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페퍼민트에 게재된 기사 <왜 식품에 유전자재조합식품(GMO)을 명시하는 것이 나쁜 정책인가> 덕분에 GMO 관련 논란이 또 다시 불붙은 바 있다. 해당 기사에서 다룬 쟁점은 “GMO가 과연 위험한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인류는 수천 년간 품종개량이라는 명목으로 유전자재조합을 시도해왔는데 왜 이것이 이제와서 문제가 되느냐는 이야기.
GMO나 품종개량이나 오십보 백보라고?
물론 인류는 수천년간 품종개량을 통해 유전자재조합을 시도해왔지만, 최근 20여 년간 일어난 시도들은 인류 역사 – 그리고 생물의 진화 역사상 –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일찍이 이렇게 대규모로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전자 재조합은 없었다.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일어난 품종개량이 인류에 미쳐온 영향과 번갯불에 볶은 콩인 GMO의 영향이 같으리라 속단할 수도 없다 .
게다가 일반에 투명하게 공개된 채 진행되는 게 보통이던 품종개량과는 달리, GMO는 굉장히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품종개량과 GMO의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논쟁은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독자들이 궁금해하실 안전성 문제부터. 아쉽게도 GMO가 생태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안전하다/아니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좀 이르다. GMO 작물에 행해지는 변형 방법이나 기전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든 GMO가 안전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반화다. Bacillus thuringiensis처럼 해충을 공격하기 위한 유전자 변형도 있고, 가뭄 등 극단적 기후에 적응성을 높이는 변형도 있으며, 특정 영양소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유전자 변형도 있다. 그런가 하면 특정 제초제에 저항성을 높여 대형 종자 회사에서 생산되는 종자의 구매를 촉진시키고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작물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생물학적 안전성에 대한 카르타헤냐 의정서”(the Cartagena Protocol on Biosafety, 2003)가 제정되던 2003년 당시 작성된 언론 발표문을 보면, 제법 곱씹어볼 만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생명공학은 혁신적인 과학으로, 거대한 산업을 탄생시켰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바꿀 만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벌써 농업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우리가 먹는 것들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커다란 실수라도 일어난다면 자연에 파괴적인,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 후손들은 오늘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GMO와 생물학적 안정성에 행한 일 – 혹은 행하지 않은 일 – 에 대해 고마워 하거나 반대로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릅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그렇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가 않다. GMO가 인체에 안전하냐, 아니냐 하는 이슈는 큰 문제의 일부에 불과한 것.
돈 없어 굶는다는 빈곤국가, GMO 운영할 역량 있나?
GMO 논쟁을 크게 세 가지 줄기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1. 안전성, 생태계에나 건강에 있어서나
2. GMO가 과연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식량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것인가
3. GMO에 의해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입을 수 있는 빈곤국가들에 이런 기술들을 도입/점검/관리/평가할 역량이 있는가
필자는 GMO 관련 논쟁에서 1번 항목이 이슈로 부상하는 바람에 2, 3번 항목이 뒤로 밀려나 있는 현실이 조금 유감스럽다. 이런 기술이 실제로 가장 필요한 곳에 가 닿을 수 있는가, 그리고 지속가능한 문제 해결법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심도 깊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제3세계에서도 GMO 관련 이해가 높아지면서 이들 국가마다 관련 연구소가 세워지고 있지만, GMO가 주변 생태계로 유입되거나(spill over), 장기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추적조사 할 수 있는 상황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그 능력들에는 한계가 있다.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황금쌀을 예로 들어보자. 황금쌀에는 기존의 쌀에는 부족한 비타민A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비타민 A 결핍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실명이나 기타 관련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쌀이 현장에서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는 발표는 없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실험에서는 불과 5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했을 뿐이고, 2차 임상 실험에서는 중국에서 68명의 유아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안전성 확보 없이 타국의 유아들을 대상으로 2차 임상실험을 실시한 데 따르는 윤리적 비난은, 2013년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황금쌀의 대규모의 현장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과연 윤리적 규제가 잘 확립되어 있는 선진국이 배경이었더라면 해당 실험이나 적용을 거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결국 빈곤지역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보다 실험이 용이한 곳으로 임상시험 지역을 옮기는 꼴밖에 안 된다. 이는 제3세계의 빈곤 지역을 저렴한 임상시험장으로 삼고 있는 일부 비윤리적인 제약산업체의 행태와도 유사하다.
