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0만 명 VS 42만 명. 언론에서 추정하는 폐지 수집 노인의 수가 200만 명이고, 42만 명은 2016년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창출된 일자리 수이다. 하루에 12시간씩 폐지를 줍지만 하루에 만 원도 못 버는 분들이 있는 반면, 월 30시간의 공익사업에 참여하면 월 27만 원을 받아갈 수 있는 일자리가 무려 연간 수십만 개가 있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나는 폐지를 모으시는 어르신들의 경제적인 소득 증대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지금까지 언론에서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어려움과 낮은 소득만 얘기할 뿐, 그 주변 생태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폐지 수집인의 숫자가 2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유효성에 대해서도 따져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약 3개월간 폐지 줍는 어르신, 고물상 등 관련 생태계를 돌아보며 아무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노인일자리지원산업, 폐지 줍는 노인의 수를 줄였다
활동 초기, 폐 수집인 수가 200만 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노인인력개발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공공기관인 노인인력개발원에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찌 폐 수집인의 수가 200만 명이나 되냐는 질문을 직원분에게 드린 적이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참 나도 황당한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 진실이 어떤지에 대한 검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폐 수집인의 주변 환경들을 점검해보기 위해, 서울시 각 구의 거점 고물상들을 방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노인일자리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에 대한 고물상들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때문에 고물상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너무 어려워요. 예전엔 벼룩시장에 구인 광고를 내면 연락이 많이 왔는데, 요즘엔 사람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구청에 민원을 넣으려고 했어요. 제 대신 말씀 좀 해주세요.”
이해가 되지 않는 한편, 화가 났다. 어르신들이 덜 일하고 돈을 더 받는 게 민원을 넣어야 할 일인가?
2017년 정부의 노인일자리 사업의 활동비는 1인당 27만 원이다. 시장 논리에 따르면 결국 어르신들은 폐지를 주워서 팔거나 고물상의 직원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서 27만 원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반대로 말하면, 해당 고물상 주인은 월 27만 원보다 적은 돈을 지급하고 폐 수집인을 고용했다는 뜻이다.
2017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이다. 고물상들이 어르신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고물상을 방문했다. 주인에게 확인한 결과, 노인 일자리 사업이 시행된 뒤로 폐 수집인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일하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폐지를 줍는가?
“나는 수급자라서 안 돼.”
노량진에서 만난 60대 남자 폐 수집인이 하신 말씀이다. 노인복지법에 근거하여 2004년부터 시작된 노인일자리지원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는 참여할 수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1999년에 제정된 법으로,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르신은 폐지를 줍고 있을까? 최저생활이 보장되지 않거나, 그 어르신도 다른 시민들과 같이 최저생활 이상의 생활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도 있다.
결국 노인일자리 지원사업에 참여 중인 어르신들은 상대적으로 폐지를 줍는 어르신보다는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월 27만 원의 급여는 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인 어르신들에겐 그리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월 20만 원 미만의 적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겐 큰돈이며, 덜 힘을 들이고 일할 수 있는 기회다. 하루에 12시간이 넘도록 일하지 않아도 되고, 무거운 리어카를 끌지 않아도 된다.
한편으로, 노인일자리지원사업에 대한 지적도 몇 년 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경험을 활용하고 지속성이 있는 근로자의 성격의 일자리보다는, 봉사 성격의 청소나 길 안내 등의 일시적인 일들이 많았다는 지적이 있다.
경험과 지혜를 통해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일하고 싶은 어르신들을 위해서나, 리어카를 끌며 월 20만 원도 되지 않는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시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나, 노인일자리지원사업은 개편이 필요하다. 수급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는 그들도 추가적인 소득을 얻을 기회가 필요하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도와야 한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르신들이 끄는 리어카에 광고를 게재하여 수익의 일부를 어르신들에게 돌려주는 ‘끌림’. 노인들이 수거한 폐지들을 10배 값에 사들여 캔버스로 만들고, 예술 작품을 제작 후 판매한 수익으로 다시 폐지를 구매하는 ‘러블리페이퍼’ 등. 요즘은 은평구청 등 관공서와 현대자동차 등 기업에서도 안전 리어카 또는 경량 리어카를 제작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활동도 있었다. 고려대학교 인액터스의 프로젝트였던 ‘사람’은 지속적인 어르신 방문 및 피크닉 등 인식 개선 활동을 진행했지만, 2014년 이후 업데이트가 중단되었다.
짧게나마 3개월 동안 경험한 바로는, 수년 동안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돕는 방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안전 용품을 제공하거나, 리어카를 제공하는 방법들은 폐지 수거 활동을 돕는 방법이다. 폐지를 확보하는 것은 점점 더 치열하다고 한다. 일부 어르신들은 폐지를 주기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거래하는 슈퍼 실내 청소를 해주는 분도 있다고 한다. 고물상을 돌며 느낀 점은, 점점 도심 속의 고물상 숫자는 줄어들고 있으며 그마저 외곽으로 옮겨 가고 있다. 1톤 트럭을 이용한 대규모 폐자원들만 수거하는 고물상들도 있다. 땅값 상승을 위해 재개발을 외치는 낙후 지역의 주민들로 인해 결국 고물상들의 생존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폐지수거를 돕는 임시방편으로는 어르신들이 지속 가능하게 도울 수 없다. 물론 당장 어르신들에게 “폐지 줍는 것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 신설동의 한 어르신에게 들은 말이다.
“젊은 사람이 나한테 물어볼 이야기가 뭐가 있어?”
어떻게 도울 것인가? 특별한 묘수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접근의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포탈에서 ‘폐지 줍는 노인’을 검색해보면, 수년 전부터 같은 종류의 기사만 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힘든 삶과 노인 일자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그들의 생활환경을 들여다보자. 고물상의 운영구조를 들여다보고, 노령연금과 수급자 제도를 다시 검토해보고, 노인일자리지원사업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을 하자. 내 글을 읽고 다른 시각으로 폐지 줍는 어르신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근본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과 아이디어들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