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짧은 기간 동안 LoL e스포츠를 취재하면서 같이 사진을 찍은 선수는 몇 안 된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름 아닌 페이커다. 심지어 그 순간은 그가 2016년 롤드컵 우승을 확정 짓고 우승컵을 끌어안고 있는 그때였다.
당시 나는 대강 현장을 마무리하고 우승 인터뷰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는데, 중간에 문이 열리고 우승컵을 든 그가 탔다. 잠시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페이커 선수, 사진 찍어도 될까요?” 라고 묻고 그를 촬영했고, 이어 같이 셀카도 한 장 찍었다. 나는 그 순간 그 엘리베이터에서 그와 함께 사진을 찍은 전 세계에서 둘 뿐인 사람 중 하나가 됐다.
반년간의 미국 e스포츠 취재에서 내가 현지 팀에게서 받은 인상 중 하나는 바로 간절함의 부재였다. 물론, 문자 그대로 그들에게 그런 절실함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감정이란 건 억누르고 참다가도 너무나 복받치면 터져 나와 틈새로 스멀스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그런 간절함이 새어 나오는 순간을 그리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그들에게서 어떤 이상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대회란 말 그대로 컴페티션이 아니라 그저 엔터테인먼트 같았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오늘 결승전이 끝나고 가장 사진으로서 기억에 남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페이커다. 옛날에 전 직장동료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만약 세계 최고 무대의 결승전이 끝나고 승부가 결정됐을 때, 승리에 환호하는 우승팀과 좌절에 눈물짓는 패배팀이 있다면 어디에 카메라를 돌리겠냐는 물음이 그것이었다. 난제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아름답고 진솔하기 그지없는 감정의 폭발이 두 개나 일어나고 있으니.
나는 프로스포츠를 포함해 어느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진실되게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노력을 진짜 정말 참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그런 수행자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그런 모습에서 가장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진솔함 가득한 감정이 환호 혹은 눈물로 나타날 때 지켜보는 자는 아무런 말도 차마 할 수가 없다. 단지 그 감정에 동조를 덧붙일 뿐.
오늘 눈물을 흘린 페이커는, 우리에게 자신의 커리어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또 하나 선사한 셈이다. 그가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했는지, 그리고 그래서 얼마나 큰 좌절을 경험했고 또 얼마나 이 순간을 깊이 기억할지를 느꼈다. 그건 그가 그만큼 지금까지 쌓아 올린 금자탑이 얼마나 독보적이었는지를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의 페이커는 항상 그랬다. 누구보다 간절했고, 그만큼 누구보다 강력했다. 그래서 그 눈물 덕분에 엄청 감상적이게 됐다.
그 간절함이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 또 스스로에게는 새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은퇴하게 되는 날까지 페이커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