GMO, 공공의 영역에서 기업의 영역으로
몬산토나 신젠타, 아벤티스 같은 대형 종자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GMO 작물 개발. 때문에 개발 대상은 주로 담배나, 콩, 면화, 옥수수, 고구마 같은 시장성 작물에 국한되어 있다. 덕분에 수수나 테프(teff), 카우피(cowpea)처럼 정작 빈곤 지역 식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작물들은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이에 한 술 더 떠 기존에 이런 작물을 생산하던 지역마저도 작황이 좋은 옥수수나 콩으로 주요 생산 작물을 변경하고 있는 실정. 필자가 과거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빈곤 지역의 식단이 극도로 단순해지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GMO 작물은 지역의 토착 문화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이런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물론 GMO를 통해 작황을 높이고 식량 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하나의 해결법을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식은 지금까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굶주림과 의사결정권의 취약성을 ‘볼모’로 잡고 새로운 작물의 도입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가도 충분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GMO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GMO도 많은 과학기술들처럼 단순한 하나의 해결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마법 탄환’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굶지 쌀이 없어서 굶지 않는다. 식량 문제는 언제나 그래왔듯 전체 생산량의 문제라기 보다는 분배의 문제가 더 크다. 단순히 세계 전체 식량 생산량이 골고루만 분배된다면 기아가 사라질 거라는 논지를 넘어,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위치에서의 취약성, 시장 의존성 문제, 토지 배분의 불공정성, 빈곤 등이 식량안정성을 해치는 복합적인 원인들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현재 GMO는 시장성 작물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2008년 당시를 기준으로 GMO 작물을 기르는 전체 농민 중 90%가 개도국이 아닌 선진국에 밀집해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전체 경작 면적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을 추월했다.) 이 때문에 GMO는 식량위기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원하는 가뭄이나 극단적인 기후에 대한 적응성을 높이고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쪽으로 개발되기보다는, 오히려 작물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감소시키고 효율성을 높이는 쪽에 더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또한 많은 GMO들이 더 많은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요구하기 때문에, GMO를 기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토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된다. 빈곤한 사람들은 기존에 경제력과 토지를 가지고 있는 소유주들에게 다시 귀속된다.
결국 GMO를 통해 식량생산의 총량이 늘어난다해도 사회적 불평등이 지속되고, 사람들의 빈곤이 지속되는한 식량안보는 여전히 저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GMO, 이렇게 개발되어서야 과연 빈곤과 식량위기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간단하고 빠른 기술적 해법을 도입해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해결책을 덮어버리는 순간, 지금까지 빈곤지역에 적용되어 실패해온 수많은 과학기술처럼 쓸모없는 기술이 되진 않을까.
다시 한 번 황금쌀의 예를 들어보자면, 황금쌀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이 체내에 흡수되어 비타민A로 변환되기 위해서는 다른 영양소들이 필수적이다. 충분한 양의 아연과 단백질, 지방질이 같이 섭취되어야 하고 기본적인 열량이 확보 되어야 비타민A로의 변환이 가능한 것.
하지만 근본적인 영양불균형으로 비타민A 결핍이 지속되는 지역에서 이런 제반사항이 갖춰질 수 있을까. 오히려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다른 비타민A 공급원 – 고구마, 과일, 야채 등 – 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영양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비용효율적이지 않을까. (참고)
과학기술을 어떻게 제3세계에 전달할 것인가
GMO에서 식량안보를 이야기 하면서 안전성 논의에만 집착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GMO 작물을 섭취하고 재배하는 일련의 과정에 제3세계 농민들과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선택권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면 더욱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과학기술의 개발은 언제나 그것이 어떻게 현실에 전달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GMO 논쟁에 있어 전달과 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논쟁의 규모에 비해 아주 미비할 뿐이다. 과학기술의 개발과 전달에 있어, 그에 상응하는 대안과 선택권을 만들어주지 못한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폭력일 뿐이다.
GMO를 단순히 안전하냐/안전하지 않느냐의 이분법적 논리로 끌어가는 것은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