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글을 필자가 조금 수정해서 재게재한 글입니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문영심 씨가 쓴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는 편의상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파트는 유신헌법 체제하의 대한민국 제4공화국에서 김재규가 10월 26일 박정희를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두 번째 파트는 김재규가 연행된 이후에 3심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형되기까지의 공판 과정과 시대상을 다룬다. 마지막 파트는 김재규 사망 이후, 현대를 배경으로 당시 김재규를 변호하던 변호인단이 김재규의 33주기에 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장면을 담았다.
미리 밝히는 바이지만, 주로 연구자들이 쓴 평전 몇 권 정도만 접해본 내 기준으로는 굉장히 조악하고 신빙성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굳이 다른 분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중간의 공판과정은 당시에 변호에 참여한 여러 변호사들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되어 그런지 꽤 신빙성 있고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전반부는 거의 아동용 위인전기 수준으로 김재규라는 인물을 평면화해서 그의 고뇌와 생각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풀어냈다.
차라리 행동묘사 정도로 그쳤으면 좋으련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김재규의 ‘속마음’을 작가의 짐작으로 처리하지도 않고 직접적으로 따옴표를 사용해서 줄글로 옮겨 놨으니까. 문영심 작가가 밝히길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소설적 재미를 결합시킨 평전을 쓰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하는데, 돈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그래도 서평으로 남길 부분은 꽤 있어 보여서 간단하게 세 부분으로 정리를 해볼까 한다.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게 됐나
나고 자란 곳이 대구라 친척 어르신들은 물론 지역 어르신들이 박정희의 향수에 강하게 젖어있다 보니 어릴 때 접한 ‘김재규’라는 인물의 범행동기(?)는 대략 ‘배은망덕한 김재규가 열등감과 권력욕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아 박통의 총애를 받던 동료를 죽이고, 박통마저 배신 때리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정도의 내용이었다. 크면서도 그에 대해서 생각을 바꿀 계기도 없었고, 나서서 그런 인식을 바꾸자는 사람도 딱히 없었다 보니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 하나는 확실히 바꾸게 됐다. 김재규는 그런 이유로 박정희를 쏜 것이 아니었다.
책의 전반부를 보면 김재규는 사육신인 충의공 김문기의 18대손으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의절사에 가서 ‘할아버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자손으로 남게 도와주십시오.’라고 속으로 외칠 정도로 의협심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식으로 심히 손발이 오그라들게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뒤의 공판기록과 옥중에서 남긴 기록들 일부를 보면 딱히 그런 식으로 평면적인 ‘의인’이라고 서술하긴 힘들 것 같다.
무엇보다 김재규는 군인 시절에는 현재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를 만들고 후에는 중앙정보부 부장으로서 박정희 정권에서의 각종 용공사건 등을 조작해내던 당사자가 아닌가. 문영심이 서술하는 것처럼 ‘의협심에 의해 민주주의를 위해 제 한 몸 바친 건아’라는 식의 해석은 좀 곤란한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그가 박정희를 쏜 이유는 2부의 공판기록 부분을 보면 그의 입으로 더 확실히 서술되는데, 김재규는 부마항쟁 당시 ‘캄보디아에서는 300만을 쏴 죽여도 괜찮았는데 우리나라에서 100만, 200만 쏴 죽이는 게 뭐 문제가 있습니까.’라는 차지철을 발언에 박정희가 강하게 동의했다는 부분을 인용한다.
그에 따르면 박정희는 이승만과 달리 하야 의지가 전혀 없으며, 영구집권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쏘지 않으면 적어도 20년은 독재 상황이 유지되고 캄보디아 사태와 같은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염려되어 박정희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본인의 행위를 통해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행위를 10.26혁명이라고 주장하였는데, 그가 혁명을 일으키려던 것은 아래의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 자유민주주의 회복
- 더 많은 희생을 방지
- 적화 방지
- 혈맹인 우방 미국과의 관계회복 및 협력증진
- 국제사회에서 독재국가로서의 악명을 걷어내고 위신 회복
책의 전반부에는 지속적으로 박정희에게 미국의 압력이 들어오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김재규는 지속적으로 미국의 요구에도 어느 정도 부응하기 위해 야당 의원 탄압의 수위를 낮추고 유화책을 펴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말한다. 이에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하자며 미국의 압력을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고 야당 의원 탄압을 더 강화해야 된다는 식의 주장을 되풀이한다.
김재규가 꼽은 5가지 혁명 이유를 볼 때 이것이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아직 김일성이 건재하고 공산 국가들이 붕괴하기 전이라 체제 경쟁에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지는 못하던 상황인데 박정희가 유신을 통해 외형적으로도 완전히 독재체제를 구축해버리자 미국이 손을 떼면 다시금 6.25를 겪을 수 있다는 중앙정보부장의 나름대로의 판단이었을 거란 얘기.
