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이코노미스트지의 Globalisation has marginalised many regions in the rich world를 번역한 글입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스크랜튼(Scranton)은 석탄 산지로 미국 산업혁명 시기 경제가 흥했던 곳이지만, 20세기 초부터 쇠락하기 시작했습니다. 1902년,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철강 회사가 스크랜튼을 떠난 뒤 1920년대에는 단추 제조업체가 성업하기도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석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1959년 탄층(炭層)을 찾아 땅속을 파던 중 서스케하나강 바닥을 건드리는 바람에 강물이 갱도로 흘러들었고, 탄광은 그대로 문을 닫게 됩니다.
2012년 스크랜튼시는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20세기 내내 경기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던 지역이라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주민 5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척된 디지털 중심 경제에서 뒤처져 경제적으로는 큰 타격을 입었지만, 거기 살던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런 지역이나 도시는 스크랜튼 말고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지역 경제를 살려보려고 주 정부, 지방 정부를 동원해 수많은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인프라 정비 및 확충에 이어 각종 재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집행됐습니다. 영국의 티스강 하류 주변 공업지역을 일컫는 티스사이드(Teessdie), 프랑스의 빠드깔레(Pas-de-Calais) 지역도 비슷합니다.
펜실베니아주는 2007~2016년 기업에 보조금으로만 60억 달러를 썼습니다. 미국에서 이 기간 동안 펜실베니아보다 많은 보조금을 쓴 주는 없다고 합니다. 보조금 대부분이 주의 북동부 지역에 집중됐지만, 그 효과를 둘러싼 평가는 후하지 않습니다.
지역 간 격차가 생기고 그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원인 가운데는 세계화로 인한 구조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이는 한 지역 차원에서 거스르거나 흐름을 바꾸기 힘든 일이죠. 물론 세계화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거나 억제할 수도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북동부 지역의 유권자들은 바로 그 점에 희망을 걸고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줬고, 트럼프는 그 덕분에 (애초 예상을 뒤엎고) 20명이나 되는 펜실베니아의 선거인단을 클린턴에게서 빼앗아올 수 있었습니다.
영국 티스사이드 지역 유권자들이 브렉시트에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진 이유도, 프랑스 빠드깔레 지역 유권자들이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지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흐름을 어떻게든 막아선다고 몰락한 지역 경제가 알아서 되살아나는 건 물론 아닙니다.
한때 경제학자들은 지역 간 격차나 국가 간 불평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부유한 지역에서 투자할 기회를 찾지 못한 돈은 자연히 지금은 부유하지 않지만 잠재력이 있는 지역으로 흘러들어올 것이고, 기술의 발전은 결국 널리 퍼져 모두가 혜택을 공유하게 되리라는 가정에 바탕을 둔 전망이었습니다. 실제로 20세기에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산업화한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훨씬 빨리 경제를 회복했고, 앞서 나가던 국가들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 이탈리아의 1인당 생산력은 미국의 33%에 불과했지만, 1973년이 되면 62%까지 높아집니다. 1880~1980년 미국 주들의 1인당 소득 격차는 매년 1.8%씩 좁혀졌습니다. 100년 사이 플로리다 사람들의 1인당 실질소득은 코네티컷 사람들의 33%밖에 되지 않던 수준에서 82%로 높아졌습니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국가 내부에서, 또 국가마다 존재하는 지리적 차이가 점점 덜 중요해지면서 선진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경제 격차는 오히려 넓어졌습니다. 1870년 미국인의 소득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소득보다 (생활 물가를 반영하고) 9배 정도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이 수치는 1990년이 되면 50배 이상으로 높아집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흐름이 분명히 바뀝니다. 한 국가 내에서의 지역 간 격차는 커지고, 반대로 가난한 나라들이 앞서 산업화를 이룩했던 선진국들을 경제적으로 따라잡는 속도는 빨라졌습니다.
1880~1980년과 비교했을 때 1990~2010년 미국에서 주별 격차가 좁혀지는 속도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지금은 주별 격차가 더는 좁아지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생산성 향상을 기준으로 보면 부유한 도시가 다시 보통 혹은 가난한 지역과의 생산성 격차를 벌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OECD 최근 보고서를 보면 회원국 내 부유한 상위 10% 지역과 하위 75% 지역 사이의 평균 생산성 격차는 지난 20년간 60% 가까이 벌어졌습니다.
