 확장 HDR 규격(해상도는 당연히 UHD)이다. 보통 HDR이라고 말하는 제품은 ‘HDR10’이라는 규격을 따른다. HDR10은 오픈 소스 규격으로, 모든 제조사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뒤의 10은 표현할 수 있는 명암 단계가 10비트(2^10=1024)라는 의미다. 즉, 완전한 어둠으로부터 가장 밝은 빛까지 1024단계로 표현할 수 있다. 돌비 비전은 12비트다. 최대 4096단계로 명암을 표현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RGB 서브픽셀 별로 각각 10비트, 12비트씩 색 심도를 갖는다고 하겠지만 복잡하고 다들 관심 없을 테니 생략한다)
최대 밝기도 차이가 난다. HDR10은 1000니트. 돌비 비전은 그 10배인 1만니트다. 즉, 돌비 비전이 더 섬세하고 더 밝은 화면을 표현할 수 있다.
두 규격 사이 화질 차이가 크지 않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일단 1000니트만 돼도 눈부시게 밝기 때문에 사람 눈으로 보기에는 차이가 안 난다고 하기도 한다. 4096단계 명암 역시 숫자로나 의미 있지 사람 눈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또, 돌비 비전 규격을 맞출 만큼 고화질로 찍은 작품이 적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돌비 비전에는 ‘메타 데이터’가 있다. 화면을 HDR10과 똑같은 수준으로 구성하더라도, 각 장면별로 화면을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데이터가 따라붙는다. 돌비 비전 지원 TV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밝기, 명암, 색상 등을 최대한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가 없는 HDR10에 비하면 더 정확한 표현이 가능하다.
또 하나. 돌비 비전이 오픈 소스인 HDR10 계열과 표준 경쟁에서 우위에 섰다. 작년까지만 해도 두 진영의 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HDR10이 더 강력했다. 무료인 데다, TV 시장 1위 기업 삼성전자가 HDR10 고도화를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LG전자, 소니 등에 이어 애플까지 돌비 비전 진영에 합류했다.
표준 전쟁이란 그런 거다. 당연히 좋은 기술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그만큼 세를 불리는 게 중요하다. 점유율 높고 비싼 제품 만드는 회사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돌비 비전은 애플과 손을 잡았다. 여기에 돌비와 손잡은 소니와 LG전자가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1, 2위로 나섰다. 게다가 지금 고화질 콘텐트 제작에 가장 적극적인 넷플릭스 역시 돌비와 친하다.
블랙 프라이데이가 다가온다. 이 기간을 놓치더라도, 연말 세일이 있다. 이제 남은 건 결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