후의 재판 과정에서도 본인의 변호인단에 포함된 ‘인권변호사’들 중에 이 재판을 본인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좌파) 변호사가 있다며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보수 우파로 생각하고 있던 점을 볼 때 그는 박정희 정권에 부역하고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이나 박정희 개인에 대한 추종이라기보단 유신 이전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수호 의지를 가진 일종의 국가주의자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어찌 됐건 앞서 기술한 것처럼 ‘개인의 열등감과 권력욕에 의한 배신’이라는 당시 신군부 세력의 프레이밍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던 행동인 셈.
특히나 자연인 김재규의 자연인 박정희에 대한 충성심은 살해 이후에도 여전했는데, 재판 중에도 ‘각하’라는 경칭을 계속 사용하고 궁정동에서 연예인들을 불러 접대한 일이 공판 중에 변호사의 입을 통해 발설되자 이를 담당했던 부하직원(박선호)에게 그 부분에 대해 증언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등 박정희 개인에게 모욕이 가해질 만한 일은 철저히 차단하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정희의 무덤에 올라탈 정도’로 자신이 타락하진 않았다고 밝혀 개인적 연원에 의해 ‘배신’을 했다는 주장은 꽤 부당하다고 보인다. 김재규는 저러한 이유로 박정희를 죽였고, 그것은 공판 과정에서도 일관적인 증언으로 나타난다.
김재규 및 공모자들에 대한 재판에 관해
책에서는 김재규 및 공모자들의 공판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데, 여기서는 앞부분의 전지적 작가시점 대신 공판 과정의 대화와 증언을 상세히 옮기고 그에 대해서 평자로서 평을 남기는 식으로 글을 진행해간다. 이 부분에서 나타나는 당시의 재판과정은 졸속 그 자체라 할 수 있는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살해된 이후 각종 고문을 포함한 혹독한 심문과정을 거쳐 1979년 12월 4일에 1심 첫 공판이 열린다.
문제는 14일 동안 총 9번의 공판이 진행되어 12월 18일 결심공판에서 사형판결을 내리는 기염을 토했다는 것. 흉악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유영철의 경우도 1심 첫 공판이 2004년 9월 6일에 열리고, 3달 후인 2004년 12월 13일의 결심공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14일 만에 김재규 포함 8명의 내란죄 사건을 8차 공판까지 거치면서 충분히 검토한 후 사형판결을 내린 것을 보면 현재 대한민국 판사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군기가 빠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는 당시의 공판과정에 곁들여 재판장 밖의 12.12 사태와 긴급조치 9호 해제 등을 꽤 적절히 설명해준다. 10.26 이후 급격한 민주화 무드를 틈타 전두환이 권력 공백기의 실권을 잡음으로써 김재규는 더더욱 살려둬서는 안 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당시에 전두환의 전횡을 막으려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밀어내기 위해 수사권을 쥐고 있던 전두환은 정승화에게 김재규와 공모해 박정희를 암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12.12사태를 일으켰다.
그런데 당사자인 김재규가 재판 과정에서 10.26이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던 터라 그 사실이 새어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었다. 언론통제권을 쥐고 있던 신군부에서는 김재규를 개인적 야욕으로 패륜을 저지른 배신자로 몰아갔고, 그게 아직도 남아 대부분의 뇌리에 박혀 있던 것으로 보인다.
김재규에 대한 구명이나 명예회복에는 야당 정치인들도 앞장설 수가 없었는데, 신군부의 위협 때문이라기보단 민주화운동을 통해 시민의 힘으로 쟁취했어야 할 ‘민주화’를 부역자의 손에 의해 거저 얻은 꼴이 되어서라고 저자는 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해방의 원인을 ‘태평양 전쟁을 통해 일제가 패망한 것’이 아니라 ‘범민족적인 광복 운동의 결과’로 꼽는 국사책의 관점과 비슷해 보인다고 할까.
민주화운동을 통해 유신이라는 당시의 절대 악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김영삼, 김대중 같은 인물들도 절대 악의 심장인 박정희가 정권 내부자의 총격에 의해 급작스레 사망한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상황에서 김재규는 상고심인 2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의 전원합의체 상고기각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사형에 처해진된다.