잘 사는 나라 안에서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과 가난한 나라가 선진국을 따라잡는 현상은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또한, 기술 발전과 정치적 변화를 토대로 앞서 예측됐던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지 선진국 정부나 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일 뿐입니다.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가 부유한 나라와 무역을 하면 자연히 두 나라 숙련노동자의 임금은 비슷해집니다.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 임금은 오르고, 반대로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 임금은 낮아지죠. 세계화가 몰고 온 충격파는 특히 몇몇 지역에 집중된 것처럼 보이는데, 무역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던 노동자들이 비슷한 곳에 모여 살기 때문만이 아니라 세계화의 추세와 흐름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던 지방 정부와 지역 정부가 그 대가를 치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은 한데 모여 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특히 제조업이 그런데 원자재를 한꺼번에 공급받아 단가를 낮출 수도 있고, 소비자와 가까운 데 모여있는 혜택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공장이 모여있는 곳에서 돈이 돌고 지역 경제가 그에 맞춰 번영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뉴욕의 금융업이나 실리콘밸리의 IT 업계를 보면 이는 비단 제조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한 업종이 모여있는 경제 클러스터의 규모는 결국 전체 경제력에 비례하는데, 세계화와 함께 무역이 늘어나면서 경쟁력이 높은 클러스터는 비교우위를 이용해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리하여 런던은 세계 금융의 허브로 자리매김했고, 파리의 인터넷 기업은 캘리포니아의 인터넷 기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1등이 아닌 클러스터에 있는 기업들에는 심하게 말하면 특화해서 살아남거나 그대로 주저앉는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무역은 제로섬게임이 아닙니다. 생산 과정에서 효율성이 높아지면 그로 인해 생산성이 오릅니다. 소비자들은 더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더 싼 값에 구매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생산이 지역적으로 한 곳에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질 겁니다. 전통적인 경제 체제에 맞춰 돌아가던 지역 경제는 공동화 현상으로 인한 침체를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돈도, 유능한 인재도 잘 나가는 도시로 모여들면 기업도 그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몇십 년간 미국 주요 도시 지역의 생산성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생산력 집중 현상은 미국의 여덟 개 주요 IT 허브 지역에 몰리는 핵심 인재들과 그들의 높은 연봉이나 런던이 영국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승자독식까지는 아니지만, 승자가 훨씬 많은 전리품을 가져가는 구조에서 그렇다면 전통적인, 가난한 지역은 왜 세계화의 추세를 기민하게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지게 된 걸까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먼저 예전보다 기술이 더 쉽게 퍼지게 됐습니다. 지역적 요인이 더 이상 제약으로 작용하지 않게 됐다는 말이기도 한데, 2015년 OECD에서 발표한 연구를 보면 2001년 이후로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발표하고 이를 토대로 서비스를 출시하면 다른 나라의 주요 기업들이 이 기술을 받아들이고 따라잡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나라별 격차는 좁아졌지만, 한 나라 안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됩니다. 한 나라의 선도 기업이 내놓은 기술을 그 나라의 후발 기업이나 지역이 따라잡는 속도는 오히려 느려진 겁니다. 해당 보고서의 저자들은 선도 기업이 세계 시장의 기준에 맞춰 내놓은 새로운 기술을 지역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굳이 빨리 배워야 할 이유가 없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세계 시장과 지역 시장의 격차가 이른바 선도 기업과 후발 기업들 사이에 이원화를 일으킨다는 겁니다. 세계 시장이 갈수록 통합되면서 한 분야의 최고 기업이 사실상 전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면 유능한 인재도, 투자도, 수익도, 이윤도 모두 그 기업으로만 몰리게 됩니다. 지역 경제에 유입되는 자원은 갈수록 말라갑니다.
이렇게 자원과 기회가 몇몇 지역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기회를 찾아 그곳으로 모여듭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현상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개발도상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2010년 상하이 인구는 30년 전보다 두 배 늘어났습니다. 1841년 맨체스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선진국 사람들은 과거 세대보다 새로 부상하는 곳으로 이주하는 걸 꺼립니다. 쉽게 사는 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더 많아지기도 했고요. 원래 미국은 분명 사람들의 지리적 이동도 무척 활발한 편에 속하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동성은 눈에 띄게 줄어 매년 미국 안에서 다른 주로 이사하는 미국인은 전체 미국인의 2% 정도에 불과합니다. 유럽의 한 나라 안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1.5%로, 그래도 여전히 미국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이사하기는 합니다.
성공적인 경제 클러스터가 유능한 인재를 빨아들이고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데 저항하는 힘, 혹은 걸림돌도 있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걸 반기지 않는 해당 지역 사람들이 주택을 새로 더 짓지 못하게 반대해 집값이 너무 비싸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100년 전에는 이런 식의 걸림돌은 없었죠. 임금이 높아도 집값이 워낙 비싸 생활은 더 팍팍해지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동시에 복지국가 제도의 기틀이 닦이면서 사회 안전망이 더 튼튼해져 굳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날 필요가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지역 경제는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고, 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지만, 그래도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지는 않는 겁니다. 19세기 캘리포니아의 광산촌이었던 보디(Bodie)는 한때 지역 신문사에 기차역도 있던 잘 나가는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산이 문을 닫은 뒤 말 그대로 완전한 유령 도시가 되어버리고 말았죠.
