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단 두 가지만이, 우리가 인생에서 꼭 챙겨야 하는 대상이라 말했다. 일(work), 그리고 사랑(love)이 바로 그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짧은 문답이, 일에만 매달려 살고 또 그것이 옳은 길인 줄 아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때로 의미심장함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은 왜일까?
현대인의 주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게으름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거늘, 그래야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기르고, 노후도 준비하고 그럴 수 있거늘, 그러자면 1분 1초라도 아껴가며 일하고 공부해야 마땅함에도 어디 무엄하게 게으름을 피우려 든단 말인가.
왠지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지만, 일만 하며 사는 삶이 결코 바람직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회의감을 느끼다가도 ‘그래도 게으른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주위를 다그치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이다.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 따져보자. 아마 다양한 답변들이 나올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명문 대학에 가야 하니까, 대기업에 취직해야 하니까, 사업 대박을 내야 하니까,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되니까,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으니까, 육아에 필요해서, 내 노후 보장을 위해, 명예와 권력을 위해, 로또 1등 맞을 수는 없을 테니 그저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는 이것뿐이 없어서 등등. 그러면 이렇게 한 번 더 질문을 해보자. 돈을 벌어야 하고, 명문 대학에 가야 하고 등등.
그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것이 아니라 단지 수단에 머무르게 될 것이라면, 당신이 게으름을 버려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우리가 꺼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행복, 사랑, 안녕감, 평안함, 즐거움 등
놀랍다. 일(work)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사랑(love)을 얻기 위함이었다니. 그런 것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멀리 돌아갈 필요는 없는데. 언제부터 사랑이 일을 거쳐야만 움켜쥘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것인가? 궁극적으로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서는, 게으름을 버리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니. 마치 게으른 사람들은 행복할 자격도,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 기준 평균 노동시간 최상위권에 속한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믿고 있듯 일이 곧 사랑의 수단이 될 것이었다면, 행복지수도 세계 1~2위 수준이어야 했을 것이다.
소위 게으름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그것을 게으른 모습의 전형이라 말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은 게으른 학생이다. 해야 할 업무를 미루는 성인은 일하지 않았으니, 먹지도 말아야 할 자다.
그러나 왜 ‘노는 것’은 게으름인가? 왜 ‘일하는 행위’만 부지런함이며, ‘노는 행위’는 부지런함이 될 수 없는가? ‘사랑’ 또한 인생의 중요한 목표인 것을.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여유도 부려야 하는 것을. 그렇게 부지런히 ‘사랑’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는 이들에게 왜 ‘게으르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인가.
일하는 자들은 게으름뱅이다. 특히 사랑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는 자들은 지독한 게으름뱅이다. 흔히 게으른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을 미룬다. 중요한 일이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므로 하긴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미루기만 할 뿐, 정작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때때로 놀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안다. 쉴 줄도 알아야 하고,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 하고, 여행도 다녀와야 하고, 놀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이성적으로, 아니 어쩌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더 잘 안다. 하지만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게으름 부리기 바쁘다.
지금 해야 할 업무가 많아서,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비단 당신과 나뿐이겠는가. 사회심리학 전공자로서 필자는 종종 일에만 몰두하고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 전체가 집단적인 게으름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일하지 않아서 게으르다? 아니다. 놀아야 함에도, 더 잘 쉬어야 함에도, 그것이 곧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늘 미루기만 할 뿐, 실천을 못 하고 있어 게으르다는 말이다. 끝없는 일 뒤에 찾아오게 될 것은 행복과 사랑이 아니다. 소진에 따른 건강의 악화, 만성 불안, 피로, 수면 부족, 딱히 추억할 일이 없이 흘러버린 인생과 회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끝끝내 가질 수는 있었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을 한 줌의 권력, 명예, 재산과 함께 말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