재밌는 건 유신의 서슬이 퍼렇던 당시의 대법원에서도 8:6으로 6명의 대법관이 사법살인에 반대해 결국 석 달 뒤에는 모두 법복을 벗어야 했다는 부분이다. 그 시절에도 그 정도의 양심을 지키는 법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당시에 김재규를 기소했던 검사는 조선 시대 경국대전에나 나올법한 ‘대역죄’나 ‘시해’라는 대한민국 형법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근대적 단어를 구형하는 자리에서 내뱉는 미개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의 시국사건에는 항상 얼굴을 비추던 쟁쟁한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김재규와 공범들을 변호했지만, 법정에서 진술의 녹취마저 불법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별달리 방법은 없었을 것 같다. 그렇게 10.26은 끝이 나고,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에 의한 제5공화국이 도래하게 된다.
김재규에 대한 역사의 평가
김재규는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이후 변호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3심 재판은 끝났지만, 역사라는 4심 재판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신군부의 전두환-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대역죄인’으로 굳어졌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도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김재규 개인에 대한 민주화 유공자(?)로서의 재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유신정권은 물론 유신정권에서 이어진 신군부의 부도덕성을 다시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김재규 개인의 판단으로 보자면 5.16 이후부터 유신 전까지의 박정희는 어느 정도 긍정하고, 유신 이후의 영구집권을 노리는 박정희를 부정하는 현 대한민국의 (어느 정도 양식 있는) 권위주의 우파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재규의 주된 활동 기간이라고 봐야 할 유신 이전의 박정희와 김재규의 모습은 하나도 책에 포함되어 있질 않다. 목적성을 가진 의도적인 편집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김재규 개인의 삶을 포착해서 입체적인 인간상을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아동용 위인전같이 김재규를 평면적이고 올곧은 사람으로 압축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저자는 10.26의 역사적 의의와 김재규 본인이 밝힌 혁명의 이유와는 전혀 관련 없는 박정희의 권력형 성 상납 장면을 전체 책의 비중에 비해 과도하게 많이 할애했다. 김재규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려면 박정희가 좀 더 절대악이 되어야 하기도 하고, 그 반작용으로 김재규는 더욱더 평면적인 의인이 되어야만 하기에 저자는 본인의 정치적 목적성에 의해 되려 재평가하고자 하는 인물을 작위적으로 박제하는 모순을 저지른 것이다.
작가는 전근대적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식의 유교적 인물관을 이식하기 위해 김재규라는 인물을 가정적이고 의로운 신파극의 주인공으로 그려 버렸다. 권위주의라는 거악을 몰아내기 위해서 저 정도가 대수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이게 진영이 바뀌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부모 노릇을 제대로 했냐는 식의 미개한 얘기와 달라질 게 없다.
이보다 좀 더 노골적인 부분도 있었다. 10.26과는 정말 별다른 관련이 없는 박지만과 박근혜의 비행을 김재규가 증언하는 형식을 빌어 의도적으로 부각한다는 점이다(이 부분을 읽다가 과연 이게 정말 김재규라는 인간을 재평가하고 탐구하기 위해 쓴 평전이 맞는지 의구심이 마구마구 들었음).
저자는 ‘이 정도면 독자들도 김재규를 다르게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고 쓴듯하지만 이런 서술방식과 서술내용, 그리고 저자의 목적의식을 토대로 판단하자면 기존의 김재규에 대한 선입견 정도는 사라지게 할 수 있겠으나 이 평전을 읽고 ‘김재규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일말의 확신을 가질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팩션(Faction) 느낌으로 가볍게 읽기엔 좋을 듯도 하지만 평전이라는 이름을 달기는 좀 부끄러운 책이 아닐까 한다.
책과는 별개로 약간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김재규가 당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박정희 사망 이후 본인이 나서서 혁명위원회를 조직해 유신의 잔당을 ‘설거지’ 할 계획이었다는 포부를 재판 중에 밝히기도 하고 ‘4·19혁명을 말아먹은 것처럼 10·26혁명을 말아먹지 않기 위해서는 당시 대통령이던 최규하가 자신을 석방시키고 같이 손을 잡아 설거지를 마쳐야 민주주의가 정착한 대한민국이 온다’는 식의 얘기도 했다. 책에 실린 증언이라던가 옥중 기록 일부를 보면 자신을 ‘예수’에 비유하기도 했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는 본인이 좋아하는 법문 구절인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필 수 없고, 이슬 내리지 않는 곳엔 열매도 없다(無風天地無花開 無露天地無結實)’에서 유래한다. 본인의 행위를 바람 혹은 이슬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영웅주의에 심취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깊은 친교 관계였던 박정희를 죽인 죄책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박정희 사후 자신의 행위를 더 대국적인 무언가로 포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됐건 그의 행위로 인해 유신독재가 끝났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의는 있으나 그를 민주화운동 유공자라거나 의사리고 하기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개인적 별점은 ★★★.
원문: 한설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