오늘날은 정부 보조금이나 연금 등이 있어 멀쩡하게 살던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다고 하루아침에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일은 잘 없습니다. 게다가 도시로 가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비싼 집값을 비롯해 각종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물가가 훨씬 낮은 소도시나 시골의 상대적인 장점이 되었습니다.
공무원이나 공공부문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이 자주 거주지를 옮기는 이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원래 살던 곳에 있는 가족, 친구를 등지고 새로운 곳으로 가기 힘들어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기술이 있는 젊고 야망 있는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절실합니다. 도움이란 떠오르는 성공적인 대도시 경제 클러스터 같은 곳에 사람들이 더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쇠락하는 곳을 원하면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뜻합니다. 이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건 결국 전체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고 GDP도 오를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죠.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거주지를 옮길 수 없는 이들, 그래서 쇠락하는 곳에 남아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이들이 당면한 문제도 같이 살펴야 합니다.
스크랜튼에 사는 젊은이라면 지리적으로 뉴욕이 멀지 않으니, 뉴욕에서 꿈을 펼치며 새로운 삶에 도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젊은이가 스크랜튼을 떠난다고 스크랜튼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스크랜튼에 남은 얼마 안 되는 나이 들고 가난한 이들이 더 큰 부담을 지는 셈이죠.
각종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동원해 침체된 펜실베니아주 북동부 지역 경제를 살려보려는 노력은 그치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역사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국가 혹은 지역에 심폐소생술 하듯 경제 지원을 해온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그런 노력이 원하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비관적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아메리칸 페이퍼백이라는 회사가 본사를 스크랜튼 근처로 옮겼습니다. 정부의 고용 관련 세제 혜택에 직원 교육비 지원, 그리고 140만 달러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 대출 등 회사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 제시됐죠. 하지만 아메리칸 페이퍼백이 본사를 옮기며 이 지역에서 늘어난 일자리 수는 38개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가난하고 실업률이 높은 지역마다 각종 세제 혜택과 보조금으로 만들어낸 이른바 “기업 하기 좋은 지역”이 만들어지지만, 눈에 띄는 효과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생겼던 기업 하기 좋은 지역 42곳을 조사한 결과, 목표로 했던 기업을 모두 유치하는 데 성공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이 오르더라도 그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도시 경제구역(zones franches urbaines)을 지정하고 입주하는 중소기업에 일시적인 세제 혜택이나 사회보험 보조금을 지급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침체된 지역 경제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리라는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으로 그쳤습니다. 새로 고용한 노동자도 주변 지역에서 원래 다른 일을 하던 이들이다 보니, 결국 전체 실업률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유럽연합에서 가난한 지역에 투자 형식으로 지원하는 EU 구조기금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는 좀 더 긍정적입니다. 지원을 받은 지역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실업률은 낮아졌죠. 하지만 이런 효과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가 문제인데, 지표가 개선돼 기금이 끊기면 이내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이보다 더 긍정적인 효과를 발견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Greenville)로 가보겠습니다. 스크랜튼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그린빌은 한때 섬유, 방직산업이 번창했던 곳입니다. 유속이 빠른 강에 인접해 이를 동력으로 삼은 공장들이 말 그대로 섬유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었죠. 하지만 그것도 20세기 초반까지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다른 나라 섬유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그린빌의 방직산업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 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정부는 BMW가 미국에 공장을 열 계획을 세우고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입찰 경쟁에 뛰어듭니다. 총 1억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세제 혜택에 4km2나 되는 공장입지 임대료는 1년에 1달러로 사실상 무상 제공이었습니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목소리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고, 클렘슨대학교를 비롯한 지역 대학들이 BMW와 협조해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맡기로 했습니다.
BMW 그린빌 공장은 성공적인 사례로 꼽을 만합니다. 현재 BMW 공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그린빌 공장 덕분에 자동차 부품 기업을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속속 근처로 모여들었고, 인접한 노스캐롤라이나나 조지아로 이어지는 도로와 물류망도 대대적으로 정비됐습니다. 최근 중국 기업인 지리(吉利)가 소유한 스웨덴 자동차 제조사 볼보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톤 근처에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BMW에 부품을 공급하던 관련 업체들에는 고객이 늘어나는 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BMW 공장 덕분에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제조업 핵심기지가 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주민들의 실질 소득이 높아졌고, 인구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1990년과 비교했을 때 그린빌은 70%나 더 큰 도시가 됐습니다.
