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은 인정 욕구가 강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봐주기를 바라고, 칭송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들은 인정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풀 죽기보다는 화를 내는 것을 더 잘한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 Baumeister)는 이러한 나르시시스트들의 집요한 공격성으로부터 남다른 영감을 얻은 듯하다. 소위 자기애성 저항 이론(Narcissistic Reactance Theory)을 통해 나르시시스트들이 얼마나 무자비한 공격자로 돌변할 수 있는가를 설명했던 그다.
나르시시즘과 게으름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 나르시시스트들은 강력한 인정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단지 화를 내고, 윽박지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외부에 드러나는 객관적인 성취(achievement)를 쌓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성취들을 쌓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우월성을 만방에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나르시시스트들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려는 숭고한 노력이다.
그런 이유로, 나르시시스트들은 사실 게으르지 않다.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목적한 바를 달성해내고자 혈안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게으르지 않으며, 그 자신도 꽤나 부지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가진 과도한 인정 욕구로 말미암아, 결국 게으름을 ‘저지르고 마는’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게으르지 않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게으름뱅이 소리를 듣고야 만다. 왜 그들이 그런 취급을 받곤 하는지,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게으름이라는 현상은 인상관리의 실패로 인해, 외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강한 A가 상사에게 업무를 지시받는 상황이 있다. 상사는 A에게 해야 할 일의 상세 내용들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으며, 업무 진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료 및 정보들을 건네주었다. 업무 내용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는지 질문을 받은 후, 마지막으로 상사가 A에게 물었다.
“마감 기한은 자네가 직접 선택해도 좋네. 언제까지 해 올 수 있겠나?”
A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한다.
“(고작 이 정도의 일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니) 단 이틀이면 끝낼 수 있습니다. 모레 오전 중에 제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사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업무량이 많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나?”
A는 뭔가 자신의 능력이 무시당한 것 같아 욱하는 기분이 살짝 든다.
“충분히 여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시간 안에 끝내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온 A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 정도 일 따위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훨씬 유능하고 빠르다’, ‘이 정도 일 쯤은 빠르게 뚝딱 끝낼 수 있어야 사람들이 나를 우월하게 볼 것이다’ 등의 생각을 하며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남에 따라 A는 점차 초조한 감정에 빠진다. 생각보다 업무량도 만만치 않았거니와, 쉬워 보였던 것이 막상 해보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일을 다 끝내기 위해 이틀 밤을 새워가며 씨름했지만, 역부족이라는 것을 끝내 실감한 A는 상사에게 결국 다음과 같이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시간을 더 주신다면 꼭 일을 끝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상사가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면 그의 사정을 잘 헤아리고 있었을 것이다. A가 말한 시간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웠으리라는 것을 알고, 결국 시간을 더 내어 달라며 자신을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A의 그런 사정을 과연 얼마나 잘 알까?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단지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한 A’일뿐이다. 만약 이런 일이 반복되기라도 한다면 주위의 동료들은 A를 게으른 사람, 뭔가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성과를 못 내는 사람, 신뢰롭지 못한 사람 등으로 인식되기 쉬울 것이다. 나르시시즘적인 A가, 본의 아니게 게으름뱅이가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그렇다. 나르시시스트들이 때로 게으른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심리학자들이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 부르는 현상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업무의 난이도를 과소평가한다.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실과 인식 간의 괴리가 곧 계획상의 오류를 만들어내고, 이것은 타인을 향한 인상 관리에 악영향을 미친다. 스스로는 절대, 게으를 리 없다고 펄쩍 뛰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시간 관리에 실패한 사람, 보다 더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타인들의 그러한 반응은 나르시시스트의 자존감에 위협이 된다. 위협을 느낀 나르시시스트는 이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 방어하려 들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제대로 직시하려 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계획 오류를 막는 것. 나르시시스트가 원치 않는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인해 계획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그렇다면 현실적인 시간 추정의 연습을 시작해야 할 때다.
시간 추정의 연습을 위해서는 대략 다음의 항목들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과제명
- 예상 소요 시간
- 실제 소요 시간
- 차이 값
- 평가
먼저 내가 해야 할 과제에 대한 예상 소요 시간을 기록한다. 과제를 시간 단위로 분절하여 예상 소요 시간 또한 보다 자세히 적어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과제를 수행하고 각 단계를 완료함과 동시에 실제 소요 시간을 측정하고 그것을 예상 소요 시간 옆에 적어둔다. 향후 전체 과제 수행을 모두 마무리한 후 예상 소요 시간과 실제 소요 시간 간의 차이값을 구한다. 차이값이 0에 가까워질수록, 정확하고 현실적인 시간 추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양의 방향이든, 음의 방향이든 0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 차이값을 줄이는 방법’에 관한 진지한 평가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라. 예상 소요 시간과 실제 소요 시간 간 차이값이 커질수록 우리의 머리 속에는 각종 왜곡과 정당화가 깃들기 쉬워진다. 가령 소요 시간을 과소 추정했다면, 필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들일 것이다.
‘이까짓 일쯤이야,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나중에 단숨에 처리할 수 있어’,
‘내가 누군데, 이 정도 일로 힘들어할까 보냐’
‘쉬운 일이니까 일단 지금은 좀 쉬고 나중에 해야겠다’
나르시시스트들이 흔히 일을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는 이유들이다. 아니, 어쩌면 게으름을 먼저 선택하고 그 이유를 합리화하기 좋아하는, 일상의 나르시시스트인 우리들조차 흔히 갖게 되는 그런 생각들일지도 모르겠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