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6일 북한산국립산 사무소 근처에서 박용철 씨가 살해된 채로 발견됐습니다. 당시 박 씨는 칼에 수십 차례 난자당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박용철의 살해 현장 근처에서 박용수 씨가 목을 맨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두 사람이 금전 문제로 다투다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후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초기 수사부터 지금까지 계속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시작은 육영재단
사건이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살인 사건의 시작을 알아야 합니다. 박용철과 박용수는 박근혜 씨와 5촌입니다. 단순히 친척이 아니라 ‘육영재단’이라는 막대한 재산과 연루돼 있습니다.
육영재단을 놓고 박근령과 박근혜 씨가 대립하던 시기, 박용철은 박지만의 최측근으로 폭력을 동원해 당시 박근령 이사장을 쫓아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박용철은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박근혜 씨의 총괄 경호를 맡기도 했습니다. 박근령의 약혼남이었던 신동욱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2010년 박근혜, 박지만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신동욱의 재판이 열리고 박용철이 증인으로 나옵니다. 박지만과의 관계가 틀어진 박용철은 ‘박지만 회장님 뜻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가 있다고 말합니다.
9월 27일에 증언을 할 예정이었던 박용철은 9월 6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고, 신동욱은 증거를 내놓지 못해 법정 구속됩니다. 결국, 박용철이 죽음으로 박지만의 신동욱 살해 지시 의혹과 육영재단 폭력 사태의 진실은 알 수가 없게 됐습니다.
박용철을 살해했다는 박용수, 진짜 자살했는가?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박용수가 죽음으로 정확한 살해 동기는 모릅니다. 하지만 박용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면 박용철을 살해한 목적까지도 밝혀낼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박용수가 박용철을 혼자 살해한 것도 아니고, 그의 죽음도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박용수가 자살했다는 현장 사진을 보면 박용수가 목맨 밧줄 밖으로 빨간 타올을 걸치고 있습니다. 대형 목욕 타올을 왜 박용수가 걸치고 자살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시 날씨는 평균 23도로 맑고 더운 날)
자살이라면 본인의 두 손으로 나무 위로 줄을 묶고 목에 걸어 사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올 안쪽으로 줄을 맬 수는 없습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타올을 걸치고 줄을 나무에 묶고 자신의 목에 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목에 표피 박탈로 상처까지 있었습니다.
박용수 자살 의혹을 풀어줄 단서로 보이는 ‘빨간 타올’은 공교롭게도 증거 감정 목록에서 사라졌습니다. 혈흔이나 땀 등 DNA 검사만 했어도 박용수와 박용철의 죽음을 풀어줄 증거가 사라진 셈입니다.
박용수의 부검 자료를 본 법의학자는 “박용수는 이미 죽어서 시반이 형성된 이후 시간이 지나 누군가 나무에 매달았거나, 나무에 목매어 죽은 시신을 시반이 고정되기 전인 3~4시간 만에 바로 지면에 눕혀 놓았던지 하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수사결과로 박용수가 박용철을 1시 이후에 살해하고 2시간 정도 산행 뒤 자살했다면 새벽 3~4시 경이어야 합니다. 경찰의 현장 도착이 10시 40분 이후여서 7시간~8시간 이상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경찰 수사가 맞는다면 주로 하반신과 손에 시반이 나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등과 엉덩이, 목에 더 강한 시반이 형성돼 있습니다.
누군가 박용수를 죽인 후 매달았다면 부검 결과에 나온 시반이 설명됩니다. 그러나 경찰 수사와 상반된 시반만 놓고 본다면 박용수가 자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박용수의 단독 범행을 믿기 어려운 이유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진선미 의원은 박용수의 단독범행이 아니라며 몇 가지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박용철을 살해한 범행도구로 보이는 망치와 칼에서 박용철의 혈흔은 나왔지만, 박용수의 지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문도 없이 박용수가 범행 도구를 이용해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단정한 경찰이 이상해 보일 정도입니다. 박용수가 살아서 재판을 받았어도 증거 불충분이 될 수 있습니다.
경찰은 박용수의 단독 범행이라고 밝혔지만, 법의학자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법의학자는 “졸피뎀과 디아제팜에 알콜까지, 거의 기절상태인 대상을 죽이고자 했다면 범행 무기는 단순해도 되고, 한 명이 무기 여러 개를 활용해 사망케 한 사례가 많지 않다”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혼자서 살해하려고 했다면 망치로 내려치거나 칼로 찌르거나 한 가지 방법을 택했을 것입니다. 한 손에는 망치,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박용철의 머리를 5~6곳 타격한 망치와 찔린 상처 7곳은 3센티 과도, 대형V자 찔린 상처는 6센티와 7센티로 더 큰 칼이 범행 도구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흉기가 3개 이상이면 범인도 최소 2명 이상일 수 있습니다.
경찰의 엉터리 수사, 누굴 위해서인가?
경찰은 박용철 살해 사건과 박용수 자살을 엉터리로 수사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밝힌 ‘입·퇴산 기록'(사건 당일 새벽 5~6시 3명의 입퇴산 기록이 있었음)도 확인하지 않았고, 사건 전날 박용수와 박용철이 함께 있었다던 술집이나 여관 입구 등의 CCTV도 수사에서 배제됐습니다.
박용철 살해 현장에 있었던 신원미상의 인물이 폈던 담배꽁초(박용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음)는 물론이고, 박용수가 자살했다는 주변의 족적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박용수가 썼다는 ‘유서’는 자필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유서와 유서 종이를 뜯었던 노트, 수첩 지문감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핵심 증거로 볼 수 있는 박용수가 가족들과 통화했던 휴대폰이 사라졌는데도 경찰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진선미 의원은 “대통령 선거를 1년 정도 앞둔 시점 유력 대선후보 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5촌 형제 두 명이나 사망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초기부터 단정하고 수사가 진행됐다. 뭔지 모르겠지만 급했다. 사건 발생 2일 만에 중간수사발표를 했고, 박용수를 범인으로 단정했다.”라며 경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했습니다.
청부 살해 지시를 받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나 타살 배후자로 지목된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 기회에 성역 없는 재수사가 이루어질지 경찰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문: The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