결국, 경제 클러스터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기업과 노동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유치하느냐가 관건인데, 어느 쪽을 먼저 공략해야 하는지는 정답이 없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같죠. 기업은 양질의 노동력을 비롯해 생산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을 원합니다.
노동자들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으로 모여듭니다. 기업과 노동자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곳에 모이게 하는 묘수를 발휘해야 하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바로 그 일을 잘 해낸 겁니다. BMW 공장은 자체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자리를 잡은 뒤에는 지역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까지 맡게 됐습니다.
다만 거대한 경제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유치할 수 있는 입지 요건을 갖춘 곳은 막상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 정부는 대규모 사업만 추진할 게 아니라 지방 정부에 규모에 맞는 적당한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경험 자체를 나누고 방법을 전수해야 합니다.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투자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일종의 “지역 특화 벤처캐피털”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공공 부문이 직접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 연방정부는 주정부에 토지를 무상으로 불하해 대학교를 짓게 했습니다. 주정부는 연방정부가 준 토지를 팔아 돈을 모으거나 그 땅에 직접 농업대학이나 상업대학을 지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전히 영토를 개척하던 시기, 대학의 역할은 교육을 통해 젊은 농부나 기술자를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곧 농업이나 공업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오늘날 용어로 옮기면 “산학 협력”에 해당하는 실제 농부, 기술자에게 연구의 성과를 알리고 협력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임무가 대학교에 더해졌습니다. 대학교는 지식을 전파하고 새로운 기술과 기술을 적용한 성공 사례를 확인해 연구하는 기관으로 거듭난 겁니다. 당시 설립된 많은 대학이 오늘날까지 연구기관이나 대학교로 남아 지역 기업들과 산학 협력 연구를 수행하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직업에 맞는 교육을 제공합니다.
독일에도 현대적인 환경에 맞춘 비슷한 기관이 있습니다. 프라운호퍼 게젤샤프트(Fraunhofer Gesellschaft)로 불리는 이 기관은 1949년 시작돼 현재는 총 69개 연구기관이 등록된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의 30%를 지원하는 프라운호퍼 게젤샤프트는 독일 기업과 함께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기술을 개발합니다.
정부는 이런 기관이나 산학 협력 단체를 지원하고 투자해 기존 노동력을 재교육하고 새로운 기술을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머신러닝이나 증강현실, 적층 가공 등 최신 기술이 경제 클러스터에 속하지 않은 지역의 업체들에까지 전파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더 잘 이해할수록 기술의 중심이 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은 줄어들 것입니다.
앞선 기술이 널리 퍼지지 않고 한 곳에 집중되면, 그만큼 기술에서 파생되는 권력도 한 지역에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권력의 집중을 막고자 한다면 기술의 확산을 더욱 장려해야 합니다. 1990년대 말 기술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집약된 기술을 앞세운 미국 기업들의 이윤은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업계의 최고 기업은 기술과 함께 얻은 자본과 정치력을 앞세워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 장벽을 쳤고,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공동체와 상생하는 기업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기업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난 6월 아마존이 홀푸즈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뒤 월마트, 타겟, 크루거 등 유통업체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이들 기업의 본사가 있는 지역 경제가 위기감에 휩싸였을 정도입니다. 이어 아마존은 미국 안에서 시애틀에 있는 본사와 동급으로 취급할 두 번째 본사 후보지를 찾는다고 공표했습니다.
수많은 도시가 매력적인 제안을 앞다퉈 제안하며 아마존의 환심을 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숙련된 노동력, 주요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각종 편의와 물류 중심지로 손색이 없는 입지 등 아마존이 내건 몇 가지 필수 요건을 고려하면 아마존의 두 번째 본사를 유치하는 도시는 아마도 이미 잘 나가는 도시 가운데 한 곳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적 함의
새로운 인터넷, 통신 기술 업체들에는 인프라가 부족한 허허벌판에 회사를 차리고 운영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중앙 정부나 연방 정부가 앞장서서 기술을 한 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널리 퍼뜨리며 이른바 지역 균형발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는 적잖은 비용이 들고, 지역끼리 경쟁이 과열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 나라의 도시와 지역이 “가진 곳”과 “못 가진 곳”으로 나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은 너무 큽니다. 무엇보다 가진 곳에 사는 경제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는 점점 더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게 될 것입니다. 못 가진 곳에 사는 대다수 서민이 계속 기술 발전의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면 엘리트를 향한 반감이 커지는 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자는 데 표를 준 영국인들과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인들은 모두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현재 시스템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표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지역 간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